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채/ 영광군농민회장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확연히 달라진다.

소수 엘리트나 오랜 기득권을 유지하며 지배 권력을 향유하는 집단을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로 보는 관점과 사회적 재부를 창출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기초인 물질적 토대를 형성하며, 자신이 살아가는 민족공동체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항상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맨몸으로 맞서 왔던 대다수 민중이 주체라는 관점이다.

지배 집단 주체의 관점에서 대다수 민중은 정치적으로 항상 수동적 객체이며 지배 집단의 경제적 독점 구조를 뒷받침하는 개개의 부속물로 전락 해버린다. 따라서 그들 개인의 삶은 항상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나 유의미한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 주체의 관점에서 지배 권력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 민족공동체를 위협하고 방해하는 주된 집단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들과 대립과 공존을 거듭하며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주도한 민중과 이를 가로막고 자신들의 수구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 삶의 대부분을 소진하며 살아간 알량하고 비루한 삶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이분법이지만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선명하게 바라보는 의미 있는 역사 이해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민중 주체의 관점에서 이른바 올바른 정치란 정치권력이 공동체의 공공선을 위해 헌신하고, 사사로움을 배제하며, 대다수 민중의 주인 된 삶을 보장하는 선한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시각에서 최근 전라남도지사의 호남인의 대선 투표 결과는 무겁지 못하고 충동적인 투표 행위라는 우리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의 의미를 이해해 보려 한다. 이 문제 발언의 의미를 서두에 기술한 역사 보는 두 개의 관점을 잘 대입하여 들여다보면 부당한 당대의 권력에 맞서 싸운 선대들의 의로운 역사 발전 과정 모두를 부정하는 몰역사적 관점임을 금세 확인 할 수 있다.

권력에 취해 좀 더 막강한 권력의 진입을 삶의 목표로 하고 있는 정치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실패한 역사는 모두 경거망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엘리트주의적 논리가 이렇게 표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갑오농민전쟁(호남에서 거병),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이른바 남한(전라도) 대토벌 작전이라 명명된 대규모 항일 의병 투쟁(1909년),1980년 광주 민중 항쟁 등 거대 권력과 막강한 외세에 맞선 호남 민중의 혈맥이 닿아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 민중사다. 이런 흐름 위에서 호남의 절망을 베게 삼아 총칼로 권력을 거머쥔 한국 지배 집단의 권력 연장을 막기 위한 금번 대선 투표는 호남 민중과 대한민국의 진보적 개혁을 바라는 국민, 삶의 황폐함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망 하는 대다수 젊은 세대가 선택한 역사적 사건이다, 비록 실패 하였지만 결코 실패 일 수 없다. 권력의 교체에 실패한 권력이 보면 실패이지만, 민중사적 관점에서 금번 대선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희망의 징표는 무수히 많다. 권력이 분수를 알고 제자리에 서서 무한 헌신과 겸허함으로 무장되어 있으면 된다. 그것이 실패를 주도한 그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무겁지 못하고 충동적인 것은 현실 권력의 획득에 실패한 정치 집단과 정치적 미래로 향하는 길에 암초를 만나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도지사이지 호남 민중이 아니다.

금번 문제 발언의 의미는 호남 민중의 집안 단속이 꼭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일대 사건이며, 민중 자신이 역사의 주인임을 다시금 자각하는 시금석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적 사과를 정치적 실패로 오인하는 인식 수준으로 호남 민중에게 용서를 구 할 모양새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호남 민중 모두가 그의 발언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한다. 민중이 감시하지 않으면 권력의 탈선은 무한 반복 되는 게 역사의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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