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제폭구민(除暴救民), 오리징치(汚吏懲治),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외치며 녹두장군과 농민들의 피울음이 호남벌을 적시던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지 120주년. 이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는 갑오년(甲午年)이 저물어가고 또 다른 우리 근대사의 아픔과 질곡으로 얼룩져진 을미사변(乙未事變)의 120주년 되는 해가 몇일 남지 않았다.
휘어진 것을 바로 잡고 그른 것을 옳게 하고자 했던 세력들을 청군과 왜군을 끌어들여 제압했던 민비가 그 왜세(倭勢)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청일전쟁의 물고를 트게 했으며 급기야는 한일합병의 단초를 제공한 아이러니와 역사적 오류. 그로부터 120년, 세월이 그렇게 흘러오는 동안 외형(外形)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으나 본질적 모순구조는 아직도 그 때의 그 상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치 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유지와 이익을 위해 온갖 명분을 내세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며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 하고 있다.
과거 조선 말기의 상황과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는 작금의 한반도.
국제질서를 관장하는 야경(夜警)꾼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미국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재하려는 수단으로 전범 일본에게 집단자위권까지 용인해주는 관용(?)을 베풀고 있으며 일본은 그 야합에 편승하여 군국주의의 망령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우리와의 제1 무역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북한보다 먼저 남한을 방문하는 파격적인 외교를 하며 삼각동맹에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을 떼어내려 하고 있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된 러시아는 중국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며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극동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과거 한반도가 미.영.소.중의 이익을 위한 각축장이 되었듯이 지금도 미.러.중.일 등이 민족분단이라는 한반도의 구조적 모순을 적절히 이용하며 오로지 자국의 이익의 관점에서만 모든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권만이 서로의 업적에 공치사하며 상대를 헐뜯는 진흙탕 속에서 권력 싸움의 아편에 취해있다.
과거의 위정자들이 민중들을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만 보고 자신의 권세와 척족의 이익만을 위해 이 나라, 저 나라에 붙어 의지하며 주변 강대국들을 한반도에 끌어들여 우리 땅에서 전쟁까지 하게 하고, 결국에는 국가를 다른나라에 넘겨주었던 치명적인 우(愚)를 범했다면 지금의 위정자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보다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정치를 하기보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서로의 권력 쟁취를 위해 물고 뜯고 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이간질 시키며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 정부 시절 어떤 철없는 야당 국회의원은 소아병적 영웅심리에 사로잡혀 “만주지역이 우리땅이이니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라고 국회에서 열변을 토했다. 천번 백번 맞는 주장이고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 발언은 황화문명 이전의 문명 발굴로 인해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문명의 후발주자가 되어버린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은밀히 동북공정을 추진하던 중국에게 우리 국회의원의 충정어린(?) 그 발언은 커다란 자극을 유발했고 그로 인해 중국이 보다 더 치밀하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고대사와 문명을 자신들에게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는 안내자 역활을 해주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우리의 아리랑을 자신들의 문화유산이라며 유네스코에 지정을 의뢰하자 뒤늦게사 깜짝 놀란 우리 정부에선 이를 저지하고 우리의 유산으로 등재하기까지 진 땀을 뺀 사건은 우리의 위정자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질타해야 함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직무이지만 소아병적 영웅주의에 빠져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며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자리인 국회에서 경솔하게 발언을 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저들(주변국가)이 노리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그 어리석음의 핵심은 우리 민족의 내부갈등이다. 남북 갈등과 남남 갈등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남북갈등은 외세에 의해 조장 된 것이지만 남남갈등은 우리 내부적인 것이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세계정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끌려가는 외교가 아닌 이끌어가는 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남북갈등도 해소 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때 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주고받으며 치밀한 계획을 추진해왔다.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남남 갈등을 해소시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남북 갈등 해소의 전제가 남남 갈등의 해소인데도...
미국놈 믿지말고 소련놈에 속지말자
일본놈 일어나고 중국놈 몰려오니 조선사람 조심하세
해방 직후에 우리 민중들에게 널리 회자되던 말이다. 당시 위정자들만이 이 금언(金言)을 모르고 방기한 채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동학농민혁명120주년, 그리고 을미사변 120주년! 이 나라 위정자들에게 주문한다. 우리 근대사의 모순과 오류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던 120년 전 그 때를 기억하며 오늘을 설계하고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담보해낼 수 있도록 자신의 사소한 욕심을 버리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맡은바 임무에 충실해달라. 120년 뒤의 갑오년과 을미년에 오늘의 역사를 평가하는 후세들이 훌륭한 선조들이라며 감사할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