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쟁이 전국국악대회

숲쟁이에서는 매년 단오에 전국국악경연대회가 열린다. 구한말에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전주대사습보다도 권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입상을 하는 것은 국악인으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숲쟁이는 천연의 무대다. 단오 무렵이 되면 여름날이라 덥다. 숲쟁이의 수많은 느티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서늘한 기운이 상쾌하기 이를제 없다. 그리고 비스듬한 경사면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관객들이 앉아서 관람을 할 수 있는 객석이 된다. 저 아래쪽 무대가 한눈에 보인다.

경창대회, 무용대회, 그리고 각종 국악기연주 등 승부를 겨루는 대회가 열릴 때면 숲쟁이는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찬다. 그야말로 구름떼 같이 사람이 모여 드는 것이다. 장사치들의 호객행위로 잔치분위기를 더한다. 현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법성포단오제의 주요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숲쟁이전국국악경연대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국악을 선도했던 과거의 그 명성은 14년 전(1999) 영광문화원의 노력으로 부활되어 매년 훌륭하게 이어지고 있다.

 

법성포 숲쟁이의 그네 뛰는 아가씨

“오늘은 내가 꼭 일등해야지!”

“무슨 소리! 내가 있는데 어떻게 일등을 해? 흥!”

“나도 오늘만을 기다렸다고.”

“그래, 우리 한번 정정당당하게 겨뤄 보자고!”

오월 단옷날이 되자, 전국 각지에서 그네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온 아가씨들로 법성포 숲쟁이(나무숲)는 들썩들썩했다. 대회가 시작됐다. 곱게 치장한 아가씨들이 하나둘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가고 휙 ~”

“바람이 간다 휙 ~”

“높이 뛴다, 높이. 구름아, 내가 보이느냐?”

“하늘아, 내가 보이느냐, 내가 더 높이 뛴다.”

아가씨들은 있는 힘껏 발을 굴려 높이 더 높이 신명나게 그네를 탔다. 이를 바라보는 남정네들도 마음을 졸이며 구경했다. 속으로는 자기가 흠모하고 있는 아가씨가 일등하기를 빌고 또 빌면서……

긴장감이 흐르면서도 신명나는 그네뛰기 시합은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어떤 아가씨는 실수를 해서 울고, 어떤 아가씨는 평소보다 더 잘 타서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차례가 끝나자 대회 일 등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일등을 할지 서로서로 떨리는 눈으로 살펴보았다. 드디어 사회자가 외쳤다.

“자, 이 씨네 댁 처자 단비 아씨!”

“우아! 나다 나!”

단비 아씨는 기뻐서 단박에 시상식 대 앞으로 나섰다. 단비 아씨를 흠모하는 김 도령도 덩달아 “만세!” 하고 외쳤다. 사람들이 이 둘을 보고 하하하, 호호호 웃었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단비 아씨와 김 도령은 부끄러워 노을처럼 얼굴이 발그레해 졌다. 대회에 지건 이기건 신나게 그네를 탄 아낙들은 “하루 정말 잘 놀았다!” 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칠산바다 돈 실러 가자

“어이! 우리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 칠산바다에 돈 실러 가세.”

“그러세, 그려. 칠산 바다에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얼른 가세.”

“가세, 가세 얼른 가세. 배에 가득 돈 실어 오세.”

법성포 어부들은 어김없이 조기잡이 철이 되면 칠산 바다로 향했다. 어마어마한 조기 떼를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이 신명나기만 했다. 어부들은 조기 실으러 가자는 걸 돈 실러 가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얼마나 조기가 많으면 그랬겠어요? 생각만 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 뱃노래는 여전히 전해져 오는 서해안의 풍어가이다.

‘칠산바다’는 일곱 개의 무인도가 바다 위에 들쭉날쭉 솟아 있어서 그 주변을 칠산바다라고 한다. 이곳은 조기 떼가 얼마나 많이 몰려드나 하면 배 위로 뛰어 오르는 조기를 잡아도 배가 꽉 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어부들은 조기를 배 한가득 실어내고 또 실어내고 흥이 나서 또 한가득 실어내고 조기 떼만큼 떼부자가 되었다.

