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산과 숲쟁이

이를 어쩐다오, 날이 너무 가물어서 일 년 농사 다 망치겠네.”

에휴,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어쩔거나.”

우리 그러지 말고 인의산에 가서 기우제를 올립시다.”

가뭄이 들어 답답한 사람들은 법성진 첨사를 통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인의산은 화천리와 법성리에 걸쳐 있는 작은 산이지만 법성포 사람들에게는 신령한 산이고 휴식처이다. 동네사람들은 인의산을 뒷뫼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한자 표기로 치자면 후산後山이 바른 표기지만 뒷뫼라고들 부른다. 인의산이란 지명은 1930년대에 작사된 법성포공립보통학교 교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일제 때 인의산으로 명명되었다고 추정하지만, 더 연구되어야할 산명이다.

대대대댕 대댕! 징징!”

풍악이 울리고 흥에 겨운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춘다. 또 한쪽에서는 읏쌰, 읏쌰하며 씨름도 하고 어여쁜 처녀들은 그네를 뛰느라 신이 났다. 수리취떡과 앵두화채를 먹는 아이들도 즐겁다. 하지만 이렇게 흥겨운 명절 단옷날, 잊지 말아야 할 단오제가 있다. 법성포에서는 단오제를 인의산 숲쟁이에서 지낸다.

법성포에는 법성 파출소에서 홍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좌우에 느티나무로 조성된 숲이 있는데, 이 숲은 숲쟁이라고 불리며 1514년 법성진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각종 민속놀이와 전국의 국악인들이 모여 솜씨를 뽐내는 대회가 열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영광 법성진 숲쟁이는 고려시대 이래 전라도에서 가장 번창한 포구였던 법성포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법성진성 및 그 일대의 느티나무 숲을 이르는 것으로, 법성포 마을에서 홍농 방향의 지방도로 고개 마루 부분에 좌우측으로 산 능선을 따라 약 300m 에 걸쳐 조성된 숲을 이른다. ‘쟁이란 재, 즉 성이라는 뜻으로 숲쟁이란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 법성포구와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을 해 왔으며, 예로부터 파시로 몰려드는 보부상들이 이 숲에서 단오행사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용왕제와 단오날 선유놀이 등 지금의 영광 단오제와 지역의 각종 민속행사가 이곳에서 열려왔다. ‘법성포는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일본과의 해상 교통로 상에 위치하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을 뿐 아니라, 서해에서 가장 품질 좋은 조기가 잡히는 칠산 앞바다에서 들어오는 조기배로 파시를 이루었기 때문에 영광 법성으로 돈실러 가세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보부상들이 모여들어 매우 번창했던 포구였다.

법성진성과 함께 숲쟁이를 구성하는 느티나무 숲은 느티나무가 127그루로 숲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에 개서어나무, 팽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높이는 19 ~ 23m이고, 둘레는 0.65 ~ 4.2m이다. 10년생부터 300여 년 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100여 년 생이 가장 많은데, 이는 1800년대 숲의 빈곳을 보충하기 위해 많이 심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지금은 법성면 사람들의 휴양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단오날에는 그네뛰기 대회와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영광 법성진 숲쟁이는 법성진성과 숲이 포구와 어우러져 특이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민속행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조선시대 수군 진의 모습과 파시로 번창했던 법성진의 영광을 현재에까지 전해주며, 커다란 느티나무는 전국적으로 많이 있으나 이곳처럼 산에 집단적으로 심어진 예는 보기 드문 광경이기 때문에 역사적, 문화사적, 생물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뛰어난 명승지이다.

 

 

삼두구미三頭九尾

머리가 셋이고 꼬리가 아홉인 삼두구미를 찾아서

삼두구미는 선진포에서 구수산을 감싸고 해안도로를 따라 구수리 대신리 백암리 약수리 홍곡리 등에 걸쳐있다. 이곳은 황홀한 칠산바다의 낙조와 오염되지 않은 바닷바람이 스치는 청정지역이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석양의 아름다움은 감동적이며 바닷물이 육지와 만나는 해안지대에는 고두섬을 비롯하여 거북바위, 모자바위 등 크고 작은 바위들이 파도소리의 선율을 만들어 낸다.

예로부터 백수읍에는 삼두구미지하만일개길三頭九尾之下萬人開吉이라는 전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은 이 전설을 구구히 해석하여 왔다. 백수읍에는 머리 두의 뜻이 붙어있는 세 지역과 꼬리 미의 뜻이 붙어있는 아홉 마을은 난리(전쟁)가 있어도 안전하여 예부터 난리가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피신을 하였다고 한다.

삼두三頭는 용머리 · 진머리(장두산 소재) · 선진머리(혹자는 수두암水頭庵 또는 닭머리라고 함) 등을 지칭하고 구미九尾는 모래미(목단牧丹 ; 木丹) · 구시미 · 대치미 · 먹배미 (묵방墨房) · 대미 · 한배미 · 동백구미 · 석구미 · 대사미 등을 지칭한다.

인근의 구수산九峀山은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여인들의 머리 올린 모양이라 하여 머리영근산, 또는 갓을 쓴 모양이라 하여 갓봉이라고 부른다. 백수면 홍곡리, 대전리, 양성리, 천마리, 길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지형에 따라 이름이 명명되었다. 구수산은 옥녀봉, 봉화령 등 여러 산봉이 모여 커다란 산체를 이루고 높이는 420m이다.

