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채/ 영광군농민회장

저승사자의 임무는 생명의 결말을 통보하고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으로 인간을 끌고 가는 죽음의 안내자를 일컫는 말이다.

어떤 농민 문학가는 한FTA 날치기 광경과 최루탄을 온몸에 뒤집어쓴 김선동 국회의원의 절규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접하며 짐승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표현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국가 예산의 5%도 안 되는 농업,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유력 후보의 입에서 아예 거론조차 안 되는 농업, 자동차와 핸드폰을 팔아 치우는데 최대 걸림돌인 농업, 그래서 한FTA 추진은 당연하다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거침없는 행보 이것이 분명한 오늘의 현실이다.

국정원을 흥신소로 전락시켜 민주적 헌정 질서를 거리낌 없이 유린한 저들이 300만 농민의 절규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한한 5년 정권의 손에 5,000년 한국 농업의 생사여탈권을 통째로 쥐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농민도 국민도 함께 지쳐가고 있다. 갈수록 무기력과 패배주의가 고착화 되고 있다. 나라가 하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어차피 세상은 권력자의 의지와 뜻대로 굴러가는 것 아닌가? 이런 굴종의 논리와 함께 가정 또는 개인의 행복과 세상일은 별개라는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 되어가는 느낌이다. 보수와도 거리가 한참 먼 수구 세력, 자기들끼리의 행복한 6의 시간이 대한민국 사회의 인간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다. 농업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적 생태계의 보고다.

농업농촌은 먹을거리를 통해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고유의 기능과 함께 인간 정신의 황폐화를 막고 정신적 위안을 무한 제공하며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가는 화수분과도 같다. 따라서 한국 농촌 파괴의 막장 드라마인 한FTA는 박근헤 정부의 역사적 죄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역사적이라는 표현은 한FTA가 몰고 올 농업 파괴의 정점은 정권의 유지 기간 보다, 퇴장 이후 나타 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일시적 생존에 성공한 축산(한우)이 이명박의 퇴장 이후 무너지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이제 다시 농민들부터 우리가 평생을 걸고 가꾸어 온 농업인의 삶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한FTA를 중단시키는 정의의 전쟁에 나서야 한다. 그간의 패배주의와 냉소주의를 걷어 내고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눈을 돌려 농민들의 절규와 저항에 동참 할 수 있다. 농민 단체들 또한 정권에 이용당하는 장관 간담회 참석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불참하는 것이 정확한 의사표시이자 정치적 힘이다. 산업부 장관이 농민단체장의 한FTA중단 요구를 경청 할리 만무한 상황에서 바다에 뛰어 들며 협상장으로 향하고 있는 농민들 뒤에서 정권의 요식 절차에 조연이 되는 일은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행위다.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여 본래의 자리로 돌아 와야 한다.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자본과 노동의 거대한 충돌, 개발과 환경의 대립, 전 지구적 차원의 사회적 양극화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런 모순의 폭발은 향후 자유 무역을 대체 할 공정 무역 또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 진일보한 복지 국가로의 전환 등 인간의 얼굴을 갖춘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 요구에 직면 할 것이다. 아울러 구조적인 식량 부족 단계에 본격 진입한 세계는 먹을거리 확보를 위해 세계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에 국제 사회와 개별 국가의 관심이 고조 될 가능성이 높다. FTA로 파괴될 한국 농업 복구에 100년이 걸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의 후손들이 새로운 형태의 선진 복지 국가에서 살아가게 하는 역사적 과제는 농업을 지키는데서 시작된다.

멀리 보는 지혜와 흩어져 버린 몸과 마음을 하나로 추스르는 단단한 결기와 힘이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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