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저기 산에도, 들에도, 바다속에도 계절은 이미 춘정(春情)을 견딜 수 없어 뭇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는 3월 하순이다. 뒷산 진달래는 아직 바람끝이 매서운데도 어느덧 연분홍 꽃망울을 머금었고, 황매(黃梅:일명 생강나무꽃)는 물기 가득한 가지 끝에 노란 꽃송이를 피워냈다. 바닷속 쭈끄미들은 벌써부터 연안으로 찾아들어 산란(産卵)에 부산하고, 아랫배가 불룩해진 숭어들도 산란 장소인 온화하고 안전한 갯벌 언덕을 향해 여행길로 접어들었다. 어김없이 도래하는 자연 현상과 계절에 의한 본능의 몸짓은 인간도 어쩔 수 없는 것. 청춘을 압살하며 스스로를 구도의 절간에 가둔 채 정진하고자 했던 젊은 여승마저도 아름다운 화초들이 날로 꽃다워지며 향기를 발산하는 봄의 향연 앞에서는 모닥불처럼 가슴속에 피워오르는 사바에의 향수와 이성에의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장내하혜시청춘(將奈何兮時靑春:아-어이할거나 이내 청춘을!-고려때 여승 설요의 반속요중 마지막구절)이라 절규하며 결국의 파계(破戒)를하고 세속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우리 같은 속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역사의 숨결, 문학의 향기와 만나다.-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을 추슬러서 봄맞이를 떠난다. 설도항 둘레길 12km는찾는이들을 위해 염산면(면장 박래학)에서 주변환경을 말끔히 단장해놓았고 안내표지판까지 설치했으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자전거까지 준비해두었다. 면사무소에서 출발하여 설도항에 이르면 설매산을 시원지로 하는 논지미강(論岑江)을 따라 갯벌을 좌측으로 두고 우측으로는 물오른 청보리가 더욱 짙푸른 염산들이 펼쳐진 둑방길은 노을 따라 서쪽으로 가는 길이다. 썰물에 드러난 갯벌은 봄 햇살에 반사되어 그 윤기가 더욱 자르르한 것이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주인공들보다 더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미를 지녔다. 해수면에 부딫혀 내게로 날아온 바람은 숲 속의 유산소 함량보다 40배나 많다고 하니 그 바람을 쉼호흡하는 마음 또한 상쾌하기 그지없다. 한 참을 달려 합산 선착장에 도달하면 이윽고 펼쳐지는 푸른 해원, 염산골 저 너머로 펼쳐진 수평선 위로 낙월도 행 여객선이 떠가는 모습을 보며 잠시 어린시절의 동경에 젖어본다 . 그 곳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니 월평항으로 들어가는 도란강(歸來江:귀래강) 초입에 자리잡은 모래섬. 아무리 파내도 자고나서 보면 원래대로 다시 모래가 쌓인다 하여 영광팔괴(靈光八卦)의 하나로 지정 된 백초(白礁)가 있고 그 아래는 가뭄이 극심할 때 고을 원님이 기우제를 정성스럽게 지내면 비를 내려준다는 수중제단(水中祭壇)이 있었는데 기우제를 지낸 원님은 해가 지기 전에 성(城) 안으로 들어가야만 살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 320여년 전 극심한 가뭄이 들어서 당시 원님이었던 임호 군수가 신하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스레 기우제를 지낸 다음 급히 관아로 돌아가던 중 지금의 고추시장 옆 마을에 도달하자 해가 저물ㅇ고 마른하늘에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임호 군수는 그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는데 그 때부터 그 마을 이름이 벼락샛터가 되었다는 목민관(牧民官)의 위민의 마음과 애닲은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그 사연들에 대한 필자의 절구(絶句)다.
白草烏鳴(백초오명)-신추에서 우는 까마귀 소리(염산32경중 겨울 제1경)
陰陽水流歸來江(음양수류귀래강)-도란강 굽이굽이 흐르던 음양수도
元主雨祭水中壇(원주우제수중단)-고을 원님 제주되어 기우제를 지내던 수중제단도
昔年傳說古今殘(석년전설고금잔)-지금은 모두 흘러간 옛이야기로만 남아있고
金沙白草啞啞烏(금사백초아아오)-신추 금모래 언덕에선 깍-깍-물까마귀만 우는구나.
그리고 그 강을 거슬러 올라 야월리에 도달하면 또하나의 영광 팔괘인 음양수(지금은 가음방조제 축조로 없어짐)가 나온다.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합산 마을앞들 청보리 논길을 지나서 양일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문학의 향기! 대흥염전, 양일 마을, 봉양제 둑방길 등은 영광출신 소설가 송영의 작품 “투계” “마테오네 집” “시골우체부” “염산의 은빛 종탑” 등의 주 무대이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좌절과 삶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삶의 세계로의 이상주의와 실존주의를 구현했던 영광이 낳은 대 문호 송영 님의 철학과 문학적 향기가 깊이 스민 곳이기에 문학비라도 세워 그 혼의 숨결을 많은이들이 호흡할수 있게 하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고보니 또한 필자의 졸렬한 싯구로나마 그 아쉬움을 위안받고자 했다.
南嶽防築(남악방축)-양일 앞 저수지 둑방길(염산32경중 여름 제4경)
听侯几時來遞夫(은후궤시래체부)-기다리는 우체부는 언제쯤 오려는지
細路防築咪咪羊(세로방축미미양)-저수지 둑방 좁은길엔 어린 양이 울고 있고
長天夏日同行心(장천하일동행심)-기나긴 여름날을 해동무하는 마음이여!
可悲終視降霎雨(가비종시강삽우)-가여운 응시 끝엔 이슬비만 내리네.
그렇게 처음 출발지인 면사무소로 돌아오니 약 1시간정도의 봄맛이가 끝난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