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충효(忠孝)의 자리를 개인주의가 차지하고 있다. 개인주의는 결국 모두의 삶을 불행으로 내몬다. 태극기 아래 화합하는 국민적 자각이 절실하다

대부분의 모임은 모임이라기보다 술판이다. 술을 싫어하는 만큼 모임에 잘 나가지 않는다. 나가서 즐거운 모임은 딱 하나다. 점심 모임이라 술이 거의 없어 열심히(?) 참석한다. 전남매일신문 사우회다. 회사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세월 따라 숫자가 적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그 때 그 시절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다. 지난 모임에서 좌장격인 선배가 갑자기 국경일 등에 태극기를 다느냐고 물었다.

태극기를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세태를 지적했다. 태극기를 소중히 여길 것과 태극기 게양의 생활화를 주장했다. 부끄러웠다. 좌중이 숙연해 지는 것으로 미뤄 대다수가 나처럼 태극기 게양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태극기가 우리의 의식과 생활 속에서 사라졌다. 경제적으로는 먹고 살만 해진 이후,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이후로 생각된다.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한다. 역사와 문화, 철학, 민족의 이상이 담겨 있다. 1882년 처음 만들어졌다. 다양한 모양의 태극기가 사용되다 1949년 법으로 통일했다. 태극기를 소중히 여기는 정도가 곧 나라에 대한 충성심의 척도였다. 독립 운동가들은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나라는 빼앗겼으나 태극기는 지켰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나라를 지킨다는 결의의 상징이었다. 민주화 시위에도 등장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태극기가 곧 국가요 민족임을 가르치고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연장선상에 있다. 태극기의 상징성과 이상 아래 함께 써 내린 역사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점차 역사를, 태극기의 상징성과 이상을 잊어가고 있다. 가치관과 철학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있던 자리에 개인주의, 배금주의가 들어섰다. 나라는 물론 이웃마저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 한 세태다. 나라와 민족이 어찌되던 나만 잘살면 된다. 2m 정도 앞에 문이 있는 이웃과도 알고 지내는 것 자체가 번거롭다. 이런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국민에게 태극기는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태극기가 게양된 집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과 갈등이다. 통일과 화합만이 국가와 민족이 번영할 수 있는 길이다. 대부분의 정치인과 학자들의 주장이다.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통일과 화합을 위한 공식적인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역시 현실적 생활은 개인주의 배금주의에 찌들어 있다. 돈과 권력을 쫒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국가, 민족, 공동체 등은 사실 그들의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 내 집, 내 아이에게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 집안으로 따지면 콩가루 집안이다. ‘콩가루 집안을 선호하는 국민이 많은 나라. 통일과 화합은 말 뿐인 사회. 그 끝은 어디일까. 공동체 해체는 공동체와 개인 모두의 분열과 갈등, 가난과 불행으로 이어진다. 필연이다.

40여 년 전. 잠시 화교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대만(臺灣)과만 수교하던 시절이다. 아침 일과 시작 전엔 국기 게양식, 일과 후엔 하기식을 거르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손문(孫文)은 국부(國父), 장개석(蔣介石)은 총통(總統)으로 호칭한다. 내국인은 물론 해외 교포에게 까지 국기(國旗)의 소중함과 상징적 인물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도록 교육한 것이다. 국기와 존경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국민 화합을 이룬 것이다. 거대 강국으로 성장한 본토(本土) 중국에 합병되지 않고 건재할 수 있는 저력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지역과 계층, 세대, 빈부간의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공동체 붕괴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협동조합 등 민간 차원의 공동체 복원 운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어 다행이다. 태극기 아래 화합 하는 국민적 자각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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