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이/ 영광신문 편집위원
지난 해 대선 과정에서 한 후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는 말을 해서 한 때 국민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쉘 실버타인(1932~1999) 이라는 미국 작가가 쓴 동화(童話) 제목이다. 아주 짧은 그림책 이야기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도 큰 감동을 안겨준 명작이다. 단 20세기 말에야 발표된 작품이어서 장년층 보다는 청년층에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 동화는 나무 한 그루가 한 소년에게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는 헌신적인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무는 어떤 불평도, 아까워하는 마음도 없이 잎과 열매, 가지, 몸통을 차근차근 소년에게 다 내어 준다. 나무는 힘없는 늙은이가 되어 돌아온 그 옛날의 소년에게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까지 쉬어갈 의자로 내어 준다. 나무는 모든 것이 없어졌지만 노인(소년)이 앉아서 쉬어 갈 밑동이 남아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부모님을 상징한다. 우리를 둘러 싼 자연과 삶의 터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설날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설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귀향을 한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과 고향 산천을 찾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들은 미리서부터 아낌없이 줄 준비를 해 둔다. 까치나 강아지들까지도 소년(?)이 당도했음을 알리느라 ‘작작’ ‘멍멍’ 부산을 떤다. 적막했던 고향집 산천에는 모처럼 활기가 넘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처럼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 바가 없다. 부모님 말고 우리들에게 자기 평생을 아낌없이 내 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람은 일단 자식을 두게 되면 누구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목숨 걸고 사랑 한다’는 프러포즈를 주고받았던 서방님과 마나님은 이제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앉는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어야 할 순위를 바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방님, 마나님이 삐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서로 더 많은 사랑을 베풀고자 한다.
지금까지 역사상 고향과 조국에 대한 향수가 망각되었던 시대는 없었다. 당연히 그런 지역이나 민족도 없었다. 모든 종교 경전에도 조국과 고향을 그리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며,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기를 원했다. 모든 전통을 부정했던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에서도, 개인주의의 극단을 달린다는 구미 각 국에서도 향수, 귀향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양의 크리스마스 귀가 문화, 동양의 명절 귀향 문화는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사회가 복잡해지고 각박해지기 때문에 귀향, 귀가 정서는 더 애틋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귀향, 귀가 정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문화를 지속시킬 것이다. 다만 세태가 변하면서 ‘아낌없이 받는’ 소년(?)들의 귀향, 귀가 의지가 점차 쇠퇴해 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무는 소년을 지치도록 기다리고 있을텐데 말이다. 요즘 명절 후 귀경길의 터미널, 휴게소의 쓰레기통에서는 멀쩡한 음식물 봉투가 발견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들이 싸준 된장, 고추장 따위를 슬며시 버리고 간 것이다. 요즘 젊은 며느리들에겐 ‘명절 증후군’이라는 심리병이 있다고 한다. 차례 음식 장만하고 가족, 친척들에 대한 음식 접대며 뒤처리가 심신을 고달프게 만드는 심리병이란다. 부모님 세대에는 없었던 병이다. 오히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온다면 신이 나고 아프던 허리도 일시 낳는다.
2012년에는 대선을 기화로 세대 간 갈등이 심상치 않게 나타났다고 걱정들을 한다. 인터넷에서는 ‘노인 지하철 무료 승차 폐지 서명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2013년부터는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호소하며 해당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 중 세대갈등 해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문화가 살아 있는 한 세대 간 소통만 도와주기만 하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정치 쪼무레기들의 지지층 결속 수단인 막말 폭탄이 터지지만 않는다면……. 늙은 말이 도리어 망아지 행세하는 일(『詩經』 小雅편 「角弓」)은 결코 없을 테니까.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세대 갈등 해소 캠페인을 펼치기만 해도 된다. 그 것은 ‘효 문화 회복 지원’ 이어도 좋고 ‘인성교육 지원’ 이어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