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원

구부강호약(久負江湖約) 홍진이십년(紅塵二十年)

백구여욕소(白鷗如欲笑) 고고근루전(故故近樓前)

강호언약 저버린 채 홍진에 묻혀 이십년

갈매기도 비웃는 듯 연신 끼룩끼룩 누각 앞을 날고 있네

이 시는 고려 때 문신인 유숙이 쓴 벽란도(碧瀾渡) 전문이다.

 

 

백구(갈매기)는 야인(野人)의 벗이요 강호인(江湖人)의 짝이다. 그 결백한 몸매, 그 느직한 한정(閒情), 그 자유로운 비상(飛翔)등으로 하여 시인묵객들의 수많은 영탄을 입어왔다. 그렇듯 모두가 한결같이 반려(伴侶)로서의 친근감을 주제로 했던 것과는 달리 이 시에서의 백구는 다분히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와는 매우 다르다.

예성강 강자락 푸른 언덕바지에 날개를 펼친듯 한 맵시로운 정자가 있어 행객의 발길을 유인하니 그 곳이 바로 벽란정(碧瀾停)이다. 비록 나라의 임무를 띠고 가는 바쁜 몸일망정 이런 경승처(景勝處)를 어찌 시 한 수 읊조리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하여 그 정자에 올라 느직이 벽에 기대어보는 작자이다.

벽란도의 벽란정이라! 푸른물결 나룻목에 푸른 물결 넘실대는 정자! 그 이름 한번 시원스레 아름답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든다. 갈매기들이 가까이 작자의 앞을 날며 유달리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들은 의아스런 눈매로 나를 들여다보며 지나가고 있다. 면전을 스쳐가는 모든 갈매기들이 끼룩 끼룩 소리를 친다. 저건 옛사람들이 시가를 통해 노래 한 환호(歡呼)도 친압(親狎)도 아니다. 저들은 분명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는 강호처사(江湖處士)로 우리와 함께 놀겠다더니 깜쪽같이 식언(食言)한 채 20년을 어디서 뭘 하다 왔지? 환정(宦情)에 환장(換腸)하여 홍진에 찌들린 몸으로 야인 냥 가장하고 여기 왔구나. 제법 느직하게 시늉은 해보고 있지만 순 엉터리 가짜야!’

짐짓 저공비행을 하며 그 사람 눈 같은 눈매로 빠끔 빠끔 들여다보며 끼룩 끼룩 조롱을 하고있는 갈매기들이다. 이는 물론 작자의 자격지심(自激之心)이고 감정이입(感情移入)의 메아리일 뿐이다. 진정한 벗으로 떳떳이 대하지 못하는 말만인 귀거래사(歸去來士)의 그 우유부단(優柔不斷)을 자책(自責)하는 심정의 토로인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끝내 강호약(江湖約)을 지키지 못한 채 적() 신돈(辛旽)의 모함으로 홍진(紅塵)의 액()을 입어 죽고 말았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이 일찍이 이 벽란도를 지나다가 유숙의 이 시에 보운(步韻) 한 바,

未識靑雲路(미식청운로) 江湖四十年(강호사십년)

思庵終賊手(사암종적수) 余在白鷗前(여재백구전)

청운의 길 알지 못해 강호에 놀아 사십년

사암은 적의 손에 죽었고 나는 백구 앞에 있네

라고 읊었으니 이는 사암의 시상을 뒤집어 읊은 것이다.”-손종섭 평설-

사암(思庵) 유숙(柳淑)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자는 순부(純夫)이며 호는 사암(思庵)이고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그리고 고향은 우리 영광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나 그의 충직을 두려워 한 신돈의 무고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영광에 내려와 있던 중 공민왕 17(1368)피살되었다. 그는 피살 당해 죽을 적에도 얼굴빛이 평상시와 같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들 유실(柳實)과 유후(柳厚)도 모두 유배되었으므로 집안 사람들이 뼈를 거두어 거적에 싸서 장사지냈다. 신돈(辛旽)이 처형당한 후 왕은 비로소 모든 사정을 알고는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조서를 내려 그의 억울함을 밝혀 주었으며 문희(文僖)라는 시호를 내렸다. 또 유실과 유후를 소환했으며 예를 갖춰 장사지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왕 2(1376)에 공민왕의 묘정(廟庭)에 배향하였다.

그런데 우리 영광의 인물사에는 아직 유숙과 그의 일족이 아직 등재되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