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언론이 정경유착의 단맛에 빠졌다. 박근혜 후보 당선의 1등공신은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아니다. 그들에게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한 언론이 1등 공신이다. 그들은 누가 더 큰 공을 세우는지 경쟁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선자가 성공하려면 언론부터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전두환 정권은 정권을 잡고 맨 먼저 언론을 장악 했다. 언론사와 언론인들을 ‘정리’ 했다. 방송의 9시 뉴스는 전두환이 출연하는 화면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 했다. 소위 ‘땡전 뉴스’다. 신문도 매일 1면에 사진과 함께 전두환이 등장 했다. 정리한 언론사에는 경영에 도움을 주었다. 언론인들에게도 먹고 사는 데 어렵지 않게 해주었다. ‘메이저’를 자처하는 신문이나 방송은 그렇게 전두환 정권 시절 풍부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다.

먼저 경영난이 풀렸다. 그리고 남아도는 ‘영양’과 정권의 도움으로 몸집을 불려 나갔다. 신문 말고는 겨우 월간 잡지 하나 정도 더 만들던 신문사들에 매체 관련 회사 간판들이 늘었다. 그냥 ‘신문사’에서 언론 ‘그룹’으로 몸집을 불린 것이다. 이렇게 전두환 정권을 전환점으로 ‘호시절’을 만난 신문사들은 이명박 정권 들어 방송 진출까지 성공 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재단된 이들 신문·방송에는 또 그 입맛을 맞추는 언론인들만 살아남았다.

일제에 항거 하다 탄압 받고, 자유당 정권을 긴장하게 만들었으며, 군사 정권의 독재에도 ‘백지 광고’로 저항하던 언론은 사라졌다. 한겨레신문이 있었다고? 그것도 알고 보면 대한민국에 언론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독재 정권의 ‘소품’ 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언 유착의 단맛은 대한민국의 언론과 언론인들의 지사(志士) 정신을 말살 했다. 아니 그들 스스로 이윤을 추구하는 ‘상사맨’으로 변신 했다.

부정부패와 사회의 타락을 고민하며 자기는 물론 가족의 희생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던 언론인들은 이제 없다. 고액 연봉자로서 적당한 특권까지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직장인일 뿐이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은 사라지고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처세에 능한 부류일 뿐이다.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언론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을 만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권의 나팔수에서 비판자로 변했다.

돈과 특권을 제공하지 않는 정권과 노골적으로 갈등을 빚었다. 국민들에게는 마치 두 정권이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연출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억울해 한 한나라당의 의식과 다르지 않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그들 ‘메이저’ 언론들의 행태가 이를 증명 한다. 살림이 좀 괜찮은 신문과 방송들은 하나같이 박근혜 후보의 편을 들었다.

마치 박 후보의 당선 후 누가 더 큰 공을 세웠는가를 경쟁이라도 하는 듯 했다. 신문이 신문이기를 포기하고 방송이 방송이기를 포기한 모습으로 비쳤다. 등장하는 학자나 전문가들도 마치 얼굴에 철판을 쓴 것처럼 일방적이었다. 논리도, 상식도, 역사 인식은 물론 양심과 정의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조건’ 이었다. 정권의 편을 들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경험 철학이 그들을 ‘무조건 박근혜’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

언론에 등장한 ‘전문가’ 들도 문재인 후보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마이너’였고 박근혜 후보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메이저’였다. 그런 ‘판’에서 대선을 치렀다. 50대 이상의 안정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몰표로 당선 됐다고? 박근혜가 잘났고 그의 정책이 좋다고 했다. 문재인은 불안하고 정책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런 보도만 접하는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박근혜 당선의 1등 공신은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아니다. 신문과 방송이다. 박 당선자는 언론에 크게 신세를 졌다. 그 언론에 등장한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 권좌에 오른 데 따른 논공행상이 뒤따를 것이다. 언론은 죽었다. 박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면 언론부터 되돌리길 바란다. 귀를 열고 눈을 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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