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학회 후쿠시마 원전사고 분석 (하)

대량의 방사성물질 방출로 광범위한 대기․토양․해양 오염

후쿠시마 사고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초대형 복합 자연 재해로부터 비롯된 대형 원전 사고이다. 오나가와 원전, 후쿠시마 제1원전, 후쿠시마 제2원전, 토카이 제2원전 등 4개 부지의 원전(총 14기)이 동일본 대지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그 중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은 파고가 약 15 m에 이른 쓰나미를 견뎌내지 못하고 노심(핵연료) 용융, 원자로건물에서 수소가스 폭발, 방사성물질 대량 방출이라는 중대사고를 초래하였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6개 호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1,2,3호기는 정상 출력 운전 중이었고, 4,5,6기는 핵연료 교환과 정기 점검을 위해 운전이 정지된 상태였다. 지진이 발생하자 운전 중이던 3기는 모두 자동으로 정지되어 핵분열을 중단하였고, 지진으로 파괴된 외부 전력망 대신 발전소 내의 비상 디젤발전기들이 바로 가동하여 노심의 붕괴열 제거 등에 필요한 교류전기를 공급함으로써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지진 발생 약 40~50분 후에 들이닥친 초대형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의 모든 비상용 디젤발전기들과 대부분의 직류전원 시스템 및 최종 열제거원을 비롯한 다수의 냉각 관련 기기들을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 피동 냉각계통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한 1호기에서는 수 시간 안에 노심의 용융이 시작되었고, 일부 피동 냉각장치가 기능을 수행한 2,3호기는 1~2일 동안 최소한의 냉각이 가능했으나, 궁극죽으로 핵연료 용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후 원자로 및 사용후연료 저장조 안에 있는 핵연료의 냉각 기능은 해수 주입, 담수 주입, 재순환 공급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안정적으로 확보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양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되었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본 위원회는 핵심적인 특징을 다음 3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극한 복합 자연재해로 인한 최초의 원전 중대사고: 1979년의 미국 쓰리마일아일랜드 (TMI) 사고와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는 설비 자체의 문제와 인적 인자가 결합하여 발생했던 반면, 후쿠시마 사고는 외부 사건(극한 자연재해)과 설비 내부 문제 및 인적 인자가 모두 결합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초대형 자연 재해, 즉 쓰나미로 인해 애초 미흡했던 다수의 안전 설비와 사고 관리 대책이 무력화되면서 초대형 사고로 진행된 것이다.

다수 호기에서 중대사고가 함께 발생하여 장기간 지속: 같은 부지에 있는 3개 호기의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대량으로 녹아내리고 원자로용기와 격납용기도 손상된 것으로 추정되며, 세 군데의 원자로건물에서는 수소가스 폭발이 발생하여 원자로 건물을 크게 손상시켰다. 또한, 사고 진행이 단기간에 종료되지 않고 수 개월간 지속되었으며, 손상된 원자로건물 윗부 분에 위치한 사용후연료저장조의 안전 문제도 가시화되었다.

대량의 방사성물질 외부 방출로 광범위한 대기.토양.해양 오염: 후쿠시마 사고로 부터 방출된 방사성물질의 총량은 요드와 세슘 방출량을 기준으로 평가할 때 체르노빌 사고의 20%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비상 대피가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져서 직접적인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주변 지역의 토양 및 해양이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많은 수의 이재민과 국가.사회적 위기를 유발하였다. 후쿠시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1960년대에 미국에서 설계된 원전을 일본에 도입하면서 지진과 쓰나미 등 일본 고유의 부지 특성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지진에 대해서는 비교적 적극적인 설계기준 재평가와 이에 따른 설비 보강이 이루어졌지만, 쓰나미에 대한 설계 개선은 상대적으로 크게 미흡하였다. 또한, 원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중대 사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관련된 설비, 절차서, 교육훈련 등이 충실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다수 호기에서 동시에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혼란이 있었고, 사고 대응 과정에서 원전 상태에 대한 이해와 대내외 소통이 크게 부족하였다.

