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 소설가

우리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소수의 작가 중 한 사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중편 선생과 황태자발표로 문단 주목 받아

1987년 제32회 현대문학상을 수상 등 48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현역소설가

소설가 송영(76)1940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혼돈스러운 성장기를 겪게 된다.

중학 졸업 후 중학 교장이던 부친의 근무처인 염산의 학교 관사에서 3년여 두문불출의 고독한 시절을 보내 체험은 등단작 <투계>의 밑거름이 된다.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뒤 해병대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했다가 훈련 중 탈영하고 7년여 동안 군무 이탈자로 떠돌면서 가정교사, 학원 강사, 여관 종업원, 임시직 교사 등을 전전한다.

1967년 단편 <투계><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며 등단하나 계속되는 떠돌이 생활로 작품 활동을 지속하지 못한다.

1969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군 수사대에 검거되어 군 교도소에 수감된다. <투계>를 읽은 군 법무관의 호의와 그 밖의 정상이 참작되어 몇 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는데, 1970년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중편 <선생과 황태자><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는 특히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중편 <북소리>, <중앙선 기차>1990년 중국 상해역문출판사의 <소설문예>에 번역 수록되었다. 2002년에는 <계절>이 독일어판 <현대한국단편선>에 번역 수록되었고, 2003년에는 단편 <계단에서>, 2009년에는 중편 <선생과 황태자>, 단편 <삼층집 이야기>가 미국 문학지 <Metamorphoses> 에 번역 수록되었다. 그 외에 단편 <친구>(미국 Cealsea), 단편 <계절>(THE LITERARY REVIEW)이 번역 수록되고 2007년 작품집 <Diary of a Vagabond-부랑일기>(미국 Codhill Press 출판사)가 번역 출간되었다. 단편 <님께서 오시는 날>은 한러 수교 기념 한국작품선 <네바>(상트페테르부르그)에 번역 수록된 바 있다. <부랑일기>PEN AMERICA에 소개되어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7년 제32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전쟁부터 70년대식 개발연대와 군사정권, 80년대의 민주화투쟁과 21세기의 새로운 문제의식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의 시각은 우리나라가 근대화의 진통 속에서 부대껴온 시대의 본질을 진솔하게 작가 자신의 실존적인 경험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가장 많이 읽힌 작가는 아니지만, 오랜 뒤에까지 우리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소수의 작가 중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해외에 가장 많이 소개되고 높이 평가되는 작가이다.

한편 선생은 고향 영광에 대한 많은 애착을 가지고 계신다. 선생의 출품작들을 영광신문을 통해 소개하고 싶다는 선생의 말처럼 하루라도 빨리 작품들을 보고 싶다 

 

 

 

바흐를 좋아하세요?음악은 내게 밥이다

송영 선생에게 밥과 음악은 동격이다. 소문난 클래식 애호가인 그는 음악 없는 세상을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2005년 여름, 모스크바에 갔을 때도 그가 묵었던 방에 미니 콤포넌트가 놓여 있었기에 3개월을 체류할 수 있었다. 그에게 방을 빌려주고 하기 휴가를 간 한국 유학생이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음악도여서 그는 바이올린 연주를 실컷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음악은 다른 무엇보다도 영혼의 구원자이자 복음이다. “스키파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 숨쉬기가 곤란한 지경이었다. 그 노래가 멎었을 때 호흡도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노래는 나로 하여금 미친 듯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탈리아 출신의 성악가 티토 스키파(18891965)를 처음 만난 곳은 청년시절, 종로의 음악다방 '르네상스', '라 쿰파르시타'가 흘러나고 있었다. 두번째는 청계천에 시커먼 하수가 넘쳐 흐르던 때, 개천가 허름한 식당의 선반 위 고물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기쁨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요즘 그는 스키파가 부르는 헨델의 라르고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음악을 듣는 즐거움과 음악과 우리의 삶이 어떤 상관 관계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고려인 출신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은 산책할 때나 집안에서 시간을 보낼 때에도 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러시아 민요나 어릴 때 배운 동요같은 노래를 그는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식용 버섯을 따러 그의 다차 주변의 야산으로 나갔는데 그는 계속해서 입으로 레비니슈카란 민요와 하늘은 참 넓다라는 민요를 버섯따기가 끝날 때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일주일간의 다차 생활을 끝내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송영은 당장 레비니슈카음반을 사들였다. 저자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소품들을 통해 러시아 농노들이 겪어온 지난한 고통을 닮은 침울한 정서와 운명적인 슬픔을, 그리그의 피아노 소품들을 통해서는 긴 겨울을 이겨내려는 북구인들 특유의 유머와 생명의 환희를 읽어낸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서양음악계에서 저평가되어온 코른골트의 부활을 예견하기도 하는데, 그의 음악에 대한 대중의 무지로 빚어진 오해와 망각으로 인해 그가 할리우드 작곡가로 매도돼 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아베마리아를 부르는 소녀와 통로 벽에 바짝 붙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소년을 통해 사회주의 몰락 후 러시아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곤경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하기도 한다.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음악에서 피안을 발견했듯 송영은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특별하고도 강렬하게 경험케 한다. “이십대 후반에야 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을 수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음악을 들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나는 무슨 이유로한동안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는데 밤에 어두운 공간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그 모음곡 6번의 선율이 처음부터 끝까지 환청으로 들렸다.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자, 나는 집보다 먼저 그 음악을 청해 들었다. 그리고 매일 그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해 먼 길을 걸어서 음악실을 찾아갔다.”

