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선생님 영광이 왜 천년의 빛이어요? "
진희네 가족은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은 진희의 여동생만 빼고 모두가 공무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진희까지 경남도청에서 근무를 한다. 그들은 지난 해 여름 염산면 두우리 갯벌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광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일 년이 더 지나서 가족 모두가 다시 영광으로 여름휴가를 왔다.
“작년에는 단순히 마라톤 참석을 위해 왔는데 이번에는 영광을 보다 더 자세하고 깊이 느껴보고 싶다는 가족들의 생각이 일치됐다는 것이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에 영광에 도착한 그들과 만나서 영광이 처음 시작되는 한마음 공원으로 안내 했다. 그리고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돌아 법성에서 굴비 한정식을 먹는 시간, 진희가 내게 따지듯이 물어본 첫 번째 질문이 “영광이 왜 천년의 빛이어요?”였다.
점심을 마친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백수 해안도로를 향했다. 법성포(조아머리左右頭, 숲쟁이공원 토성과 조창, 단오제, 동학과 김지하 시인의 할아버지이야기 등...) 12경이 집중 되어있는 곳인데 아직 늦여름 한 낯이라 대통치의 저녁노을(通峙落照)과 동편의 고개 너머로 떠오르는 가을달(東嶺秋月), 뒷산의 단풍 숲(後山丹楓), 칠산 밤바다에 피어난 고기잡이 배들이 파도를 타며 가물거리는 불빛들(七山漁火)은 이야기를 통해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선진나루(船津歸帆)를 지나 은선암(仙庵暮鐘)을 이야기 하고, 과거 간척이 되기 전 지금은 육지가 되어버린 한시랑 들에 바닷물이 가득 차 오른 풍경속의 쇠드랑섬(鼎島落雁)과 마촌 마을(馬村草家)을 먼발치로 바라보며 100여 년 전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태극선(太極線)으로 구비쳐 흐르는 와탄천 다리를 건너 영산성지를 지나고 매 바위(膺岩漁笛) 밑에서는 옛사람들(우암 송시열과 그 일행들)의 흔적과 숨결을 느껴본다. 만삭의 봄날에 구수산 언저리를 가물거리는 아지랑이(九峀靑嵐)도 지금은 볼 수 없는 계절이다. 다만 가슴으로만 느껴본다.
홍농의 덕게미에서부터 시작되어 가마미, 선창개미, 자갈개미(자갈금)로 이어져 구시미, 대초미...등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미(尾)자의 지명들을 따라온 길, 해수온천에서 몸을 담그고 사념의 머리를 씻는다. 계속되는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려서 염산의 숙소로 가는 시간은 이제 태양의 고도가 많이 낮아져 제법 서늘한 바람까지 불어온다.
차는 천천히 달리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속도는 차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동백구미, 구수산과 까봉전투, 홍곡리 당산나무 숲, 대절산 화미, 아비루농장과 서부농민조합의 8건달, 염전길과 영화 서편제, 신재생 에너지 태양광및 풍력발전,..할이야기는 많은데 어느덧 염백교 건너면 한여름 햇빛에 온 몸 가득히 찐한 향기를 머금은 신성리 포도단지와 시설하우스들, 구름 속 용이 승천을 하고나자 봉황이 품위 있게 나래를 접은 봉덕산을 휘감고 돌아 아침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연화 저수지변의 숙소에 일행은 여장을 풀고 저녁을 간단히 마친 후 낙조를 보기 위해 서쪽으로 지는 해를 따라 두우리로 향했다.
양일 마을에서 내려다보는 저수지 뚝방길은 송영님의 소설처럼 아직도 아득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피안으로 이어져 있다. 들판에 벌써 벼이삭이 피어나고 염전마다 채렴을 해놓은 소금들이 한여름에 내려서 쌓인 눈처럼 희다.
어진 군수의 비극적 애환이 서려있는 수중재단과 음양수. 조천고을과 돌미륵...등 끝없는 이야길을 따라서 도착한 곳은 칠성신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북두칠성 중에서도 가장 비중 있는 중심의 별인 문곡성의 자리에 해당되는 두우리, 그 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다. 그저 보는 사람 스스로가 느껴야 한다. 다음날 아침을 먹기 전에 염산면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자전거를 타고 염산 둘레길를 도는 시간은 해수면과 갯벌에 부딫혀 우리의 폐부를 파고드는, 숲 속 유산소 40배에 달하는 해풍 속의 유산소를 호흡하는 시간이다.
아침을 먹은 후 설도항과 향화도 항의 싱싱한 생선 냄새와 짭조름한 젓갈 냄새, 그리고 온갖 갯내음과 함께 어우러진 사람 냄새에 취해본다. 오후엔 불갑사와 연안 김씨 종택을 둘러보며 잠시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 속으로의 원유를 탐미한다. 그리고 백수읍 장산리 어느 선생님 댁의 소박하면서도 운치 있는 정원을 둘러보았다. 칠산바다, 소금, 그리고 사람들까지 빛과 함께어우러진 곳, 마지막 날 새벽에 일어나 봉덕산에 올라서면, 동녘하늘이 여명으로 물들다가 이내 연실봉의 윤곽을 그려내며 불갑산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 저만큼에서 그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던 진희가 소리친다. “이제야 알겠어요. 왜 영광이 천년의 빛인지를...”
영광군민 모두가 영광의 앰블럼 “천년의 빛” 스티커를 군에서 제공받아 소유한 차량에 부착하고 전국을 누빈다면 돈 안들이고 우리 영광만의 독점적 가치를 보다 더 효과 적으로 세상에 알릴 수 있을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