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한책읽기운동’ 추진위원장

이 책에는 우리나라 남자들의 털의 역사가 있다. 고종이 단발령을 내리자 체두관직을 얻은 일호의 고조할아버지는 나라에서 녹을 먹으니 그것도 출세라고 탯줄을 자르고 고추를 가르던 가위를 들고 저잣거리를 설치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상투를 자른 후 “자를 건 잘라야지 어쩌겠소, 나라가 시키는 일인데”라고 말했다 한다. 아버지의 이발소를 물려받은 증조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유행한 하이카라 머리와 미군정 시대의 모판머리를 잘 깎는 이발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7~80년대 나라에서는 새마을운동으로 삼천리강산을 모조리 깎고 밀고 정리하는 판에 엉뚱하게 청년들 사이에서 장발이 유행했고 미장원을 드나드는 청년들 때문에 종로의 이발소를 정리하고 마포의 골목길로 이발소를 옮겨야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 역사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싸우는 이야기가 있다.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기로 작정한 일호가 싸우는 이야기다. 표지 그림을 자세히 보면 털이란 글자가 주인공의 가슴에 있다. 단단해지기로 작정한 순간을 심장에 털이 났다고 표현하던가? 보름에 한 번씩 할아버지가 깎아주는 단정한 머리털만큼 반듯한 일호가 무엇 때문에 싸울까?
재미난 드라마에는 주연보다 더 재미난 조연들이 있듯이 이 책에도 조연들의 캐릭터가 빛난다. 날마다 교문 앞에서 바리깡을 들고 규정을 어긴 학생들의 머리에 꾸불꾸불 고랑을 내버리는 학생부장 오광두 선생, 툭하면 미쳐 날뛰어 ‘매드독’이라 불리다 매독으로 축약되어 불리는 체육선생, 울프 컷을 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머리를 밀고 나타나는 까칠한 친구 문재현, 큰 얼굴을 긴 머리로 가리려 애쓰는 만두집 아들 정진이까지 이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들이 재미나다. 이렇게 재미난 소설을 읽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그 어느 힐링 여행 못잖은 득을 줄 것이다.
여기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독자들의 책 읽는 재미가 반감될까 싶어 그만 써야 할 것 같다. 아무쪼록 많은 영광군민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호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의 털이야기와 심장에 털이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래도 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거든 100자평과 독후감을 써주기를 바란다.
“열일곱 살의 털을 쓴 김해원입니다”

<열일곱 살의 털>은 한 소년이 세상 앞에 홀로서기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다른 시대를 산 소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상에 맞서 자신의 두 발로 굳건하게 서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과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 자신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끝내고 나서도 그 해답을 찾진 못했습니다. 글을 처음 쓸 때 세상을 담아보겠다 마음먹은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이었는지, 이 책을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열일곱 살의 털>에는 제가 바라본 작은 세상이 담겨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분명 삶을 환하게 밝히는 횃불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분이 잠시 멈춰 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글쓴이의 바람은 충분합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이야기의 인물들을 그려내는 겁니다. 한 명 한 명 인물들을 세워놓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은 어부가 물고기 그득한 그물을 건져 올리는 것만큼 기쁩니다. 이 인물들은 대개 제가 세상에서 만난 이들이거나 귀로 들은 이들입니다. 그러니까 제 글의 씨실과 날실은 온전히 제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빌린 것이지요. 그래서 더 잘 엮어야 하는데, 늘 성에 차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일곱 살의 털>을 쓰면서 제가 만난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하기에 혹 제 책에서 뭔가 가슴으로 들리는 울림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의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를 영광 군민들과 함께 나누게 된 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3년에도 좋은 일로 많이 기쁘시길 바랍니다. 김해원 드림.
대한민국 열일곱 살들의 털을 사수하라!

매년 생일을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발로 맞이하는 주인공 일호.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는 점 말고는, 일호는 평범한 모범생이다. '범생이 1호'로 통하던 일호는 어느 날, 체육 선생이 두발 규정을 어긴 아이의 머리에 라이터를 들이대는 것을 보고 이성을 잃는다. 대한민국 열일곱 살들의 머리털을 위해 일호가 두발 규제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한 그 때, 일호처럼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았던 이발사 할아버지도 재개발 문제로 시위에 나서는데...
저자소개 저자 김해원
김해원 작가는 1968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순천향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어린이책 작가교실’ 1기생으로 글공부를 했다.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동화가 뽑혀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2003년에는 장편동화로 MBC 창작동화대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거미마을 까치여관>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철학동화> <풀, 벌레 이야기> <고래벽화> 등 저서는 총 8권이 있다. 요즘은 어린이에게 세상을 두루 보여 줄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