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낼 모레쯤 또 비가 오것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맑은데 저마다 보따리 하나씩 끌어안고 현관 문 쪽으로 모여드는 치매병동 노인들의 일기예보는 어쩌면 그리도 기상청의 그 것보다 정확한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 밥을 차려줘야 한다.” “오늘이 우리 아들 생일인디 미역국 긇여줘야 하니 집에 가야 한다.” “우리 큰며느리가 옷 사갖고 온다고 했다.” “우리 외손주가 집에 와있다.” “내 큰아들이 아파서 누워 있으니 돌봐줘야 한다.”등 등...치매병동 노인들의 집에 가야 한다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가족(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뿐이다.

신혼의 행복한 생활은 남편의 다른 여자에의 갈증에 빼앗기고 잔느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맞이하게 된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성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남긴 유품 중에서 아버지 몰래 정부와 주고 받은 편지 뭉치를 보고 받은 충격, 그래도 잔느는 그의 외동 아들 폴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폴에게 지극정성으로 헌신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라 생각하며 오로지 폴을 위해서만 살아간다.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흘러서 중학교에 입학 할 나이가 된 폴은 노르망디를 떠나 파리로 떠났다. 멀리 있는 아들을 그리는 노모의 정만큼이나 어머니를 그리며 자주 편지를 보냈던 폴. 그러던 폴의 편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뜸해지더니 급기야 노모에게 돈을 요구할 경우를 빼면 아예 어머니를 그리는 편지는 보내지 않게 된다. 그리고 폴은 파산한다. 그 충격으로 인해 불쌍한 딸을 그렇게도 보살펴주던 친정아버지 마저 죽고나니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고 아버지의 무덤에 업드린 채 허무하게 부서져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한없는 울음을 울고 또 울 수 밖에...

그런데 배반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늙어가고 있는 그녀 앞에 홀아비가 되어서 나타난 아들 폴은 자신의 어린 딸을 데려와 키워달라며 맡긴다. 그리고 수많은 배반과 절망에 울던 노파(잔느)는 또 이 나이 어린 생명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다. 머지않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배반을 예감하면서....이 것이 여자의 일생(기드 모파상), 아니 어머니의 일생이었다.

우리 나이로 올해 70세가 되신 분들이 태어난 해가 1945,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던 해였다. 80세가 되신 분들은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시절에 소년기를 보냈고 90세가 되신 분들은 청년기를 일제의 폭압 속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감내하며 보내야 했다. 그리고 해방이 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맞이하게 된 동족상잔의 6.25 전쟁.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모질게 살아남아 동족 살육의 포화에 일그러진 마음들을 어루만지며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만 했기에 폐허 속에서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오늘날의 우리들을 낳아서 기르고 이 나라를 있게 한 세대들... 그들이 지금 머무는 곳은 대부분 가족의 품이 아니라 머나먼 객지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속칭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 곳을 무덤처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그런 시설에 가지 않아도 될만큼 혼자서 활동할 수 있는 분들도 있지만 그들의 대부분 또한 허리가 굽고, 두 다리는 휘어지고 척추는 뒤틀리고...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분들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온갖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젊을을 바치고 인생을 바쳐서 오늘의 번영됭 조국을 있게 한 세대들, 지금 그들이 머물러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들이 설령 치매에 걸렸다 해도, 전신 마비가 되어 자리보전이나 하게 되었다 해도 그들이 머물 곳은 어느 한 순간 모 요양원 같은 화재로 인해 공동의 무덤이 되어버릴 그런 시설이 아니다. 혈육의 정은 고사하고 따뜻한 사람의 정마져도 고스란히 메말라버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그런 시설이 아니다. 우리 자식 세대들의 마음 속에 그들의 영혼이 머물게 해야 하며 잔느가 겪은 배반과 상처로 더 이상 그들의 가슴이 피폐지고 아름다운 영혼이 멍들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자식 세대들이 직접 보살피고 받들기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에 그런 시설로 보내지는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단순한 시설에서 그들을 가두어 두고 하루 밥 세끼나 챙겨주는 그런 차원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보다 더 질 이 높고 안전하며 수용된 어르신들이 인간의 정을 느끼고 남은 여생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연구 해야 한다.

이 땅에 잔느의 상처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젖 잃은 어린 손녀 손에 끼고 등에 길러/색시꼴 백여가니 눈에 오죽 밟히신가?/봉사도 님 따라간지 아니 든다 웁니다./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움이면 다 설운가?/오십년 님의 살림 눈물인들 남을 것가?/어저다 꿈이라시고 내 키만을 보서라/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단 몸이라/무덤 풀 욱은 오늘 이 살 붙어 있단말가?/빈 말로 설운 냥 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북단재 뵤쪽집이 전에 우리 외가(外家)라고/자라신 경눗골에 밤동산은 어디런가?/님 눈에 뷔치던 무산 그저 열둘이러니-정인보 자모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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