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뿌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뿌리에 대한 의식이 없이 사는 것은 돌아갈 곳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농업은 국가의 뿌리다. 그 농업과 농민을 홀대하는 대한민국은 뿌리 약한 나무와 같다. 강한 농업을 국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세종때 집현전 학사 정 인지는 용비어천가에서 ‘뿌리 깊은 나무는 아무리 센 바람에도 움직이지 않으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다’고 했다. 뿌리의 소중함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조상은, 고향은 우리의 뿌리다. 그 뿌리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자랐다. 돌아가신 부모를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3년간이나 곁에서 모신 우리 선조들의 지극한 효심이라니! 강인한 생명력을 길러 주고, 평생을 간직할 즐거운 추억들을 심어준 고향땅. 그렇게 존경스러운 조상과 은혜로운 고향은 정말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조직에서 당할 불이익이 두려워 본적을 바꾸는 사람들. 뿌리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자식들은 본적이 어디냐는 물음에 ‘서울’이라고 하며 살 것이다. 뿌리를 잊거나 잘못 알고 살기 쉽다. 그렇게 대를 잇다보면 ‘뿌리가 없는 집안’ 이나 ‘뿌리가 바뀐 집안’이 되어버릴 것이 안타깝다. 뿌리에 대한 의식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돌아갈 곳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자칫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다 조상님들과 고향땅 까지 욕 먹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 다함께 잘살자는 공동체 의식도 희박해진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뿌리를 잊거나 부정하는 것은 자식들이 반듯하게 자랄 수 있는 기본적 요소를 빼앗는 것과 같다. 뿌리에 대한 자긍심은 쉽고 편하며 즐거운 길만 좇아 ‘막 나가는’ 자아(自我)를 잡아준다. 자식을 사람답게 키우기 위해서는 돈 보다 훨씬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스스로의 뿌리가 약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되면 강하고 자랑스러운 뿌리로 가꾸면 된다.

대한민국도 뿌리를 찾고 그 뿌리를 강하고 자랑스럽게 가꾸어야 한다. 가난했던 시절 국민을 먹여 살린 것은 농업이고 농민이다. 농업과 농민이 없었다면 공업화도, 산업 발전도 불가능 했다. 세계 12대 무역국가로 세계 각국의 부러움을 사는 대한민국도 없다. 이런 대한민국이 농업과 농민은 제쳐두고 재벌 위주 정책으로 일관한지 오래다. 뿌리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고 있다.

세계 최강국으로 인정받는 미국이 한·미 FTA에서 가장 중요시한 분야는 농업이다. 농업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인식에서 경제 정책을 수립, 시행한다는 증거다. 농업이 뿌리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 있다. 오랜 세월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대한민국이 다른 것은 미국을 따라가려고 애쓰면서 왜 농업을 뿌리로 인식하지 못하고 홀대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라의 뿌리인 농업을 홀대하는 대한민국은 영원히 강대국의 대열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미국에서 배워야 한다. 강한 농업을 국가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수출이나 첨단 산업 위주의 국가 경영은 결국 대한민국의 경제는 뿌리는 약하고 잎만 무성한 나무와 같다. 가뭄과 홍수, 한파가 심해지면 결국 그 나무는 쓰러져 죽고 만다. 대한민국이 가지와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농업이라는 뿌리의 소중함을 자각해야 한다.

추석을 맞는 농민들의 마음이 무겁다. 준비 없는 상태에서 만난 FTA의 파고를 넘기도 힘든 판에 수확을 앞두고 밀려온 태풍이 들녘의 풍요를 앗아간 때문이다. 축산농도 마찬가지다. 물가를 잡는다는 미명으로 걸핏하면 대량으로 수입하는 바람에 소·돼지의 가격이 예년보다 40% 정도나 떨어져서다.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농민들은 자식들에게 뿌리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 벌초를 하고 차례 상 준비 하느라 분주 하다.

조상 묘를 선조들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옮겨 놓고, 역귀성에 환호하고, 해외여행 떠나고, 콘도 같은 데서 차례 상 차리는 행위는 ‘조백’없는 ‘짓’이다. 돈께나 벌고 벼슬께나 하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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