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연합회장

움트는 비극의 싹-당파싸움

조광조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으로 도학정치를 꿈꾼 이상주의 정치가였다.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자신을 왕으로 옹립한 반정공신들의 전횡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중종이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권력에서 비켜나 있던 사림세력을 등용하게 되는데, 사림의 영수로 부상한 조광조는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의 자리에 오르면서 중종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급진적 정치개혁을 주도한다.

남곤, 심정 등 당시 권력의 중심에 서있던 훈구세력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상정치의 실현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훈구파와 계속 마찰을 빚어 왔는데 이른바 위훈삭제 사건를 통해 105명의 반정공신 중 작호가 부당하게 부여되었다고 판단한 76명의 공훈을 박탈해 버렸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만을 강조했던 사림의 급진적인 개혁정책은 훈구파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일격을 가한 훈구세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의 이상정치는 좌절하고 만다.

권력의 단 맛에 빠져들어 현실유지에 급급해 있었던 훈구파와 자신들의 이상을 현실정치에 실현하고자 했던 젊은 사림파가 격하게 충돌하면서 이 후 조선의 조정은 당리당략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팽개치는 극단적인 당파싸움의 격전장으로 변모하고 만다.

상대편의 정책이 아무리 좋더라도 내편이 아니기에 무조건 반대를 하고 전쟁을 피해 왕이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가는 상황에서도 한 번 내 세웠던 자신들의 주장은 굽힐 줄 몰랐던 올곧은(?) 당리당략을 바탕으로 500년의 조선왕조가 사무라이 일본에 합병을 당해야 하는 비극의 싹이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좌절된 이상정치-기묘사화

33세의 나이로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대사헌의 자리에까지 오른 조광조는 급진개혁정치를 펴다 4년 만에 기묘사화로 뜻을 접게 된다.

신진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유교적 이상정치를 실현하고 향촌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향약을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뿌리 깊게 박혀있던 훈구세력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전국에 지진이 빈발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져 가는 상황에서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각엽(刻葉)사건이 터졌다.

훈구파가 대궐의 내부 세력을 매수하여 대궐 후원에 있는 나뭇잎에다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쓰게하고 그것을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조광조가 민심을 얻어 임금이 될 징조라며 임금에게 고하도록 하였다.

走肖는 즉 자의 파획(破劃)이니 이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을 암시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훈구파의 음모는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보기좋게 먹혀들어갔고 사림세력을 발탁하여 훈구세력을 견제하려 했던 중종 역시 마음을 돌리게 되면서 조광조 이하 많은 사림들이 하옥되거나 먼 곳으로 귀양을 갔다.

그리고 얼마 뒤, 거꾸로 사림의 씨를 말리려는 훈구세력의 강력한 주청으로 이들 70여 명의 개혁세력들은 귀양지에서 모두 사약을 받게 된다.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중상모략하고 갖은 술수를 써서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 사건을 우리는 기묘사화(己卯士禍)라고 부른다.

너 죽고 나 살자-조폭정치

요즘의 정치판을 보면 마치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극단적인 조폭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정치인으로써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기대를 버린 지는 이미 오래 되었지만 국민의 대표임을 자부하면서도 시정잡배들에게나 어울릴 저속한 언어들을 쏟아 내거나 온갖 술수와 중상모략을 획책하는 일부 정치인들을 보면서 밉다기 보다는 오히려 연민의 정이 앞선다.

아시아를 넘어 남미, 유럽까지 상륙하면서 세계를 주름잡는 한류와 함께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대단한 나라이지만 유일하게 정치만은 세계 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후진국 형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었던 500년 전 중종 때의 암울한 역사가 현실에서 다시 재현 되려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기묘사화에 이어 계사사화(癸巳士禍)라도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남과 북이 세계 최고의 군사력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남남갈등으로 인한 국론분열은 누구를 이롭게 하게 될지 뻔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쯤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이 아닌 오직 국민과 국익만을 위해 일하는 서구의 멋진 국회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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