옥녀봉玉女峯은 길용리 원불교성지 옆에 있는 산봉山峰으로 어느 풍수가 산의 형국을 보고 서 - 북간에 장군산이 있고 이 산줄기에 촛대봉이 있는데, 옥녀가 촛대봉에 불을 켜놓고 글을 읽는 것 같다고 하여 옥녀봉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삼두구미가 있는 구수리는 본래 영광군 구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미리, 한시랑리, 임자리와 봉산면의 목단리를 병합하여 구수산 밑이 되므로 구수리라 해서 백수면에 편입되었다.

구수는 노인봉老人峰, 화랑봉花郞峰, 홍암봉紅岩峰, 옥녀봉玉女峰, 주봉主峰, 수루봉., 갓봉, 감투봉, 깃봉의 9봉이, 수도암首道庵 · (또는 수두암水頭庵), 무운암霧云庵, 동암東庵, 상암上庵, 사자암獅子庵, 백암栢庵, 용암龍庵, 대흥암大興庵, 가야암伽倻庵9암이, 제수재, 자룡재, 백두재, 삼밭재, 불목재, 논재, 오두재, 모재, 봉오재 등 9개의 고개가 있어 구수라고 한다.

인근에 매월 3일과 8일에 장이 섰던 구시미 장터가 있었으며 고려시대 군기고가 있었고 구시미나루(구수진九岫津)가 있다. 호남지도에는 구수미진九水尾津으로, 호남연해형편도湖南沿海形便圖에는 구수포九水浦, 조선지지자료에는 구수포九峀浦로 물수가 산굴수로 기록되어 있다. 영광읍지 1897진도津渡편에 의하면 구수진은 20리 거리의 구수 땅에 있는데 배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시미(구미九尾 구수미九岫尾 구시미)는 구시미 마을의 동북쪽 구수산 아래 지역이다. 인근에 삼두에 해당하는 선진머리가 있다. 구시미를 지나 모래사장이 펼쳐있어 모래미해수욕장이 있는 모래미는 구시미 서쪽에 있는 마을로 1650년경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924년부터 모래위에 많은 목단이 자생하여 목단으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른다.

대신리에는 한배미 · 대치미 · 대미 · 먹배미 등 구미에 해당하는 마을이 있는데, 대신리大新里는 본래 영광군 영마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초리, 대야리, 신흥리, 분매리, 수정리, 포옹리, 묵방리, 백년리, 덕용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대초와 신흥의 이름을 따서 대신리라 하였고 백수읍에 편입 되었다.

구미에 해당하는 한배미는 장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음양수陰陽水라 부르는 두 개의 샘이 나란히 있다. 대치미(조산棗山 · 대추뫼 · 대초)1680년 함양박씨 상환尙煥이 벼슬(부호군副護軍)을 버리고 남하하여 이곳에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과거에 대추나무가 많아서 대추뫼, 또는 조산, 대추뫼 등으로 칭해 왔다. 대미는 현재 대야라 부르며 신흥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먹배미는 산세가 등잔을 걸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어 속담 등하불명燈下不明을 인용하여 묵방이라 칭했다고 한다.

백수읍 대신리 묵방골?

어머나 이 산은 모양이 꼭 등잔을 걸어 놓은 것 같네.” “, 정말이네요.”

산 높이 오른 사람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들 한마디씩 했다. 산세가 마치 등잔을 걸어 놓은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혹시 이런 속담 알아요?”

뭐요?”

등하불명!”

등잔 밑이 어둡다 이런 거요?”

맞아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글쎄, 어제 제 안경이 없어진 거예요. 아주 갑자기.”

어머, 그래서요?”

그래서 온 방을 휘젓듯 찾았어요. 방에도 없어서 거실에도 보고, 심지어 주차해 놓은 차에도 가서 찾고.”

어째, 찾으셨어요?”

글세, 어이없게도. 늘 앉아 있는 탁자 바로 앞에 있었어요. 눈앞에 바로 있는 데도 못 찾고.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요.”

아하하. 정말 등하불명이네요.”

그러니 생각나는데 이 산도 속담 등하불명을 인용해서 묵방이라고 이름 지었다네요.”

, 그렇구나.”

사람들은 나와 친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산 밑을 오래 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묵방을 지나 석구미로 향하는 능선에 삼두의 하나인 용머리가 있다.

동백구미와 석구미가 자리하고 있는 백암리栢岩里는 본래 영광군 봉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치리, 동백동, 반암리, 순기리, 교동, 답동과 영마면의 덕용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동백과 반암의 이름을 따서 백암리라 하였고 백수읍에 편입되었다. 동백冬栢구미(현지어 : 돈백구미 · 돈밷기미)는 동백나무가 많고 마을의 형국이 동백꽃처럼 생겼다 하여 동백골이라 불러졌다고 한다. 영화 마파도촬영지이다. 석구미(석금)는 답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구미후미에 있다.

대사미大獅尾는 백수읍 학산리에 있는데 현재 풍선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대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현재는 죽산竹山이라 부른다.

이외에도 하사리 췻재 남쪽에 있는 구미, 즉 후미진 들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용왕제를 지냈던 용왕龍王구미 등이 있다.

삼두에 해당하는 진머리가 있는 장두산은 백수읍 홍곡리와 약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25m이다. 산이 노루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장두산이라고 불리며, 토성이 있다. 도선국사가 장두산을 들어서니 해변에 대아 있어 상하혈이 생겼구나. 화성火姓이 주인되리라고 언급했던 산이며, 진머리는 홍곡리와 약수리에 걸쳐있는 장두산의 낮은 능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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