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를 살리고 쪼개 말해야 토론을 잘한다

민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6학년이 된 지금까지 웅변학원을 꾸준히 다녔다. 워낙 숫기가 없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해 다니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지금은 활달하고 어디서든 말을 잘하는 아이로 변했다. 웅변 실력도 좋아져 학교 웅변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하는것은 물론 학교 대항 웅변대회에서도 상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민수가 어느 날 우울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몇 번을 조심스럽게 물어 겨우 대답을 들었다.

난 그 동안 내가 말을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 학급회의 시간에 토론을 했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는 대로 말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 민수 말 잘하잖아.”

아니에요. 생각하면서 말하려니까 자꾸 말이 꼬여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어요.”

왜 말을 잘한다고 인정받던 민수가 토론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을까? 많은 사람이 말을 잘하면 토론도 잘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말은 잘해도 토론에는 약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토론은 절차가 있는 공식적인 대화다. 미리 원고를 준비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웅변과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민수 부모처럼 아이가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기를 바랄 때 부모들은 주로 웅변학원이나 스피치학원을 보낸다. 웅변학원이나 스피치학원은 말을 잘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토론을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웅변학원이나 스피치학원은 토론에서 필요한 논리적인 말하기를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다. 남들 앞에 서기만 하면 목소리가 달달 떨리고 얼굴이 빨개져 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키워주는 곳이다. 토론에 필요한 논리적인 말하기는 사고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판단해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말해야 하기 때문에 분석력, 종합력, 비판력 등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용기를 내서 말을 하는 방법만 가르쳐서는 토론을 잘할 수 없다.

토론을 할 때는 포인트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화살촉이 없으면 화살이 아니듯이 포인트가 없으면 토론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포인트 못지않게 스토리도 중요하다. 여기서 스토리란 말의 순서를 의미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는가에 따라말의 힘은 달라진다.

 

 

두괄식으로 말하는 것이 기본이다

엄마, 저 오늘만 학원 쉬었으면 좋겠어요. 감기에 걸렸는지 몸이 으실으실 춥고 열이 나서 머리가 아파요. 이 상태로는 학원에 가서 앉아있기도 힘들 것 같아요.”

엄마, 저 감기에 걸렸나 봐요. 몸이 으실으실 춥고 열이 나서 머리가 아파요. 이 상태로는 학원에 가서 앉아 있기도 힘들 것 같아요. 저오늘만 학원 쉬었으면 좋겠어요.”

둘 다 몸이 아파 학원을 쉬고 싶다는 요지의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가장 중요한 결론을 먼저 말했고, 후자는 상황을 먼저 이야기하고 중요한 결론을 나중에 말했다는 점이다. 말하려는 포인트를 앞에 두는 것을 두괄식’, 뒤에 두는 것을 단계식이라 한다.

토론을 할 때는 두괄식으로 말하는 것이 기본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의견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단계식으로 이야기하면 핵심을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포인트를 빵 터트려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해야 상대방도 핵심을 빨리 알아차린다.

하지만 언제나 두괄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토론을 할때는 두괄식이 효과적이지만 상황에 따라 단계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설득력이 있을 때도 많다.

일반적으로 공식적이거나 시간이 부족할 때, 사람이 많을 때, 높은사람에게 보고할 때는 두괄식으로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모임에서 자신의 발언순서가 마지막 무렵일 때도 두괄식이 좋다. 이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지쳐있는 상태이므로 단계식으로 이야기하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적이거나 시간이 많을 때, 사람이 적을 때는 단계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설명하다보면 꼭 그렇다면 시간도 많고 사람도 많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는 듣는 사람이 두괄식을 원하는가 단계식을 원하는가를 판단해 말하면 된다.

단계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분명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두괄식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 중학교 입시를 치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하룻밤 잔 적이 있다. 당시 선생님은 늘 중요한 것은 머리맡에 두어라고 가르쳤다. 그날 밤 나는 선생님 말씀대로 책과 노트를 머리맡에 놓고 잤다. 그때부터 중요한 것은 발치가 아니라 머리맡에 둔다.

포인트를 뒤에 두면 두괄식과 반대 개념인 미괄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수 있다. 우리 국어교과서에는 그렇게 설명되어있다. 하지만 내 사전에 미괄식이란 없다. 포인트를 뒤에 둘 때는 좀 더 세심하게 말을 해야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이야기의 순서를 잘 짜서 앞 뒤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말해야 마지막 포인트가 제대로 산다.5 그래서 나는 미괄식이란 표현보다는 단계식이란 표현을 선호한다.

