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연합회장

얼마 전, 종합병원 응급실로부터 다급한 호출을 받았다.

통역사를 대동하고 병원 응급실에 들어섰더니 침대 주변으로 빙 둘러 서 있는 너뎃명의 외국인 남녀가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몸짓을 섞어가며 어렵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양쪽 눈에 피멍자국이 선명한 체 침대에 누워 있는 이주여성을 발견하고는 가정폭력이려니 생각이 들어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통역을 통해 전후사정을 들었다.

눈두덩 뿐 아니라 온 몸에 피멍이 들어 심하게 망가진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환자는 한국말이 서툰 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이었다.

강제 낙태와 이혼

2년 전, 그녀는 부산에 사는 한 남성에게 시집을 와 임신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병원에 다녀온 시댁 가족들은 무슨 일인지 그녀에게 낙태할 것을 수없이 강요했으며 완강하게 거절했던 그녀는 급기야 배우자에게 강제로 끌려가 아기를 지우고 말았다.

한국인 아기를 낳아야 한국사람이 되어 코리안 드림을 이룰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그녀는 아기를 버리는 악마 같은 남편과는 같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며 결국 이혼을 한 후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생명을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홧김에 이혼을 요구하긴 했으나, 이주여성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진 한국 법에 대해 잘 몰랐던 그녀는 그것이 족쇄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 지 못했던 것이다.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한 그녀는 절망감에 자기를 버린 한국을 떠나고 싶었지만 고국으로 돌아갈 여비를 벌기 위해 전라남도 나주시의 한 공장에 불법취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낙태를 하였지만 산후조리는 생각할 수 도 없이 오히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지친 몸으로 잔업까지 해야 했던 그녀는 결국 피를 토하며 공장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기에 병원에도 가지 못한 체 며칠간이나 공장 기숙사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몸을 가누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고국의 가족들이 그리웠던 그녀는 나가달라는 사장의 호통에 못이겨 그동안 모은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캄보디아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귀국하기 이틀 전, 그러니까 종합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던 날 아침, 병세가 더 악화되자 영광에 시집와 살고 있는 두 사촌 언니를 찾아왔다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으며 광양 등지에 취업비자로 나와 있던 사촌 오빠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때 부터였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그녀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다.

검사비를 포함하여 진료비도 -병원에서 할인을 해주긴 했지만- 일반비용으로 부담을 해야 해서 사촌들이 십시일반 돈을 거둬 내야 했다.

골수암이 의심되니 자세한 검진을 해봐야 한다는 담당 의사의 소견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몸을 돌고 있는 것은 피가 아니라 물이라며 저런 상태로 살아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할 만큼 그녀의 몸 상태는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의사는 이런 상태로 다음 날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탑승을 말렸다.

필자는 그녀가 가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고 어떻게든 국내에서 치료를 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 불법 체류자 지원 단체 등을 찾아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허사였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던 그녀는 사촌들을 모아놓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다.

죽어도 엄마 곁에 가서 죽을래.”라며 비행기만 태워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녀는 사촌들의 도움으로 곧바로 퇴원을 해서 출입국관리사무실에 자수를 했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 비행기로 귀국하겠다는 조건으로 체포를 면하고 돌봐주던 사촌 오빠들과 함께 모텔에 투숙을 했던 그녀는 밤새 잠을 안잤다고 했다.

행여 눈을 감아 버리면 영원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오빠들에게 잠 들지 않도록 밤새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다음날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다행히 그렇게 우려했던 불상사는 없었다.

못 깨어 날까봐 비행기 안에서도 눈을 붙이지 못했던 그녀는 부모형제의 따뜻한 품에 지치고 망가진 몸을 뉘인 체 길고 긴 단잠에 빠져 들었다고 사촌들이 전했다.

짓밟힌 코리안 드림

이 이야기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결혼 이민을 왔다가 망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이주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녀가 골수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시댁 식구들이 그녀에게 아기를 갖지 못하게 하고 이혼을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파도 치료는 커녕 내다 버려도 되는, 즉 인간 이하로 취급받았던 한 이주여성의 서글픈 현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녀의 마음속에 한국이 나쁜 사람들이 사는 악마의 나라로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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