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원장

2010년 2월, 묘량면에 유일하게 남은 시골학교인 묘량중앙초등학교는 절망적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나니, 학생 수가 겨우 12명만 남은 탓이다. 폐교 위기의 학교 통폐합 대상이 된 건 당연지사.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농민들과 더불어 농사를 짓고 밥을 먹으며, 작은 시골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농촌의 삶터를 새롭게 살리는 지역일체형 공동체’를 꿈꾸었던 여민동락공동체, 그 설립정신의 바탕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셈이었다.

당시로선 ‘학교가 마을이고, 그 마을전체가 곧 학교’라는 건 꿈같은 얘기에 불과했다. 이미 학교살리기를 두어 번 실패해 본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학생 없는 시골학교는 농촌에 대한 절망과 패배주의의 구체적 단서였다. 어쩌면 그게 농촌현실에선 가장 이성적인 판단인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은 붐비고, 아이 울음소리는 없는 마당에, 어느 누가 시골학교가 어디 온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여민동락은 무모했다. 귀촌 후 이미 시골학교의 학부모인 민하 아빠(권혁범-여민동락노인복지센터장)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본래 아이들을 좋아해서 교사가 꿈이었던 민하 아빠는 신명을 바쳐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학교발전위원회도 만들고, 주민공청회도 열고, 중고 통학차량까지 장만해서 운행을 했다. ‘한울타리’라는 학부모 모임도 조직하고, 강연회와 토론회 등 공동학습까지 진행했다.

지역언론과 긴밀하게 유대해서 주민들에게 홍보도 하고 지혜도 구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들 언제까지 지탱될까 반신반의 했다. 이런저런 말도 나왔다. 오해도 있었다.

“우리도 다 해봤는디, 해도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제. 젊은 사람들이 되지도 않을 일을 시작했다가, 쪼끔 지나믄 나몰라라 할 것임서”, “학생들도 없응께 폐교를 시켜서 읍내 큰 학교에 보내야 동문이라도 많고, 나중에 군의원이라도 한 번 해먹을라믄 보탬이 되제...뭣할라고 오기부리고 그렁가 몰라. 통폐합되믄 돈도 준단디”, “여민동락이 복지만 하는 줄 알았는디, 학교문제까징 신경쓰는 것 보믄 뭔 딴 뜻이 있는 거 아녀?” 심지어 어떤 지역운동가는 어디 개업식 술자리에서 “여민동락공동체 활동가들이 근본적인 과제에는 소홀히 하면서, 복지니 학교살리기니 그런 부차적인 일만 하니까 우리 운동이 쇠퇴하고 사람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처음엔 정말 난감했다. 속도 많이 상했다.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이러다 실패하면 신용만 잃고 여민동락공동체의 근본까지 흔들리는 건 아닌가 하고. 더구나 학교 교사들 일부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몇 분은 조용한 시골학교에 그야말로 ‘조용히’ 있다가 가려고 왔는데, 갑자기 지역민들이 학교를 살리자고 하니, 대놓고 딴청을 피기도 어려운 처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폐교직전의 묘량중앙초등학교에 드디어 봄이 오기 시작했다. 2012년 기존 재학생 15명, 신입생 9명, 전학생 10명......총 34명으로 늘고, 병설유치원에도 15명으로 만원이다. 정원미달로 안 계시던 교감선생님도 오시고, 정열과 철학을 가진 선생님들도 충원됐다. 학년통합 복식수업도 대부분 해소됐다.

무엇보다 ‘밤에도 열린 학교’를 통해 온종일 돌봄교실이 정착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토요 열린학교가 인기만점이다. 풍물, 바이올린, 독서지도, 한지공예, 제과제빵, 마술, 탁구, 피아노, 연극, 대안체험 활동 등 학부모들의 재능기부와 지역사회의 관심, 선생님들의 성실로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공교육 속 대안교육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이미 지역의 문화센터 구실을 하고 있고, 농촌 패배주의와 절망의 단서에서 마을공동체의 희망의 거점으로 살아나고 있다.

그런 덕분에 2011년 전남교육청 평가 영광군 유일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는 성과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교육당국과 협동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이다. 주민공청회에서 “학교가 사라지면, 여민동락도 다시 도시로 나갈랍니다”고 공수표를 던지면서 시작한 ‘행복한 작은학교 만들기’ 3년, 희망의 밑그림이 희미해진 농촌에 아주 작은 ‘가능성의 밀알’을 싹틔운 것만 해도, 이미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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