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조기노후화와 장기운전중단
<지난호에 이어> 지난 1970년대 본격적인 상업가동을 시작한 선진국은 1980~90년대부터 증기발생기, 원자로 등 가압경수로(PWR)형 원전의 주요 설비에서 주요부위의 재료(Inconel 600)문제로 인해 설계수명(40년)의 절반 수준인 20여년만에 노후화현상을 겪어야 했다. 이로 인해 1990~2000년대 대대적으로 증기발생기가 교체되었는데, 미국은 69기(PWR)중 59기가, 일본에서는 24기(PWR)중 12기가 교체된 상황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동종 재질의 증기발생기 조기노후화가 전력수급위기 심화뿐만 아니라 대형 원전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핵규제위원회(NRC) 케네스 로저스(Kenneth Rogers) 위원은 지난 1988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주최 국제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증기발생기의 다수 세관이 동시에 파열될 경우 원자로 노심용융과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바 있다.
"우려할 점은 증기발생기 다수 세관의 동시파열이다. 이러한 사고는 같은 종류의 세관 열화(劣化)현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열화현상은 안전 여유도를 떨어뜨리므로 본질적으로 우리는 ‘장전된 총’과 같은 사고위험을 안게 되는 셈이다. 이런 조건에서, 압력천이나 지진은 증기발생기의 다수 세관을 동시에 파열시킬 수 있다. 이는 일차냉각수가 이차냉각수로 유입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차냉각계통의 압력을 높여 증기배관 격납시설 외부에 있는 안전밸브가 열리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차냉각수가 격납시설을 우회 통과해 원전외부 대기에 직접 노출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냉각수상실사고(LOCA)를 일으킬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전 노후화 국제심포지움>, 1988.
물론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4회 발생한 증기발생기 세관파열사고에서 다수의 세관이 동시에 파열된 경우는 없었고 단수 파열사고에 비해 상대적 확률이 낮은 편이다 (그림 15, 표 6 참조).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사례처럼 과거 원전에서 사실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상정할 정도로 낮은 확률의 사고도 얼마든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지난 드리마일 아일랜드,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세차례의 대형 원전사고는 국민의 안전을 원자력계의 공학적 발상과 그에 따른 확률론적 위험평가에 맡기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원전은 선진국보다 비교적 늦게 가동이 시작되어 짧은 운영이력을 갖고 있고 따라서 서구국가들과 일본이 접하고 있는 위험부담에 대해 일정한 시차가 지나서야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II. 해외 가압경수로 원자로헤드 노즐균열 경험
1991년 뷔제 3호와 2002년 데이비스베스의 충격
해외에서 최초로 문제가 된 가압경수로(PWR) 원자로헤드 노즐 균열사례는 1991년 9월 정비검사기간중 발견된 프랑스 뷔제(Bugey) 3호기이다. 당시 프랑스전력공사(EDF)는 균열이 발생한 노즐에서 뷔제3호기의 가동중 냉각수(붕산수)가 누출되지는 않은 것으로 발표했으나 자국내 모든 원전에 설치된 원자로헤드 노즐에 대한 정밀검사를 진행하여 수천여개의 노즐중 약 2%에서 균열을 발견하였다. 이 과정에서 EDF는 균열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으로 노즐재료인 인코넬600을 지목했고, 이를 사용하는 모든 원자로 헤드를 교체하기로 결정한 이후 가동중 원전 58기중 인코넬600 노즐이 설치된 54기 원자로헤드를 전량 교체한 상태이다.
미국에서는 그 후 10여년 뒤인 2001년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고, 2002년 2월 데이비스 베스(Davis Besse) 원전의 정비검사기간중 제어봉 안내관의 균열로 인해 발생한 붕산수의 누출과 이로 인한 원자로헤드 침식이 발견되었다. 조사결과 그동안 노즐균열을 통해 외부로 누출된 붕산수로 인해 원자로헤드가 침식되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원자로 외부에서 시작된 침식으로 노즐주변(10cm×16cm)의 약 15cm 두께 탄소강 헤드가 관통수준으로 침식되었고, 애초 원자로 안쪽으로부터의 붕산수 침식을 막기위해 설치된 스테인레스 피복(약 6.4mm 두께)만 남아있던 상태였다. 더욱이 원자로 외부에 노출된 스테인레스 피복마저도 원자로 압력에 의해 팽창하여 외부로 돌출해있었으며, 균열이 진행중인 상태였다 (그림 참조).
