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한준 / 우도농악 상쇠 예능보유자

“상쇠와 함께한 풍물인생 53년은 행복했다“
故 전경환의 만남으로, 무형문화재 상쇠 예능보유자로
호남우도의 쇠가락 이어 가는 일에 ‘열과 성’다해
문한준은 농악으로 전남도지정 무형문화재 호남우도농악 상쇠 예능보유자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악을 익혀 인간문화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나이 쉰이 넘어 검정고시로 고입, 대입자격을 얻어 대불대학 전통연희학과를 졸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 문장선씨와 이순덕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면직원이었던 아버지가 2살 때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재가해버려 고생하며 자랐다. 할머니의 뜻에 따라 큰아버지 양자로 들어갔으나 집안이 어려워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가 복학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는 매년 정월 마당밟기를 했고, 이월 초하룻날, 삼월 삼짇날,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날 등 거의 매월 농악 판이 열렸다. 큰 아버지가 마을 농악대의 장구잽이인 데다 설 소리꾼 이었기에 자연스레 농악가락을 듣고 살았다.
그는 상쇠의 쇠가락 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농악대를 따라다녔고 틈만 나면 아무 물건이나 두드리며 꽹과리가락을 익혔다. 그러다가 마을 농악대의 상쇠인 ‘개팽이 양반’으로 부터 정식으로 쇠를 배울 수 있었다. 이웃 마을인 세포 마을에서 남의 집 일도하고 공장생활을 하면서도 어렵고 힘든 시절을 농악 치는 재미로 참고 견뎠다.
그는 광주역 앞 도깨비 시장에서 장사할 때도, 결혼 후 비아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농악을 떠난 적이 없다.
故 전경환과의 인연은 1988년 광산농악 부쇠를 뽑는다는 말을 듣고부터다. 당시 광산농악의 상쇠는 전경환과 친동생인 전경석으로, 문한준은 광산농악 부쇠로 뽑혀 그 때부터 고 전경환과 전경석에게 사사를 받았다.
광산농악의 상쇠로 활동하면서 전국경연대회에 수차례 나가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광산농악의 지대한 공을 세워 광산문화원장으로부터 공로패를 수상하는 등 광산농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특히 전경환 선생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새로운 농악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전경환 상쇠는 뛰어난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농악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춘 이 시대 최고의 우도농악 상쇠였다. 그는 전경환이 상쇠로 있는 영광농악단의 부쇠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전경환으로부터 목탈제작기법을 배워 현재도 이 분야에서 상당한 기량을 갖고 있다.
농악단에서 잡색들이 목탈을 쓰는 경우는 우도농악단이 유일하다. 이 목탈은 오동나무를 깎아 손으로 만드는 힘든 작업인데 잡색들이 이 탈을 쓰고 민속극을 하면서 재담을 늘어놓는다. 탈은 대포수, 양반, 참봉, 할미, 조리중, 비리쇠, 혹적삼, 좌창, 우창 , 각시 등 10여종에 이른다.
문한준은 한실농악과 세포농악의 상쇠를 하면서 영광농악단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는 91년 1월 전경석씨가 사망하자 그에게 배운 가락을 전경환 상쇠를 통하여 다시 확인 받아 호남우도의 쇠가락을 이어 가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농악을 치는 것이 아니고, 농악을 치고 남는 시간을 할애하여 농사를 짓는 식이었다. 꾸준히 영광을 오가며 전경환 상쇠로 부터 쇠가락을 전수 받았다. 전경환 상쇠가 그렇게 배웠듯이 선생이 농악을 치러 갈 때에는 어김없이 따라 다녀야 가락을 조금이라도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대가로 1997년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7호 호남우도농악의 전수교육보조자(후보자)로 인증되었고, 2008년 전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상쇠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그는 이후 문한준 우도농악보존회를 만들어 영광을 중심으로 농악을 전수시키면서 광주에서도 농악전수교육을 하는 등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전수 장학생은 하유화, 강덕순 등이고 아내 조정자도 이제 농악인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우도농악은?
호남 우도농악을 말할 때면 흔히 영무장 농악을 가장먼저 떠올린다. 영무장 농악이 호남 우도농악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적인 농악이기 때문이다. 영무장이란 전라남도 영광, 장성, 고창지역의 농악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세지역의 농악 중에서도 영광농악은 가장 뛰어난 농악으로 친다. 그것은 영무장 농악의 명칭에 드러난 바와 같이 영무장 농악 중에서도 지역적으로 가장먼저 영광농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광 우도농악의 가장 큰 특징은 잡색이다 잡색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오동나무로 수작업을 하여 만든 목탈을 쓰고 민속극과 연희놀이를 하며 즐긴다. 특히 고 전경환의 목탈 작업의 기술에도 뛰어나셨는데 목탈을 작업하실 때면 문한준 선생님을 불러 함께 수작업을 하셨으며 그 기술과 기구는 현재 문한준 선생이 보유하고 있다.
탈의 종류로는 대포수, 양반, 참봉, 할미, 조리중, 비리쇠, 홍적삼,우창,좌창,각시 총 10가지의 목탈이 있다.
1월초에 당산제를 지내고 공동 우물굿, 마을 철룡굿을 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가정의 재앙을 몰아내고, 행복을 비는 마당밟이 굿을 치는데 그중 상쇠놀이와 설장구놀이가 있다. 특히 소고놀이는 몸짓이 다양하고 화려하여 일품이다.
영광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우도농악은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으며, 고 전경환의 뒤를 이어 현재 문한준이 2008년도에 상쇠 보유자로 지정되어 우도농악 계승발전이 이바지하고 있다. /최미선 기자
문한준은
1967년 한실 개평양반에게 쇠를 배우다
1984년 비아 1리 새마을 지도자
1988년 광산농악대 입단-전경환 ,전경석으로부터 우도농악 사사
1989년 제3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마산)
1990년 제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제주)
1991년 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여수)
영광농악단 입단
1994년 장성 문화원 주최 정월대보름 민속놀이 참가 상패 받다
199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우도농악 전수교육 보조자(후보자)
2003년 고입 입학자격 검정고시 합격
2005년 대불대학교 전통연희학과 입학
남도국악제 개인상(상쇠)
2007년 남도문화재 청소년부 지도상 수상.
2008년 전라남도 무형무화재 우도농악 상쇠 예능보유자 지정
문한준 우도농악보존회 창립 (회장 취임)
2009년 대불대학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