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다. 호남 ‘왕따’는 저들의 항구적 집권 시나리오일 수 있다. 역대 최악의 정권이 정권을 재창출 한 비극은 민주당의 작품이다.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새해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

민주화의 몸살을 앓던 80년대 조선대학교에서 박철웅 총장 일가가 물러났다. 그후 조선대 교직원들이 “하늘 색깔이 달라졌다”고 했다. 대선후 나의 하늘도 색깔이 달라졌다. 지난 1주일간 신문·방송과 담을 쌓았다. 쏟아내는 뉴스들과 멀어지기 위해서다.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것들. 그것들을 보고 듣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다. 생각하기도, 움직이기도 싫었다. 한숨만 나오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 세상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신문·방송의 뉴스와 그 뒷 얘기들을 접해온 삶이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35년간 이어져온 습관의 붕괴다. 화도 나고 답답하다. 의욕 상실이다.

주위에서 “독립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대놓고 동조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대한민국의 호남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주(州)가 닮았다. 전통적으로 소외 당해온 바르셀로나가 최근 중앙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독립을 요구 했다. 우리도 독립을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적 성향이 다른 모든 지역과 현저히 다르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1300년 ‘왕따’의 역사를 이어온 호남에서 자조 섞인 ‘독립’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소통’ ‘화합’ ‘배려’를 외치는 목소리는 전에 없이 크다. 소통이 되지 않고, 화합과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서로의 이해에서 출발 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소통도, 화합도, 배려도 없다. 실패한 정권을 심판하지 않는 다른 지역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호남이 어떻게 그들과 소통하며 화합할 수 있는가. 가진 것이 없으니 물론 배려할 것은 아예 없다. 슬픈 현실이다.

호남을 ‘왕따’ 시킨 다른 지역 사람들은 “공산당 보다 지독하다”고 한단다. 그 속에는 호남에 대한 멸시가 깔려 있다. 앞으로도 계속 호남과는 소통도, 화합도, 배려도 할 수 없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본의 아니게 호남이 갈등의 원인이며 중심이 됐다. 1300년간 이어온 호남 ‘왕따’의 역사를 계속 써내려 가겠다는 ‘음모’도 엿보인다. 호남 ‘왕따’를 위해 계속 뭉쳐야 한다는 저들의 항구적 집권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새 정권의 호남 대책으로 ‘인사 대탕평’이 거론되고 있는 듯 하다. 말도 안된다.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물론 전시, 홍보용으로 몇 사람 기용할 수는 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은 호남이 ‘왕따’가 아니라고 우기는 데 필요한 도구로서 쓰일 뿐이다. ‘대탕평’했다고 우기는 작은 증거품 정도일 뿐이다. 연극이나 영화의 소품과 같은 존재다.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논에 많은 물을 댈 어리석은 농부는 없다.

역대 최악의 정권이 정권을 재창출한 ‘비극’은 야당인 민주당의 작품이다. 먹으라고 차려 놓은 밥상을 차버렸다. 지난 4월 총선때다. 잘 나간다 싶으니까 당 대표가 된 한명숙 이란 여자가 ‘개판’을 쳤다. 당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국민을 위한 것은 더욱 아닌 공천을 해버렸다. 제멋대로 해버렸다. 사천(私遷) 이다. 덕분에 망조가 들었다고 자타가 인정하던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만 용(龍) 됐다. 잇달아 상승 기류를 탈 수 있었고 승천에 성공 했다. ‘대통령 박근혜’는 민주당의 ‘작품’인 셈이다. 더 정확히는 한명숙의 작품이다.

호남은 그 민주당에 수십년간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물을 댔다. 한화갑도, 한광옥도, 김경재도 키웠다. 어찌 허망하지 않고 한숨이 안나오겠는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두 ‘내탓’이다.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 새해다. 모두 떨쳐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한데 나아가는데 주저하지 말자.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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