우리바다 곳곳에서 조기가 나지만, 여전히 굴비 하면 영광 혹은 법성포라는 지명이 절로 앞에 붙는다. 영광이 굴비의 본고장이라는 데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특히 법성포 어업인들이 굴비의 주역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여전히 우리는 굴비, 하면 영광 법성포 굴비를 최고의 맛으로 꼽는다.

 

칠산바다어장뱃노래(칠산어장놀이)

“풍덩!”

“어이쿠나!”

댕댕 대대대댕 댕댕

요란한 풍물소리 끝에 선원들은 배 주인을 바다에 풍덩 하고 빠뜨렸다. 배 주인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만선되게 해 주시오 ~!”

“무사 평안하게 해 주시오!”

“재난 맞지 않게 해 주시오!”

선원들은 배 주인을 물에 빠뜨리고도 춤을 추며 소원을 빌었다. 심지어 물에 빠뜨리기 전에 배 주인에게 실컷 돈까지 뜯은 후였다. 선원들은 이제 풍선에 돛을 달고 뱃소리를 부르며 행선을 준비한다. 이는 풍어제를 지내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선원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미리 막도록 하는 액땜이다. 이러한 풍어제를 위한 제물은 선주가 자기 집에서 떡, 돼지 머리를 생물로 올리는데 이때 선원들은 배에 큰 북을 걸고 풍물을 치면서 춤을 추기도 한다. 이 풍어제는 무당굿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칠산어장 놀이는 요즘에도 이루어진다. 칠산어장에서 이루어지던 뱃노래와 뱃고사를 놀이화한 것이다. 영광지역에서는 음력 삼월 곡우 무렵이면 칠산 앞바다에서 조기잡이가 한창일 때 칠산어장놀이가 성행한다.

 

바다를 건너온 불두

우리 영감이 몸져누워설랑 일어날 생각을 안 혀.”

“어쯔꼬, 얼른 나아야 할 텐데. 아 참, 재구네 집 옆에 있는 그 미륵불한테 한번 빌어 봐. 정성을 다하면 부처님이 다 거둬 주실 거여.”

“그래야겠구만.”

할머니는 꼬부랑 허리를 안고 미륵불이 모셔서 있는 곳으로 갔다. 깨끗한 사발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또 빌었다.

“우리 영감 얼른 병 털고 일어나게 해 주시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미륵불은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기도를 듣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만 같았다.

이 미륵불은 백제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가져온 것이다.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배에 불상과 불경 등 많은 물품을 실고 오는데 영광에 거의 다 도착할때 쯤 풍랑이 앞을 가렸다. 뱃사공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선장은 사람을 용왕님께 바쳐야 한다고 하였지만 부처님을 모시고 있던 마라난타가 어찌 목숨이 귀한 사람을 바칠 수 있냐고 반대를 했다. 대신에 가지고 온 불상을 바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잔잔해졌고 법성포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어부들이 칠산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데 며칠째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부들이 시름이 깊어질 때 그물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신난 어부들은 열심히 그물을 끌어올렸는데 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불상만 있었다. 어부들은 불상을 바다에 던지고는 다른 곳에 그물을 내렸다. 그런데 다시 불상만 그물에 걸리는 것이다. 그렇게 세 번을 하자 어부들은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마을에 불상을 모셔왔다. 그리고 고기잡이를 나가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그 소식을 들은 법성포의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나가기 전에 불상에 치성을 드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몸이 아픈 사람을 병이 낫기를 빌었다. 그런데 왜구들이 침략하여 불상을 깨버렸다. 이후 마을사람들이 불두만 수거하여 모시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불두가 마라난타가 가져온 불두라고 생각한다.

 

농악의 진수, 우도농악

“자, 신명나게 놀아 볼까나?”

“얼쑤!”

광대들이 가락에 맞춰 굿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빈자리가 없을 만큼 광대들을 빽빽이 뺑 둘러쌌다. 광대들의 손짓, 몸짓,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구경꾼들은 울고 웃었다

“이야! 우하하하.”

“다시 한판 더 벌여 봅세!”

“맞소!”

“한판 더!”

사람들은 광대들의 재미난 놀이판에 어느 새 푹 빠졌다.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광대들을 졸라댔다.

법성포 서호농악은 예능 적인 면에서 다양하고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 설장구, 부포놀이, 꼬깔소고 등 개인놀이가 잘 발달하였고, 가락은 약간 느리지만 사람들의 흥은 밤이 되어도 끝날 생각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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