이러한 발견은 사고직전에 운이 좋게 발견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애초 핵규제위원회는 앞서 2001년 8월 오코니(Oconee) 3호기에서 발견된 원자로헤드 노즐균열 문제를 파악한 직후 미국내 모든 원전사업자들에게 2001년 12월 31일까지 원자로 헤드 노즐에 대한 검사결과를 제출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그러나 데이비스 베스를 운영하는 사업자(First Energy)는 이를 정비기간인 2002년 3월 31일까지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결국 양측의 타협안으로 2월 16일에야 가동을 멈춘후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러한 문제를 발견한 바, 검사시기가 조금 더 늦어졌더라면 대형사고를 맞을 수도 있었던 경우다.
이에 따라 임시조치로 원전사업자는 과거 건설도중 미국원전시장의 몰락으로 1984년 취소된 동종모델 원전인 미들랜드(Midland) 2호기의 원자로 헤드를 공수하여 2004년 교체하였고, 장기대책으로 2014년에 대체재질(Inconel 690)로 제작된 헤드로 재교체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애초 노즐과 똑같은 재질인 인코넬600이 사용된 이 교체 원자로헤드의 노즐에서도 재가동 후 불과 6년만인 2010년 정비검사에서 소량의 균열이 재발견되었다.
그림 미국 데이비스베스 제어봉 안내관과 침식된 원자로헤드(2002년 사례)
※그림설명: 안내관균열로 누출된 붕산수로 15cm 두께 탄소강헤드가 완전히 침식되어 원자로 안쪽에 접합되어 있는 스테인레스강 피복이 드러나 있다(출처: USNRC 2002)
그림 미국 데이비스베스 원자로헤드 노즐 균열부위(2002년 사례)
※그림설명: 원자로헤드는 침식에 취약한 탄소강, 원자로 안쪽은 냉각수(붕산수)로부터 침식을 막기위해 스테인레스강 피복(약 6.4mm 두께) (출처: IAEA 2011)
2010년 데이비스베스 노즐균열 재발생과 원자로헤드 재교체
2010년 정비기간동안 발견된 균열은 제어봉 안내관 12개, 용접부위 12개 등 총 24개 부위에서 발견되었다. 이중 두 곳에서 미량의 붕산수 누설이 발견되었다. 퍼스트에너지사는 일단 문제의 제어봉 안내관 균열을 용접 등을 통해 정비하였으나, 예상보다 빨리 균열이 발생한 점을 감안하여 미국 핵규제위원회(NRC)와 함께 안전성문제에 대해 추가적으로 심층검토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핵규제위원회는 사업자에게 데이비스베스의 검사주기를 기존의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하여 시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러한 검토결과 퍼스트에너지사는 2010년 9월, 6년째 가동한 교체 원자로헤드의 재교체시기를 애초 계획되었던 2014년에서 3년 앞당겨 이듬해인 2011년 10월에 인코넬690으로 제작된 원자로헤드로 교체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실제로 지난해 10월 1일부터 시작된 정비기간동안 교체를 완료하였다.
인코넬 600 원자로헤드 노즐의 문제점과 해외의 대응
인코넬 600은 International Nickel Company사가 지난 1950년대에 개발한 재질로서 용접 등 각종 기계적 성질이 우수하여 1960년대부터 원전 주요기기인 증기발생기 전열관, 원자로 상하부 헤드 노즐, 가압기 노즐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원전운전 경험이 늘어나면서 인코넬 600과 인코넬 600의 변형 용접재인 인코넬 182, 82 등은 평균 150기압 320℃의 원자로 일차냉각계통의 환경에서 이른바 응력부식균열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지난 1970년말부터 미국 가압경수로 증기발생기 전열관 균열이 본격화되었고,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는 프랑스, 미국, 일본에서 원자로 헤드에서 균열이 본격적으로 발견되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미국, 일본, 프랑스의 초기대응은 냉각수 화학세정, 검사강화 등에 집중되었으나 관리강화에도 불구하고 균열은 지속되었고, 결국 지난 1990년을 전후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재질의 설비로 교체하는 추세로 돌아섰다. 대체재료인 인코넬690과 그 용접재료인 인코넬 152, 52 등은 인코넬600의 주요성분인 니켈, 크롬, 철 중 크롬의 함량을 기존 15%에서 약 30%로 개선하여 응력부식균열에 상대적으로 저항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