송영 선생은

지문과 대화의 구별을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마치 대화를 지문 그 자체로 표현하는 기법상의 특징을 보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실존의 세계를 탐구한 작가이다 

 

선생과 황태자

1970<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된 송영의 대표작. 작가 자신이 해병대 장교 교육을 받던 중 무단이탈, 7년간이나 사회의 밑바닥을 떠돌다가 군 감옥에 수감되었던 체험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상황의 덫에 치이게 된 내향적인 지식인이 절망감과 비관적인 세계 인식, 어둠에 물든 자의식과 좌절감에 시달린다. 특히 지식인에 대한 증오로 그를 노려보는 황태자는 현실적인 위협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생은 인간의 실존적 한계 상황에 대한 동류의식을 통해 회복된다. 그의 울음은 그를 둘러싼 모든 비참과 절망을 해소하는 원초적인 공감대에 가 닿고 있다. 

 

계절

어떤 엄격성을 갖고 따지자면 송영의 작품은 리얼리즘의 분위기에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편이다. 사실상 극도로 정밀한 의도와 계획을 갖고 설계한 가상 공간과 상황이라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연극무대를 마주하는 것 같다는 기분에 자주 젖어드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의도와 계획이 거의 드러내지 않고, 그냥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의 느낌을 거의 일차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이 묘사하는 상황이 어떤 압도적인 무게와 절박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 생활 속에 예고없이 끼어드는 어떤 의외성을 가졌다는 것, 작가의 주관적 내면이 여전히 그 상황을 낯설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작가의 대표작인 <선생과 황태자>의 전주곡(prelude)의 성격을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북소리

송영의 대표작 중 하나로, 묘하게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주인공과 여주인공 성애의 만남은 러브라인이라고 부르기도 쑥스러울 정도로 밋밋한 줄거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의외로 연극 <환타스틱>이 보여주는 것 같은 몽환적인 색깔이 풍겨난다. 이 작품은 또한 한국 문학에서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춘, 개인의 자아와 외부 세계의 해소 불가능한 갈등과 모순 때문에 고민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그린 실존주의적 분위기도 풍긴다.

하지만 연극적 분위기와 실존주의적 흐름 어느 것도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힘은 아니다.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뒤쳐져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있고, 그 시대의 흐름과 거기에서 소외된 인간군상의 불화를 신음하는 듯한 북소리가 있다. 예배당과 목사는 그러한 불화의 해소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가난뱅이"라는 성애의 단정이 의외로 현실과 괴리된 진단일 수 있다는 것을 엉뚱하게 끌려간 파출소에서 맞은 신선한 아침, 길거리를 가득 메운 여고생들의 교복 칼라의 눈부신 하얀색에서 발견한다.

인공이 과연 진정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논골의 소외와 낙후였을까? 주인공이 결국 발견한 것은 이제 북소리조차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논골이나 거기 사는 인간들의 처절한 목소리 따위는 손가락 하나 정도로 짓눌러버리는 근대화의 물결이 과연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는지, 이 작품은 미해결의 질문으로 남겨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앙선 기차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려 보여주는 상황은 명백하게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걸친 '대한민국 호'의 모습이다. 비좁아터진 객실에서 바늘끝만한 여유공간이라도 찾아 몸을 던져야 하는 조건에서 인간적인 예의나 염치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이 공간에서 삶의 조건의 우열은 실력이나 공정함이 아니라 누가 좀더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뻔뻔해질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힘들게 인내해가며 달리는 기차에서 자신이 내려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확실치 않고, 그곳에 설혹 도착한다 해도 기차 안에서와 본질적으로 다른 삶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인지 아무 보장도 없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나 인물 및 상황의 설정은 명백하게 상징성을 가지지만, 이 작품이 묘사하는 기차 안 인간군상의 모습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 서민들의 아름답지 못한 삶의 단면을 리얼하게 그려낸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 작품이 그려내는 현실은 추악하지만 진실한 묘사가 갖는 힘이 그 추악함을 뛰어넘는다 

 

송영(宋榮) 선생은...,

대한민국 소설가

영광읍 교촌리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졸업

1967년 창작과 비평에 투계로 등단

한러 수교 기념 한국작품선 <님께서 오시는 날>

<부랑일기> PEN AMERICA 번역상 수상

1987년 제32회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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