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이 / 영광신문 논설위원, 통일부 교육위원

동지와 크리스마스 문화는 발생 배경이 전혀 다른 이질성(異質性) 문화이다. 동지는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의 천문(天文)현상이 그 연원(淵源)이고, 한 시점에 해歲)와 해의 전환(轉換) 의미를 부여한 후 그를 기념하며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의 탄생이 그 연원이며, 그 탄생 자체를 찬미하고 감사하는 날이다.
풍물·풍속도 전혀 다르다. 동지의 풍물·풍속으로는 새해 책력(冊曆) 선물, 동지사(冬至使 : 조선시대 매 년 동짓달에 중국에 보내던 사신) 파견, 팥죽 등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세상 문물이 변했기 때문에 동지팥죽 끓여먹기만 남아서 행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풍물·풍속으로는 산타, 캐럴, 트리장식 등이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독특하게 생성된 풍습·풍물을 가지고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동지와 크리스마스는 둘 다 날자가 12월 하순에 들어있어서 각각의 풍물·풍속이 거의 같은 시기에 행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의 경우, 상호 연관 기억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양쪽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넘나들며 행해지기도 한다.
요즈음의 우리 신세대들에게 동지에 대해서 묻는다면 아마 '팥죽을 끓여 먹는 풍습이 있는 날'이라는 정도 이상의 상세한 대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과는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부터 갑자기 TV에 '동지는 작은 설날로 불리었으며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전래의 명절'이었다는 요지의 전통문화 애호 공익광고가 등장했다. 맞는 말이다. 방송 시기와 시간도 매우 적절했었다. 효과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불과 2~30년 전까지만 해도 동지가 되면 집집마다 팥죽을 끓였다. 잡귀의 출입을 막는다는 뜻으로 대문간 등에 뿌리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새알이 든 팥죽을 한 그릇씩 꼭 나누어 먹였다. 먹이고 나서는 또 '이제 몇 살이지?' 하고 물었다. 팥죽도 먹이고 나이도 한 살 미리 앞당겨 선물한 것이다. 한 살 더 먹게 되면 나이값을 하려고 몸과 마음이 훨씬 성숙해질 것이라는 긍정적 예언과 암시를 구체적으로 준 것이다. 현대 심리학 용어를 빌리자면 '타인이 자기에게 거는 기대와 믿음이 크면 더욱 힘이 나 실제로 능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는 「피그말리온 효과」 메시지이다. 우리의 선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지'라는 시기와 '팥죽'이라는 별식을 활용해 차원 높은 교육을 연례적으로 실행해 왔던 것이다. 물론 어른들도 이날에는 지난해를 겸허하게 돌이켜보며 스스로 새해 설계와 준비를 하는 자기교육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사실 동지팥죽은 오래전부터 심심치 않게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사용된 바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꼭 동지 때가 아니더라도 팥죽이 잔치음식, 부조음식, 나그네음식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늦도록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를 하던 성가대원들이나 청년 신자들의 밤참거리로, 크리스마스 이브의 많은 신자들을 위한 단체급식 메뉴로, 온 동네가 나누어 먹는 새집들이 잔치음식으로, 상가집을 돕기 위해 제공하는 부조음식으로, 장꾼들이나 먼 길 나선 나그네들을 위한 간식으로 팥죽은 안성마춤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모두가 아련한 추억일 뿐만 아니라 팥죽이 우리 고유의 패스트푸드로 변신하여 햄버거나 라면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본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호두과자」나 우리의 「모싯잎송편」처럼 성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새로운 환경 용어 가운데는 「푸드 마일리지」란 말도 있다. 식품이 먼 곳에서 운반되어 올수록 탄소배출 수치가 높아지고 값도 높아진다는 말이니 신토불이(신토불이)와 상통하는 개념을 갖고 있다. 이제는 즉석요리 식품이 대세라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백화점 푸드코너나 재래 간이식당, 분식점 등에서 팥죽 매출이 는다고 하니 마케팅이나 광고 수단을 강구해 보면 혹 계절음식으로라도 틈새 시장이 열릴지 모를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왕 팥죽이 옛날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케팅 보다는 각 가정의 동지팥죽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겠다. 팥죽이라는 단순한 음식 하나가 바람직한 가정교육과 인성교육의 계기와 장을 마련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차피 미래의 식생활은 즉석요리 음식, 가정 음식, 무공해 녹색 음식으로 돌아갈 추세인데, 현재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후생들을 위한 인성교육, 밥상머리교육, 친환경 먹거리 확보 이상 더 중요한 과제가 없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동지와 크리스마스가 시기적으로 인접해 있고, 겨울철인 점을 감안하여 새로운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팥죽을 고려해보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교리에 배치되지 않는다면 동지팥죽의 교육적 의미도 적극 수용하고 실행할 수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