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이/ 영광신문 논설위원, 통일부 교육위원

연어라는 물고기는 알래스카 연안에서 몇 년간 성장한 후 산란기가 되면 동해 연안의 모천(母川)으로 회귀한다는데, 그들은 그곳이 산란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고 그 장소를 기억해 그 먼 길을 찾아오는 것일까?
매년 설이나 추석이 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80%에 이르는 3천만 명 이상이 불편함과 번잡함을 무릅쓰고 귀향을 되풀이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을 느끼거나, 무엇인가 바라는 바가 있어서 그러는 것일까?
아직까지 사람들은 이처럼 희귀현상이나 귀향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만인이 ‘아 그렇구나’하고 공감할만한 명쾌한 설명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과학적인 결론이라며 ‘본능’또는 ‘생명현상’이라고 설명하거나, 종교적인 결론이라며 ‘신의 뜻’또는 ‘천명(天命)’이고 해설할지는 몰라도……. 어쩌면 희귀․귀향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시공(時空)을 넘나드는 애향심과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귀향과 관련된 어휘들은 아주 많다. 고향, 향수, 환향, 낙향, 귀거래사(歸去來辭), 낙엽귀근(落葉歸根), 수구초심(首丘初心) 등 등……. 그리고 그러한 모든 어휘들 속에는 과거라는 시간, 추억의 공간, 그리움이라는 인간 고유의 심리, 정(情)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귀향문화는 우리나라와 동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의 여러 나라에도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과 관련된 귀가․귀향문화가 있다. 서양의 노래 중에도 고향을 그리는 노래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요즈음에 와서는 서양에서도 뿌리 의식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고도 한다. TV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보면 외국 입양아들이 어른이 되어 모국을 찾아와 생부모를 찾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도 서양인들의 뿌리의식, 즉 가족과 고향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설에도 민족의 대이동으로 일컬어지는 귀향현상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적막하기만 했던 시골에서도 왁자지껄 사람사는 소리가 들려왔고 특유의 가족문화와 지역문화도 꽃피웠다. 사람만 귀향한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나 정까지도 함께 귀향하여 잠시나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수 있었다. 아들 딸은 볼수록 대견했고, 며느리는 시집올 때처럼 예쁘고 반가웠으며, 한층 더 자랐거나 새로 생겨난 손자들의 재롱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허리, 다리 통증까지 잠시 멎게 했다. 자녀들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림으로써 효도를 했고, 차례 상 앞에서는 조상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고 동기간 우애도 다짐했으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축복하기도 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귀향문화 형태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그 하나는 농촌으로의 귀향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인구도시집중이 일어나기 시작한지가 40여년이 되어서 그 동안에 농촌의 출생 인구와 출향 인구도 하향곡선을 그러온 결과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역귀향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부모님의 상경이나, 아예 차례음식을 싸들고 콘도 등을 찾아 거기서 차례도 지내고 연휴도 즐기다 돌아오는 등의 새로운 모습도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역귀성이나 콘도에서도 많은 가족이 모여 가족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면 거기서도 귀향효과는 나타난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금년 설에 연휴를 이용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23만 명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새로운 명절문화라 할 수 있다. 가족동반 여행이라면 거기서도 가족문화를 꽃피울 수 있으니 얼마든지 좋다. 다만 그 여행 목적이 개인 관광, 단순 휴식에 있다면, 꼭 명절에 그래야 되는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명절귀향은 핵가족뿐만 아니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애를 돈독히 하는 좋은 기회기 되기 때문이다. 삶의 재충전이나 휴식, 견문 넓히기 여행은 다른 휴가를 이용해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명절 귀향문화는 가족문화 보존을 위해 유지되는 것이 좋다. 가정은 모든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이고, 가족애로부터 시작하여 향토애, 겨레애, 인류애가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귀향․회귀의 의미를 굳이 따지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귀향현상을 ‘본능’, ‘생명현상’, ‘천명’이라 여기면서 유지 보전해야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