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현대까지 ‘유구한 역사성’

일본에서 먼저 인정받은 황금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황칠나무. 특히 서해안의 요충지 영광군이 새로운 환금성 작물로서 황칠은 최적의 재배조건을 구비하고 있어 임업 분야에서도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황칠의 새로운 조망에 대해 입체적 분석과 추후 비전, 그리고 차세대 위상에 대한 논점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나무인삼이라는 학명의 황칠(黃漆)나무

황칠나무의 국제학명은 덴드로-파낙스’(Dendro-panax Morbifera Nakai)라는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데, 인삼과 같이 사포닌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인삼나무로 일컫는다. 그만큼 예로부터 약리효과가 탁월한 신비의 나무로 주목받아온 황칠나무!

두릅나무과’(Ginseng Family)에 속하며, 일 년 내내 늘 잎이 푸르고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 자란 상록교목(常綠喬木)인 황칠나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독특하고 다양한 우리나라 난대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수종(樹種)이다.

세계적으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성장하는 우리 고유의 토종식물인 황칠(黃漆)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황칠나무껍질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의 황금액체가 마치 옻나무의 옻칠처럼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에 흔히 황칠나무를 노란옻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잎이 마치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여 압각목(鴨脚木) 또는 압각판(鴨脚板), 압장시(鴨掌柴)라는 애칭으로 회자되었으며,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로 부르기도 하였다.

황칠은 이 나무의 껍질에 상처를 내어 채취하는데, 예로부터 그 특유의 황금색과 희소성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여기서 채취된 황칠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이미 중국으로 수출되었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옻칠천년, 황칠만년'이라는 문구처럼, 삼국사기(三國史記), 해동역사(海東繹史) 문헌에서도 우리 선조들의 발견해낸 우수한 칠재료 중 하나로 기술한 황칠나무는 약용으로도 그 효능이 탁월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황칠나무는 수액(水液)과 수지(樹脂)를 분리하여 수액은 금칠로 이용하였고, 수지는 안식향(安息香)으로 애용하기에 이르렀다. 순조 때 유희(柳僖)는 여러 사물을 설명한 물명고’(物名攷)라는 책에서 황칠나무에 대하여 기름 같이 맑은 것은 수안식향(水安息香)으로 삼고, 말려서 덩어리된 것은 건안식향(乾安息香)으로 삼는다."라 하였다.

역시 조선 순조 때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지은 농업백과 사전 임원십육지’(林園十六誌)에서 황칠나무는 천금목’(千金木)이라 하였고, 그 진액은 안식향으로 쓰였으며, 맛이 매우 맵고도 독특하여, 구충제와 진정제라고 기록하고 있어 약용으로도 사용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왕실에서 칙사 대접

신비의 금빛 천연도료로 알려진 황칠(黃漆)! 은은한 황금색에 내열·내수·내구성이 월등한 황칠은 고대부터 공예품 표면의 장식에서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 귀하게 대접받았다. 문헌에는 황칠을 예찬한 기록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금빛 광채의 갑옷을 고구려에 공물로 보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신라는 칠전(漆典)이라는 관청을 두고 국가가 칠 재료 공급을 조절하였다.

이렇듯, 삼국시대는천연으로 황금빛의 황색도막을 형성하여 그 위용을 자랑할 수 있었기에 철제 투구나 갑옷, 화살촉 등에 발랐고, 고려시대 왕의 용포나 용상 등에도 쓰였다고 전한다. 또한 합죽선(合竹扇)에 칠하기도 하고, 수의(壽衣)에 칠해 영원 세월을 보존하기도 했다.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황칠을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塗料)’라고 적고 있다. 특히 북송(北宋) 시대 왕흠약(王欽若)과 양억(楊億) 등이 편찬한 백과사전류인 '책부원구'(冊府元龜)라는 문헌에는 "당 태종(이세민)이 정관(貞觀) 19년에 백제에 사신을 보내 산문갑(山文甲, 의전용 갑옷)에 입힐 금칠(金漆, 황칠)을 요청했다"라는 기록이 확인된다. () 태종(太宗)의 연호인 정관 19년은 서기 645년으로 백제로는 의자왕 재위 9년째가 되는 해다.

