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희/ 해룡고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우리나라 많은 어르신들은 한참 자라나는 청소년기를 흔히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청소년기가 자아형성이 불완전한 격동의 시기라는 뜻일 것이다.

우선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조그마한 일에도 슬퍼지거나 또 우울해지며 아울러 갖가지 잡념에 휩싸이는 일도 많아진다. 또한 특별한 이유 없이 반항을 하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은 물론 분별없이 주변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더욱이 공부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면서 나라는 존재는 관연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생기기 마련인데 한마디로 혼란의 시기로서 온전한 성인이 되기 위해 누구나 질풍노도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한 학생들의 잇단 자살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실망을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를 비롯한 교육당국과 경찰 등 각계각층에서 온갖 대책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그런 대책만으로 과연 학교폭력이 근절될지는 의문이다.

사실 우리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현상에 대한 처벌위주의 방안, 또 보여주기식 1회성 캠페인이어서 더욱 그렇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현실적인 처방이 필요하지만 현 입시위주의 교육정책과 심각한 경쟁체제하에서는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이렇듯 청소년기가 불완전한 시기이고 이유 없는 반항도 많은 과정이라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나 선생님 등 어른들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보다는 학교나 또래 친구에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도 결국은 지금의 청소년들처럼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항상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아울러 그들의 처지를 폭넓고 깊이 있게 다루면서 심각하게 고민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자신이나 주변에 문제가 발생한 학생들은 대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투덜대거나 때로는 공부도 하기 싫다고 불만스럽게 애기할 때면 많은 부모들은 , 뭔소리 하느냐?”, “공부 좀 열심히 해라던가, 학교에 안 가면 어디서 뭣할래?”하면서 따지는 식으로 불만을 말할게 아니라 학교가기 싫으면 선생님에게 두려움을 느껴서인지? 상급생에게 폭행을 당해서인지? 아니면 동급생으로부터 왕따를 당했는지? 그리고 공부가 싫으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아가 의도적인 반항행위는 아닌지? 또 학교에서 어떤 사고를 쳤는지? 등 면밀히 분석해보고 평가한 다음 자상하고 애정 어린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선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녀에게 관심을 가진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어디까지나 재임기간 근면하고 성실하게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임무에 그칠 뿐 그 학생의 장래까지를 책임지는 몫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 날 학교에도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다고 말할라치면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바짝 다가가서 나도 너처럼 그럴 때가 있었어, 어쩌면 사춘기라서 그랬던 것 같애라며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받아주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 우리 아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보다 자세하게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갖가지 문제를 바로 파악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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