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토론의 기술
밥상머리 토론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지향한다
얼마 전 식당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옆 테이블에 가족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앉았다. 엄마, 아들, 딸 세 명이 모처럼 외식을 하러 나온 것 같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연신 손가락으로 액정 화면을 건드리며 각자의 스마트 폰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도 문자를 보내는지 연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스마트폰만 쳐다보았다. 식당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을 때조차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각자 메뉴를 말하고 다시 침묵했다.
대화가 없는 그 가족에게 괜히 신경이 쓰였다. 설마 음식이 나와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식사를 할까? 설마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음식이 나와도 그 가족은 말 한마디 없이 각자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채 식사를 했다. 결국 그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도 아이들은 직접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작은 컴퓨터나 마찬가지인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스마트폰에게만 가족을 뺏기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식사를 할 때는 대부분 TV를 보면서 가족이 아닌 TV와 대화를 한다.
식사시간은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때로는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면서 가족간의 유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화뿐만 아니라 조금만 더 발전시키면 함께 토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식사를 할 때만이라도 스마트폰을 꺼두고 대화와 토론을 하면 아이의 토론 실력이 향상될 것이다.
밥상머리 토론은 가벼운 주제가 적당
원◯◯ 전 국회의원은 식사시간에 아이와 함께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토론을 즐겨서인지, 그 딸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토론을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다고 한다. 풍부한 지식과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를 풀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는 소문
이다.
원◯◯ 씨의 딸뿐만 아니라 토론을 잘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자랐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주로 식사시간이었음은 물론이다. 꼭 토론의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토론 연습을 한 셈이다.
바쁜 현대인들이 가족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단연 식사 시간이다. 특히 아빠가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이 전부나 마찬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론 실력은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생각을 나눌수록 향상된다. 토론을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느 한쪽 부모와만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보다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대화를 나눈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밥상머리 토론을 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식사시간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화나 토론의 주제가 가벼워야한다. 부모들 중에는 식사시간에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분들이 많다.
“아침에 5분만 일찍 일어나도 편하잖아. 왜 눈 뜨면 발딱발딱 일어나 질 못하니?”
“햄과 소시지만 먹지 말고 나물 반찬도 좀 먹어. 편식하면 안 돼.”
설령 아이를 위한 잔소리라 하더라도 아이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밥맛을 떨어뜨리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성적 이야기처럼 아이에게 부담을 주거나 비난하는 이야기는 더욱 더 좋지 않다.
“중간고사 성적표 나왔니? 이번에는 성적 좀 오를 것 같니?”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해. 왜 요즘 불량스러운 ◯◯와 자주 어울리는 거니?”
부모 입장에서는 식사시간 외에는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식사시간을 빌어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잔소리나 아이를 비난하는 말은 밥상머리 토론을 방해한다. 좋은 소리도 세 번 들으면 지겨워진다는데, 아이가 싫어하는 잔소리와 비난을 늘어놓는다면 밥상머리 토론은커녕 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것 자체를 거부 할 수도 있다.
밥상머리 토론의 주제는 가볍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집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때 정치, 종교처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주제는 잘 꺼내지 않는다. 자칫 이야기가 조금만 과열돼도 서로 감정이 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 좀 더 알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표현인데, 무겁고 민감한 주제를 꺼내 충돌하면 그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다.
밥상머리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도 수위조절을 잘해야 한다. 옛날 아버지들은 주로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을 훈계했다. 일명 ‘밥상머리 교육’이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아이에게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가치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이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부모가 일방적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를 지시하고 훈계하는 교육이라면 아이들에게 반감을 살 뿐이다. 그런 밥상머리 교육이 즐거울 리도 없다.
즐겁고 유쾌한 밥상머리 토론을 하려면 잔소리와 비난을 거두고 아이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주로 질문으로 아이의 생각을 끌어내고 열심히 듣고 공감해주는 것으로도 밥상머리 토론은 성공한다.
밥상머리 토론에 적합한 주제 vs 피해야 할 주제 tip
적합한 주제
●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가벼운 주제
(예: “이번 주말에 뭐할까?” “우리 ◯◯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우리 ◯◯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누굴까?”)
●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주제
● 아이가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는 주제
●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주제
● 사실적인 주제 혹은 지식적인 것에 대한 주제
피해야 할 주제
●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주제(예: “이번 시험 준비는 잘 되고 있니?”)
● 아이의 인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주제
옳고 그름만 따지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라
밥상머리 토론의 주제는 가벼운 것이 무난하다. 하지만 가벼운 주제로 밥상머리 토론에 익숙해지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밥상머리에 올려도 괜찮다. 신문이나 TV에서 한창 이슈가 되는 주제도 좋고, 시사적인 문제나 철학적 주제도 나쁘지 않다.
대학 논술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한 학생은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밥상머리에서 토론을 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중학생 때부터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버지와 그날 신문을 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두루 나눴다고 한다.
사실 아침식사 시간은 길어야 30분이기 때문에 심도 깊은 토론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학생도 그날의 주요 뉴스를 훑어보고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아버지에게 묻거나 아버지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토론은 사실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소통이다. 많은 사람이 말만 잘하면 토론을 잘할 수 있고, 글만 잘 쓰면 논술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토론이나 논술은 사실을 바탕으로 정확한 근거와 예시를 들지 않으면 설득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그 학생이 아침식사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 시사문제를 훑어보고 짧게라도 생각을 나눈 것은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벼운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만으로도 토론 실력이 늘지만 이왕이면 한걸음 더 나아가 시사적인 문제나 좀 더 생각을 요하는 깊이 있는 주제를 토론하면 토론 실력이 더 빠르게 일취월장할 수 있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다양한 생각이 나올 수 있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일수록 옳고 그름만을 따지지 말고 생각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들은 이성적으로는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부속물이나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오만한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의 생각을 좀 더 키워주고 싶어 과도한 설명을 늘어놓거나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
물론 아이 생각이 어설플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옳고 그름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 부모와 아이가 동등한 입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굳이 아이 생각에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달지 않아도 토론을 통해 생각의 힘이 커지면 스스로 자기 생각을 발전시킨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꾸중하고 싶을 때도 부모가 자신의 분노를 다스린 후에 그렇게 해야 한다. "엄마가 지금 화가 엄청 나 있거든. 있다가 저녁에 보자." 부모가 자신의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를 꾸중하는 것은 역효과만 가져올 따름이다. 자녀에게 나쁜 말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쁜 말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실력이다. 나쁜 말도 기분 좋게 하면 좋은 말이 될 수 있다.
자녀교육은 자녀를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부모가 자녀와 힘을 합쳐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다. 학생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