통일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었다고 전해지는 가운데, 심지어 중국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주역의 서문에도 '황칠판 위에서 이 책을 명상하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칭기즈칸 (Genghis Khan) 테무진(Temuchin)의 갑옷과 천막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이는 황칠이라는 비기(秘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궁전과 집기류 등 황제의 것이 아니고는 누구도 사용을 엄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청나라 왕조의 궁궐인 북경의 자금성(紫禁城) 내부(태화전, 건녕전, 황제의 용상, 어탁)를 치장한 금빛도 조선의 황칠로 알려진다. 궁궐 이외에도 공주비녀에 이르기까지 아주 귀하게 대접받는 황칠은 귀신을 쫓는다하여 의례에도 썼고, 선비들도 칠을 지니고 있으면 대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 행랑주머니에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

극심한 조공과 수탈로 명맥 끊겨

황칠은 야생에서 자생하는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수액(樹液)을 가공한 칠을 말한다. 통상 칠이라면 붉은빛을 내는 주칠(朱漆)이나 검은색을 내는 흑칠(黑漆)을 생각하기 쉽고 실제 이런 칠이 가장 흔했으나, 황칠은 그 희소성에 중국에서도 탐욕을 부린 진상품이었다.

그대 아니 보았더냐 궁복산(弓福山) 가득한 황금빛 액 / 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 /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 /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 /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 / 잘 익은 치자나무 어찌 이와 견줄소냐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다산 정약용의 황칠’) 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것이라, 황칠의 희귀함에서 오는 민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탈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胡椒, 후추)를 넣어 나무를 말라죽게 하거나 밤에 몰래 도끼로 아예 베어내 버렸다'(牧民心書 '산림')

중국 자금성의 용상과 어좌는 물론 각종 집기류와 천장, 벽면을 일체 도장하기 위해 얼마나 무수한 황칠액이 필요했겠는가.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을 거친 후 청나라는 조선의 임금에게까지 황칠 사용을 금지한 뒤, 세계 유일의 황칠 생산지인 전남 해안에 대한 감시와 악탈을 강화한다.

조선왕조 정조 18(1794) 호남 위유사(慰諭使)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 '완도의 황칠은 근년 산출은 점점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과외로 징수하는 폐단은 엄격히 규제하여 영원히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결국 중국에 대한 과도한 조공과 공납으로 지방 관리들의 수탈이 심하여져 점차 그 개체수가 줄어들어 존재가치조차 매우 희미해지기에 이른다. 200년 전부터 농가에서는 황칠을 키우기를 꺼려하여 100년 전부터는 거의 멸종되다시피 하였으며 그러나 그 채취나 정제법이 매우 까다롭고 구하기가 힘들기에 전통 칠공예로서 황칠도 사라져갔다.

전남 해남서 야생종 발견 소생의 길

수탈과 약탈에 그 명맥이 끊긴 황칠나무는 일제 강점기부터 연구가 시작됐고, 근래 들어 신약이나 건강보조식품, 염료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던 모습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최초의 스텔스 기술 근원지는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일본은 1930년대 후반 자신들의 취약점인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해 전자파 흡수 능력을 가진 재료의 발굴에 총력전을 펼치면서 당시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서 자생하는 황칠나무에서 그 답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그 해답을 최종 극복하지 못하였다.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한다는 제주 도민들은 다수는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를 해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에만 잔존했던 황칠나무는 1990년대 초반 우연히 전남 해남의 해안가에서 야생종이 발견돼 부활과 소생의 문턱에 있다. 연이어 전남의 고흥, 완도군 상황봉(象皇峰)과 보길도(甫吉島), 진도군 첨찰산(尖察山), 해남군 두륜산(頭輪山), 경남 거제도 등 도서지역과 해안 일대 19개 지역에서 자연 황칠나무가 확인되었다. 그것도 한두 그루가 아닌 수만 그루가 자생하고 있으며, 이 나무에 대한 양묘사업까지 이루어지면서 최근 전통 황칠을 다시 살리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급진전된 황칠나무 연구 최신 성과로는 천연 안식향(安息香)이 충일하여 심신에 활력 효과는 물론 도료와 염료, 전자파흡수 등에서 탁월한 특성을 나타내어 급속한 고수익이 기대된다. 황칠의 이런 탁월함 뿐 아니라 항암성분 등 다양한 약리작용까지 밝혀짐에 따라 거듭 각광받고 있다.

황칠은 금속, 피혁, 목재 등 어떤 소재에도 뛰어난 도장기능을 내는데다 좀과 녹이 안 슬고 열에도 강해 금박을 입힌 듯 아름답고 투명한 황금색을 오래 유지한다. 도료의 성능을 가늠하는 내열성, 방습성 실험에서도 기존 합성도료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결과가 속속 입증되고 있다.

염료분야에서는 황금빛 천연염색에 안식향을 발산하며 모기 등 각종 해충을 퇴치하는 독특한 향을 지닌데다 전자기파를 탁월하게 흡수 분해하는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 기능성 의류제품의 상품화가 적극 기대된다. 황칠의 안식향은 심신을 동시에 가꾸고 달랠 수 있는 신개념의 천연향수로서의 가능성이 무한한데다 항암, 항산화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한국형 신약개발에 일대 서광을 비추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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