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겨우내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겨울잠에 빠진 대지의 생명들을 흔들어 깨운 물줄기가 흘러흘러서 함께 어우러진 칠산바다. 그 바다의 잔물결은 오늘도 은빛 찬란한 물비늘을 한없이 벗겨내며 무한 생명의 몸짓처럼 일파만파로 일렁이고 있다. 수롱이의 발길에 채여 바다로 간 아다다의 항변 같이 봄 햇살에 반짝이는 은린(銀鱗)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이 시리기까지 하다.
그 원초적 생명의 몸짓 위에 떠있는 수많은 바지선에선 지금 농한기에 흔치 않은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뱀장어 치어(일명 시라시)잡이가 한창이다. 주야 하루 작업으로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3-4백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뱀장어 치어(이하 치어)잡이는 농어촌에서 흔치 않은 고소득원이다. 이는 잡는 어부들 뿐만 아니라 그 것을 사들이는 상인들과 양만 사업자들, 장어 구이집 등 음식점과 외국산 치어 수입상들에게 까지도 커다란 소득원으로 작용하는 경제활성화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때문에 해마다 치어잡이가 시작되는 2월부터 마무리되는 6월까지는 이 치어의 매매(賣買)를 위한 어민들과 상인들 사이의 가격 다툼 그리고 상인들과 상인들간의 물량 확보를 위한 신경전 등 이른바 쩐의 전쟁이 치열하다.
이른 아침 어민 한사람으로부터 치어 수집상을 하는 A씨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가격이 얼마예요?” 마리당 200원 마진을 염두에 둔 A씨는 양만장 입고 가격인 3,000원 에서 200원을 빼고 “예 오늘 시세가 2,800원이네요” “다른데서는 2,850원 준다는데요?” “그래요,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죠 남보다 적게 주면서 나한테 물건을 달라고 할 수 없죠 나도 2,850원에 살께요 물량만 많이 확보해주셔요” “예 알았어요 그럼 내일 마을 물량 모두 모아서 전화 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난 어민은 또 다른 수집상 B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똑 같은 질문을 한다. “여보세요 B씨죠?” “예 오늘 물량 좀 있어요?” “예 좀 있긴 있는데 오늘 가격이 얼마예요?” “2,800원이요” “에이 다른 사람은 2,850원에 사갔다는데...” “그래요? 3.000마리만 넘으면 내가 2,900원에 살게요” 그렇게 해서 치어 가격은 한 마리당 순식간에 100원이 상승한다. 단돈 100원이지만 숫자가 있으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친구 자네가 치어 수집을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마을에 있는 물량 모두를 모아줄테니 2,900원에 살 수 있겠는가?” “그래 물량만 많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네” “그럼 지금 빨리 우리 집으로 오소 우리 마을 물량 모두 모으면 1만마리 이상 되겠네” 친구의 배려로 한 번에 한 장소에서 1만마리 이상의 치어를 살 수 있게 된 수집상 C씨는 마리당 이윤이 적어도 많은 물량을 확보할 수 있게 전화를 해 준 친구의 고마움을 생각하며 곧장 친구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친구가 안내한 어민의 집으로 가서 꽤나 많은 마릿수지만 미리 세어 놓은 치어를 비닐 봉지에 담고 대금을 치르기 위해 계산을 한다. 그런데 몇 번을 계산해도 친구의 계산과 C씨의 계산이 맞지 않다. “친구 지금 마리당 얼마씩 계산 계산 했는가?” “자네가 전화로 말한 대로 2,900원이네” “에이 이사람아 무순 소리야 조금전에 다른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3,100원에 사간다 해도 자네가 온다고 해서 거절 했는데...” “그 가격에 사기는 불가능하네 손해보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비닐봉지에 이미 포장까지 한 치어를 다시 쏟아부으려고 하는 C씨에게 치어의 주인인 어민이 다가오더니 “어이 잠간만 기왕에 포장을 한 물건이니 2,950에 가져가소” “그 가격에도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라며 C씨가 포장해둔 치어를 다시 쏟아부으려 하자 “그럼 2,900원에 가져가고 술값이나 좀 주고 가소” C씨는 그렇게 술값으로 웃돈까지 더 건네주며 어렵사리 흥정을 끝냈다. 그 한 집 뿐 더 이상의 그 마을 치어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친구의 배려(?) 덕분에 C씨는 그 마을을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다다는 부모님이 지참금으로 내놓은 덕분에 시집을 갔다고 일생을 먹여줄 것까지 가지고 온 아다다를 남편은 끔찍히 위해주었다. 그러나 해가 가고 돈의 여유가 생기자 남편은 아다다를 미워하여 매를 들기 시작했고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아다다는 결국 친정으로 쫓겨오는 신세가 되었다. 아다다는 친어머니조차 곱게 보지 않는다. 궁리 끝에 아다다는 삼십이 넘은 총각 수롱이를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그의 오막살이로 향한다. 수롱이는 그렇게 찾아온 아다다와 같이 살게 되었고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마을을 떠나 신미도로 가서 안주한다. 농사만 짓고 살던 수롱이는 몽매에도 그리던 땅을 사기로 하고 그동안 모아둔 돈뭉치를 보여주며 그 계획을 아다다에게 알린다. 돈을 본 아다다는 돈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시집에서의 불행을 연상하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침 일찍 아다다는 지전뭉치를 들고 바닷가로 가서는 그 돈을 물결 위에 뿌려 버린다. 그리고 수롱이의 발길에 채여 돈뭉치와 함께 아다다는 바다로 갔다._계용묵 소설 백치 아다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머리 은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꽃가마에 미소짖는 말 못하는 아다아여! 차라리 모를 것을 젊은날의 그행복. 가슴에 못박고서 떠나버린 님그리워 별 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다다다여!
야속한 운명 아래 맑은 순정 보람없이 비둘기의 깨어진 꿈 풀잎 뽑아 입에 물고 보금자리 쫒겨가는 애처러운 아다다여! 산 넘어 바다 건너 행복 찾아 그 어디 갔나? 말 하라 바닷물결 보았는가? 갈매기 떼 간 곳이 어드메뇨? 대답 없는 아다다다여!_문주란 노래 백치 아다다_
돈 때문에 잠시나마 행복했지만 그 돈 때문에 끝나버린 행복을 그리며 오늘도 아다다는 저 바다에서 물비늘로 부서지며 항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