단계식으로 이야기할 때도 기본은 두괄식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단락별로 순서를 정하고 단락마다 소주제문이나 핵심을 앞에 두고, 부연설명을 뒤에 덧붙여야 효과적으로 포인트를 전달할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이 두괄식으로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핵심을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다. 두괄식으로 말하는 데 약한 아이들의 유형은 크게 5가지다.

우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모르는 경우다. 일명 과시형으로 이런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른 자랑할 이야기가 생각나 하던 이야기를 채 끝내지도 못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듣는 사람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진정 하고 싶었던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두 번째는 걱정형이다. ‘걱정형은 자기 생각이 분명해도 혹시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상처를 받을까 걱정스러워 구구절절 장황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에 겨우 포인트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핀잔을 듣거나 혼이 날까 두려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것도 걱정형에 속한다.

세 번째는 은폐형이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진실을 감추고 싶을 때는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고 빙빙 돌려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끈다.

네 번째는 준비가 부족한 준비 미흡형이다. 일상적인 대화야 별도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지만 토론을 하거나 중요한 발표를 할 때는 준비를 해야 한다. 미리 어떤 이야기를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야 막힘이 없는데, 준비가 부족하면 해야 할 말이 정리가 안 돼 횡설수설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주의가 산만한 산만형도 말이 장황하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도저히 무엇이 핵심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아이는 어떤 유형일까? 왜 아이가 포인트도 없이 장황하게 이야기하는지를 알아야 아이를 도울 수 있다. ‘과시형아이에겐 절제와 배려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10가지 있다면 스스로 이야기의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중요한 것부터 세 가지만 추려 이야기하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또한 과시형 아이들은 대부분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흥에 취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는 하나 마나 한 의미 없는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토론이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걱정형은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급선무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어떤 생각이든 존중받을 충분한 가치가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사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에 확신을갖지 못하고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하는 것은 부모 잘못이크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무시하거나 혼을 낸 적이 많을 것이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야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두괄식으로 명료하게 포인트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은폐형아이에겐 정직의 가치를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게 하려면 평소에 아이가 잘못을 고백했을 때 혼을내기보다는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잘못을 한 것보다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나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준비 미흡형은 말 그대로 준비가 부족한 유형이다. 이런 아이들은말을 하기 전에 미리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정리해보는 연습을 하는것이 중요하다. 혼자서 어려워하면 부모가 도와주어도 좋다. 도와줄 때는 어디까지나 보조자의 입장을 준수해야 한다. 아이가 할 말을 대신생각해주거나 필요한 자료를 대신 찾아주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할 거야?”

그 중 어떤 이야기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일까?”

이렇게 질문을 던져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정리하고 준비하도록 해야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산만형은 집중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TV, 휴대전화 등 아이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요인들을 없애면 집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의가 산만해 말을 할 때 두서없이 하는 아이들도 역시 준비 미흡형처럼 미리 어떤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준비하면 한결 명료하게 두괄식으로 말할 수 있다.

 

 

세 개로 쪼개서 말한다. 첫째, 둘째, 셋째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말을 한꺼번에 줄줄 쏟아놓지 말고 쪼개서 말하는 것이 좋다. 쪼개서 이야기해야 말하는 사람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편하다.

쪼개서 이야기할 때는 두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은 세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와 같이 몇 개로 쪼개서 말할 것인지를 먼저말하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몇 개로 쪼갤 것인가는 내용의 주제와 양에 따라 결정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세 개로 쪼개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세 개가 넘어가면, 예를 들어 열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와 같이 말하면 듣기도 전에 지루한 느낌이 들 수 있다.

요즘엔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내가 학생일 때만해도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했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끝나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첫째는……, 둘째

……, 셋째는……, 넷째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훈시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교장 선생님이 오늘은 세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금방 끝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좀 더 열심히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면 듣는 사람은 세 개의 저장 파일을 준비하고 듣기에 훨씬 잘 들을 수 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만 보면 한 가지만 간단하게 얘기하는 것이 가장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짧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 딱 한 가지가몇 가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야기를 세 개 정도로 쪼개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 개로 쪼개 말하다보면 분석력이 좋아진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쪼개는 것 자체가 분석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반대로 해야 할이야기의 주제가 너무 많으면 세 개로 줄여 말하는 것이 좋다. 주제들을 잘 살펴보면 굳이 따로 구분하지 않고 통합해서 이야기해도 될 만한 내용들이 있다. 각각의 소주제를 더 큰 대주제로 묶는 것으로, 이런 연습은 종합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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