조일근 / 언론인,프리랜서

“10년에 걸친 ‘햇볕’으로 얻은 안정은 불안으로, 열릴 듯 하던 통일의 길은 다시 꽉 막혔다. 우리의 급변한 대북정책도 원인이다. 김정은의 북한을 불안하다고 하지만 우리의 대북정책 부재가 더 불안하다. 우리가 끌고 가는 남북관계라야 안정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1988년 10월 김일성이 사망 했다는 신문 호외가 나왔다. 거짓말 좀 보태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김일성 한사람 때문에 남북이 갈라져 민족이 고통 받고 있다는 정서가 강한 우리 사회에 그의 사망 뉴스는 충격이었고 희망의 메시지 이었다. 하지만 김일성 사망 뉴스는 오보로 밝혀졌고 국민들은 실망과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6년 후에야 그는 진짜로 세상을 떴다.

무언가 새로운 남북 관계가 형성되고 분단의 고통이 끝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 속에 조금은 우스꽝스런 모습의 김정일 시대를 맞았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차이만 있을 뿐 지구촌의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시대에 이루어진 권력의 세습은 오래 가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했다. 막연한 기대는 민족에게 실망을 안겼다. 뒤뚱거리는 오리처럼 걷는 김정일은 한술 더 떠 지구촌의 문제아로서 존재감을 더할 정도로 ‘발전’ 했다.

다행히 김대중과 노무현 이라는 두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북 정책으로 교류의 물꼬를 터 민족통일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리운’ 금강산에 오를 수 있게 됐고 우리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서 조업하는 진전된 남북관계가 형성 됐다. ‘퍼주기’라는 비난과 두터운 외투를 벗게 하는 ‘햇볕’이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우리 내부의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꽉 막혔던 남북의 길은 열리고 대립보다는 대화로 남북관계는 안정됐다는 사실이다. 북한 경제에 도움이 돼 굶주리는 동포들을 도울 수 있고 통일의 길로 한 발짝 나아갔다.

‘햇볕’ 대신 강력한 대립을 들고 나선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으로 남북관계는 일시에 얼어붙었다. 10년에 걸쳐 조금씩 열어놓은 통일의 길을 남측이 먼저 막아버린 것이다. 공든 탑은 무너지고 미사일과 핵실험에 이어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 사태가 빚어지고 금강산 길마저 막혔다. 대화와 협력으로 얻어진 남북관계의 안정은 사라지고 어느 때보다 불안해졌다. 현 정권은 이 모든 사태가 김정일의 무모함이 빚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남측의 급변한 대북정책도 그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 의해 ‘악의 축’이 된 지구촌의 ‘문제아’ 김정일의 사망으로 한반도의 미래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권력 승계 준비기간이 짧아 북의 정세가 불안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많다. 내 보기에는 모두 쓸데없는 걱정들이다. 김일성 왕조의 세자로 중국에 의해 책봉(?)된 29세의 김정은 체재는 김정일의 등장 때보다 오히려 안정된 느낌이다. 큰 흔들림 없이 ‘왕조’를 안정적으로 끌어갈 것이다.

불안은 오히려 북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처 능력 부족에 있다. 북측의 공식 발표가 있기까지 김정일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정보에 깜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향후 남북관계를 안정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남북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정확한 인식조차 없는 것 같다는 불안이다. 김정일의 사망은 3년 전부터 예상 됐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의 사후에 대한 전망과 대처 방안까지 세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 휴전 당사국으로서는 당연하지 않은가.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66년 왕조를 알고 김정은을 알면 비록 ‘휴전중’인 상태이지만 대한민국이 안정과 발전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김정은은 서방 세계에서 교육을 받아 세계의 흐름을 알고 세계 속의 북한을 알고 있으리라 기대 한다. 천안함을 격침 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했다고,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다고 분노하며 삿대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끌고 가는 남북관계 이어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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