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금메달을 도둑맞은 김연아 선수가 보여준 내공은 놀랍도록 깊었다. 스물네살 처녀의 그것이 아니다.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고수(高手)로서 손색이 없는 내공을 보였다. 그 내공으로 국가 발전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 연아가 있어 행복 했다

그날 새벽 방방 뛰었다. 처음엔 연아의 무결점 연기를 지켜보면서다. 행여 실수하면 어쩌나 가슴 조리다 중반 점프를 깨끗이 성공 하는 순간 혼자 뛰며 박수를 쳐댔다. 동거인(마눌님과 아들)들이 무슨 일 있나 싶어 뛰어 나왔다. 다음은 연아의 점수가 발표 되고서다. 금 메달을 확신하고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거의 동시에 세계 각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연아의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화면에 비친 연아의 표정. 눈물도, 분노도 없다. 담담한 표정이다. “금 메달이 절실한 사람에게 주어졌다고 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스물넷 소녀 김연아가 아니구나.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른 고수(高手)로구나. 저 정도의 내공(內攻)이라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흥분된 가슴이 진정됐다. 피겨 스케이팅을, 김연아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 진정한 고수의 모습을 보여준 연아가 대견하다. 자랑스럽다.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 이라는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다.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을 과시했다. 세계가 인정 했다.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는 김연아라고. 금메달을 강탈 당하고 보여준 내공은 역사에 기록되고 전설로 남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선수는 한국의 김 연아로 기록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회가 끝난 후 갈라쇼에서 진정한 실력을 갖춘 선수가 누구인가를 세계인들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화제는 금메달이 아니다. 스물넷 처녀가 어떻게 그렇게 의연하고 침착하게 말할 수 있느냐고. 애늙은이가 돼버린 것은 아니냐고. 아니다. 피겨 스케이트를 신고 17년간 자신을 단련하고 이겨낸 고수의 모습이다.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른 달인(達人)의 모습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노익장이 아닌 스물넷 처녀에게서 보았다. 정상에 오르면 자기를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다. 부드럽다. 모두에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준다.

연아보다 두배 이상의 나이를 먹은 정치인이나 고위 관리들도 순간의 말 실수로 창피를 사고 낙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말 한마디 실수로 선거를 망친 대통령 후보도 있다. 장관 자리에서 밀려날 뻔 한 장관도 있다. 아예 장관직에서 밀려난 경우도 많다. 그들은 과대포장 됐었다. 대통령 후보로서, 고위 관료로서 충분한 내공이 쌓인 것으로. 포장은 벗겨지고 진면목은 드러나게 돼있다.

연아의 깊은 내공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미국의 권위지 '월 스트리트 저널'이 잘 전하고 있다. '폐막, 김연아, 예의가 아닌 은메달'이란 제목으로 시인 '괌 도우스'가 시를 헌정 했다. 시인은 편파 판정 시비 속에서도 "모든게 끝나서 행복하다"며 의연히 대처하는 연아의 모습에 감동 받아 시를 바친다고 했다. 그리고 스케이트를 벗고 땅에 발을 내딛는 연아의 앞길을 축복했다. 연아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의 감동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연아는 푸틴과 소련에도 묵직한 감동을 주었으리라 확신한다. 그들은 연아와 한국에 빚을 졌다. 향후 한국과 소련은 시베리아 자원 개발, 항공로와 북극해 뱃길 등 경제 협력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안보 분야의 협력도 절실한 부분이다. 연아의 내공은 소련과의 관계를 비롯, 국내외에서 크게 빛을 발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세리 이후 박세리 키즈들은 세계 골프 판도를 바꾸었다. 연아 이후엔 연아 키즈들이 이어주길 기대한다. 4년후엔 우리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치러진다. 인류 역사에 남을 축제로 치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연아가 있어 행복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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