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지원연합센터장

요순시대의 허유(許由)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삼황오제(三皇五帝)와 요순(堯舜)시대가 전설처럼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태평성대로 알고 있는 요순(堯舜)시대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치세기간을 일컫는 말인데 지배자인 왕이 있어도 그 존재를 모르고 살았을 만큼 백성들이 편안했던 시기였다고 사기는 전한다.

요임금이 나이가 들어 왕위를 선양해야 할 때가 이르자 하루는 하남성 기산의 산기슭에 은거하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허유(許由)라는 현자를 불렀다.

부디 임금을 맡아 주시오. 그대만이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진정한 임금이 될 수 있을 것 같소.”

하지만 허유는 해나 달이 떠 있는데 관솔불을 밝히는 것은 헛된 것이며, 때가 되어 비가 오는데도 밭에다 물을 대고 있으면 그 노고 또한 헛된 것이 아니겠습니까?”라며 정중하게 거절을 한다.

왕께서 어진 정치를 편 덕에 백성이 편안하고 이미 세상이 좋아졌는데 부족한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은 백성을 위한다기 보다는 명예와 권력을 쫓게 되는 헛된 욕심이라는 뜻이었다.

왕의 간곡한 청을 거절한 허유가 냇가에서 귀를 씻고 있었다.

소를 몰고 가던 친구 소부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허유는 왕을 시켜 주겠다는 임금의 말을 듣고 욕심이 발동할까봐 들었던 귀를 씻어내고 있다.”고 답했다.

소부는 그런 귀를 씻어낸 물은 소에게도 먹일 수 없다며 소를 위쪽으로 끌고 가 물을 먹게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줄줄이 낙마한 국무총리 후보자

지난 2000, 정부 고위직 공무원 임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법이 도입된 이후 중도 사퇴하거나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한 국무총리 후보자가 6명에 이른다.

김대중 정부시절 첫 여성 총리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은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의혹 등으로 낙마했으며, 장대환 전 매일경제신문 사장 역시 부동산 투기의혹과 자녀의 강남 위장전입 등이 불거지면서 국회동의를 얻지 못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정운찬 총리후보의 낙마에 이어 전 경남 지사였던 김태환 총리후보자가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등에 휘말려 청문회 준비 도중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인사청문회법이 시행된 이후 낙마한 6명의 후보자 중 절반인 3명의 후보자가 낙마를 하면서 소통의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와 자녀 병역면제 의혹 등으로 인사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사퇴했던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필두로, 변호사 개업 후 5개월 만에 16억원의 수임료를 올린 것이 드러나면서 전관예우 논란 끝에 지명 6일 만에 자진 사퇴한 안대희 전 대법관과 특정 종교의 편향적 발언에 따른 친일논란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문창극 후보자가 낙마를 하는 등 박근혜정부 15개월 동안 3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를 했다.

결국 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역감정까지 가세했던 충청출신의 이완구 총리가 국회동의를 통과하긴 했지만 부동산 투기의혹과 부적절한 표현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언론관 등은 총리 취임 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그가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큰 과제로 남았다.

권력욕이 빚은 망신살?

국무총리 지명을 받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물러났던 후보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 변명을 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위장전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거나 자녀들의 이중국적과 병역면제 의혹 등도 윤리적인 문제일 뿐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제법 그럴 듯 하고 편리한 주장이다.

법을 어겨가며 농지를 구입한 것은 퇴임 후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서였으며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을 두고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 부동산 업자가 시켰다거나 당시엔 통상적인 것이었는데 자신은 잘 모르는 일이며 가족이 했다는 핑계를 대는 등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심지어 아픈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눈물로 국민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기도 하고 그래도 않되겠다 싶으면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식의 항변을 하기도 했다.

맞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물론이고 중산층이나 서민들 중에도 그렇게 부조리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항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돌출하지 말고 그런 사람들 틈에 섞여 그런 사람들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온갖 부조리로 얼룩져 있으면서도 부족한 자질은 생각지 않고 명예와 권력까지 쥐려 덤비다 보니 여론의 질타를 받고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자를 기다리며

불황으로 서민들의 주름살은 늘어만 가고 있는데 정작 국민의 충복이 되겠다며 표를 구했던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은 늘어낫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에게는 대권을 두고도 의연했던 요순시대의 허유나 퇴임 후 비가 새는 허름한 초가에 살았다는 조선시대의 황희정승 같은 존경받는 현자들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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