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다산은 잘못하면 분노하고, 당연히 바꿔야 한다고 가르쳤다. 국가개조가 요구되고 있다. 당연히 분노하고 바꿔야 한다

영랑이 오메 단풍 들겄네!” 하던 날씨가 엊그제. 그 좋던 계절 금방 지나고 이제 오메 눈 오겄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아직은 온 산에 단풍 들어 아름답지 않은 산이 없다. 놓칠세라 부지런한 발걸음들이 줄을 잇는다. 먼데 내장산은 물론이요 고창 선운사·문수사, 가까이는 불갑사까지. 조금 지나면 설경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발걸음들. 그렇게 14계절 내내 아름다운 강산. 좋지 아니한가.

좋다. 하지만 그것들만 보고 살 수는 없다. 세월호도, 세 모녀의 죽음도, 담양 펜션 화재도 모두 나의 것, 우리의 것이다. 두 눈 부릅뜨고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밝혀야 한다. 다시는 그런 참사가 없도록 무언가 해야 한다. 모든 참사들의 근본 원인은 국가적 시스템 미비다. 조직과 제도는 있다. 문제는 그 속에 자리한 온갖 비리다. 사고가 터지면 온 나라가 시끄럽도록 재발 방지를 다짐한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또 시스템 속에 자리한 비리다.

엊그제 영광 공공도서관 강당에서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의 강의가 있었다. 물론 다산의 사상이다. 경제·효제(孝悌애민(愛民용기·분노하라·청렴 등이다. 박 이사장은 이 가운데 분노하라는 대목을 가장 강조했다. 잘못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주변 사람들의 잘못은 물론, 국가와 권력자의 잘못은 특히 분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비민주적 행태의 박 근혜 정권을 향한 분노도 언급했다. 민주화 운동 출신답다.

목민심서를 통해 목민관의 도리를 가르친 것 정도만 알았다. 유학을 종교처럼 받들던 시대에 분노하라고 가르친 다산이 새삼 존경스럽다. 그리고 부끄럽다. 우리는 정말 분노할 줄 몰랐다. 아니,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다. 못했다. 세월호 유족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대통령, 유 병언에게 참사의 책임을 돌리려는 언론, 무능한 총리와 장관, 공직자들, 뒤처리와 재발 방지책 마련은 뒷전이고 정쟁에만 열 올린 정치권 등 모두에게 분노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 국민이 분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분노 했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분노를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국가 개조의 목소리만 높였다. 그러니 세월만 질질 끌고 유족들의 눈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똑같은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유지된다. ‘개조해야 할 국가의 대통령은 당연히 지지도가 곤두박질쳐야 맞다. 언론이 말하는 지지도는 엉터리다. 아니라면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국민이다.

복지 공약은 지키지 않는다. 예산 핑계로 오히려 후퇴다. 새로운 정책은 없다. 남북 관계, 대일 관계는 악화됐다. 미국은 일본을 먼저 생각하고 한국은 뒷전이다. 그렇다고 북한보다 우리와 가까운 중국은 기대하는 것은 꿈이다. 국민적 요구가 커진 개헌을 말하는 여당 대표를 향해 대통령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차기 집권을 꿈 꾼다는 여당 대표는 깨갱이다. 자멸(自滅)의 길을 걸어온 야당은 분당(分黨) 조짐을 보인다. 실망스런 정치 현실이다. 다산의 가르침대로면 이들에 대해 분노해야 마땅하다.

다산의 분노하라는 가르침은 바꾸라는 의미다. 잘 못하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 바꾸려면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못해도 지연·학연·혈연을 때문에 눈을 감았다. 정당과 지역을 핑계로 바꾸지 않았다. 오늘의 우리에게 이보다 엄중한 가르침이 있겠는가. 사상 유래 없는 참사에도 시간이 약이라는 듯 미적미적하는 정치인, 공직자들을 모조리 바꿔야 한다. 때가 되면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지역의 크고 작은 공적 조직들도 국가 개조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분노하고 바꾸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국민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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