사고의 원인과 교훈은 5장에서 상세하게 논의한 바 있다. 사고가 발생한 후의 후쿠시마 제1원전은 여러모로 최악의 환경이었지만, 현장의 작업자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사태의 제어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악화일로를 걷던 사고 상황을 수 일 내에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후쿠시마 사고의 가장 핵심적인 교훈은 쓰나미 이후 대응과정의 문제보다는 적극적인 안전성 향상 조치 등 사전 대비가 크게 부족했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

 

국내 원전의 안전성 향상을 위한 제안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 강화를 위하여 다양하고 실질적인 조치들을 신속하게 취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조치들만으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이 충분히 확보되고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분석하여 반영해야 하며, 형식적이 아닌 안전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현 시점에서 국내 원전의 안전성 향상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후쿠시마 사고 후 발표된 안전성 개선대책을 포함하여 가동원전의 안전성 향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2011년 5월 가동 중 원자력시설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 점검을 신속하게 실시하여 안전성을 확인하고, 자연재해 및 중대사고에 대한 안전 여유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가동원전 안전성 개선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대책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정부와 원자력산업계가 국민 앞에 내놓은 구체적인 약속이며, 이후 국제적으로 발표된 사고 교훈이나 후속 대책들을 통해서도 타당성이 확인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는 수립된 개선 대책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진행 상황을 국민에게 주기적으로 알려야 한다.

▲2011년10월 새롭게 출범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안전규제의 독립성.전문성.효과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원자력 안전규제 정책과 이행과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규제의 독립성과 실효성의 지속적인 제고가 필수적이며,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와 산하 전문기관이 적절한 규모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또한, 국내에서 개발된 상용 원전과 연구용 원자로를 외국으로 수출하는 국가로서, 안전규제기관이 국제적인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기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독자성을 갖는 안전 철학.목표.원칙.기준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 안전규제는 미국의 규제 철학과 기준을 기본으로 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 등의 요건을 반영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과 공감할 수 있는 고유한 안전 철학이나 목표가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렵고, 선진국의 좋은 점만 선택하는 과정에서 일관성이나 효율성이 저해되기도 하였다. 세계 5위권의 원전 이용 국가일 뿐만 아니라 상용원전까지 수출하는 한국으로서는 독자적인 안전 철학.목표.원칙.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원전 안전과 관련하여 운영기관이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원전 안전에 대한 가장 중요한 책임은 운영기관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수력원자력(주)이 최근 안전기술본부를 신설하고 중앙연구원을 확대 개편하는 등 안전 중심의 운영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한 번의 대형 사고가 모든 경제성 향상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안전성 향상에는 공격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원전 운영조직이 양적.질적으로 크게 보강되고 운전인력이 최상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과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여 안전성을 더욱 향상시키는 신형 원전 개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원자력 이용을 위해서는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신형 원자로 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피동 안전 계통의 확대 적용을 통한 중대사고 가능성의 극소화, 중대사고를 고려한 계측계통 및 중대사고 완화 설비(수소가스폭발 예방, 용융된 핵연료 냉각 등) 보강, 지진의 영향을 크게 줄여주는 면진 설비의 도입 등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원자력 안전 연구를 강화하고 최상의 지식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안전 연구는 새로운 안전 지식과 인프라 및 전문가를 확보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므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안전 연구의 결과가 규제와 산업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어 지식에 기반을 둔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과 규제의 독립성 문제와는 별개로 안전 연구 및 결과의 활용에 있어서는 연구기관, 규제기관, 산업체, 학계 간의 효과적인 협력과 소통이 필수적이다. 또한, 안전 연구의 효율적인 추진과 연구 성과의 체계적인 활용을 위해 국가 차원의 종합관리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원자력 안전 문화가 모든 기관과 종사자에게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안전문화는 심층방어 전략과 함께 원자력 안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안전은 말이나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문화와 개인의 태도가 결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원자력과 관련한 모든 기관, 조직, 개인에 있어서 철저한 안전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고, 안전문화의 독립적인 측정 등 실질적인 확산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원전 개발 및 운영에 있어서 리스크 정보의 활용이 확대되어야 한다. 원자력 안전의 향상은 곧 리스크의 감소이며, 이는 사고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원전 개발에서는 리스크 정보를 활용하여 설계를 최적화해야 하며, 운영 과정에서도 설계 특성, 기기 고장, 인적 실수 및 외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되는 리스크 정보가 최대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제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원자력 안전 분야의 국제협력은 IAEA나 OECD/NEA 등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과 국가 간 또는 기관 간 협력이 있다. 국제협력은 안전 정보에 대한 소통이나 안전 현안 및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 등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하여 다양한 국제기구들을 통해 진행되는 협력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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