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더 이상 ‘표’가 필요 없는 박준영 전남지사는 점수를 까먹었다. ‘표’가 필요한 강운태 광주시장은 점수를 땄다. 정치 현실의 차이다. 박 당선자도 이제 ‘표’가 필요 없게 됐다. 오직 국가와 역사 발전의 길만 가면 된다”

호남인의 투표 행태에 대해 박준영 전남지사는 “충동적”이었다고 비판 했다. 비난이 쏟아졌다. “사퇴하라”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박 지사의 발언으로 지역민의 심기가 불편한 시기에 강운태 광주 시장은 지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강 시장은 또 호남 총리론에 관해 예산등 실무 책임자급에 지역 인재들이 포진되는 것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 지사는 ‘점수’를 까먹었고 그 틈에 강 시장은 ‘점수’를 땄다.

세간에서는 박 지사가 새 정권에서 ‘호남 총리’로 기용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하마평이 나오자 박 근혜 당선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같은 발언을 했을 것이라고들 했다. 정말일까? 박 지사가 총리가 된다고 치자.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높은 벼슬을 한 인물로 기록되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실세 총리? 박 당선자의 스타일로 미루어 새 정권에서 벼슬을 하려면 대통령 박근혜의 의중을 알기 전까지는 꼼짝도 않는 것이 자리를 보전하는 ‘비결’이다. 잃는 것은? 한화갑·한광옥·김경재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그에게도 새겨져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욕’의 대상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박 지사 정도의 ‘내공(內功)’이면 모를 까닭이 없다. 특정 정파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계속되는 한 지역 갈등은 해소 될 수 없고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발언의 의도라고 믿고 싶다. 도민의 투표로 오른 도지사 직(職)이 대통령의 임명으로 오른 총리 직(職)보다 명예롭고 자랑스러우며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당신에게 도지사와 총리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도지사 일 것이 틀림없다. 박 지사의 발언을 지역 구도가 깨지지 않는 정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믿는 이유다. 아니 믿고 싶다. 어떻든 박 지사의 발언은 상처 입은 지역민의 가슴에 소금을 뿌렸다. 표현 방식이나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

강운태 시장의 발언은 박 지사의 발언과 내용과 결과에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지역의 투표 행태에 대해 박 지사는 부정적, 강 시장은 긍정적이다. 총리를 하고 싶은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을 낳았는가 하면 총리 보다는 정부 실무 책임자가 더 필요하다고 역설 했다. 박 지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강 시장은 ‘점수’를 땄다. 두 사람이 처한 정치적 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박 지사는 3선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표’가 필요 없다. 원로로서 지역과 국가에 봉사하는 길을 가야 할 사람이다. 반면 강 시장은 ‘표’가 절실하다. 선거가 1년 6개월이 남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다. 부임 이래 이런 저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줄줄이 형사 입건되고 구속 됐다. 시민사회단체와의 사이도 껄끄럽다. 예상되는 도전자들도 만만치 않다. 박 지사의 발언이 본인에게는 곤경을, 강 시장에게는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그리고 ‘점수’를 땄다.

박 근혜 당선자의 정치적 현실은 어떠한가. 이제 개인적으로 더 이상 ‘표’가 필요 없다. ‘표’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라와 역사의 발전만을 위한 길을 가면 된다. 새누리당 정권의 재창출도, 개인과 측근의 이익에도 구애 받지 않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새 정부 조직 개편안이 나오고 뒤이어 기용될 인사들의 면면도 드러날 것이다. ‘호남총리론’이 힘을 잃고 있다. 실세건 허세건 호남 출신 총리가 나쁠 까닭이 없는 호남 입장에서는 입맛이 쓰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대탕평’ 인사 공약에 거는 기대가 작지 않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장·차관 몇 자리에 호남 출신을 기용하는 무늬만의 ‘대탕평’은 사양 한다. 강운태 시장의 말대로 차라리 영향력 있는 실무 책임자 급에 많은 호남 출신을 기용하길 바란다. 헛뭍 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