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라남도다문화가족지원센터연합회장

유럽의 흑사병, 페스트

1930년대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은 25백만 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 흑사병은 쥐벼룩이 옮기는 페스트 균에 의해 전염이 되는데 당시 이런 사실을 몰랐던 유럽인들은 그저 신의 저주로만 여겨 수도원에 모여 기도를 했으며 결국 슈퍼 진원지가 된 수도원의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흑사병을 배경으로 쓴 지오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흑사병 앞에 힘없이 무너져가는 인간들의 처절한 주검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은 사람, 죽은 후 집안에 며칠째 방치되어 있다가 이웃까지 악취가 풍긴 다음에야 겨우 발견된 시신, 교회와 묘지에는 시체가 넘쳐나고 마차에 짐짝처럼 실려 가다가 그대로 매장되는 시체들 등, 비참하게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처절한 상황이 묘사 되어있다.

유럽은 이 흑사병으로 중세 유럽의 3분의 1이 넘는 인구가 사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자 시체를 묻을 사람조차 없어 도시 곳곳에는 시체들이 나뒹굴었지만 죽음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이 역병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발병의 원인이나 전염 매개체, 치료법 등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가자 사람들의 마음속엔 극도의 공포와 병자에 대한 혐오감만 만연했다.

사람들의 삶 그 자체를 파괴하면서 형이 아우를 내다 버리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심지어 자식들을 내다 버리는 부모들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발병 후 5일여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사망하게 되는 흑사병의 원인에 대해 알 수 없었던 의료진들도 환자들을 돌봐주다 병이 옮아 무덤까지 따라가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조선의 괴질(怪疾) 콜레라

1817~1824, 인도에서 대 유행을 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된 콜레라는 중국의 동북부를 거쳐 1821(순조 21) 9월에 조선의 평안도 지역에서도 크게 유행을 하였다.

질병의 내용을 몰라 괴질이라 불렸던 콜레라는 10여 일 동안 1,000여 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이 후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가 수십만에 이른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는데 일설에는 조선 인구의 10분의 1100만명이 콜레라로 인해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라는 원인균이 인체 내에 침입하여 발병을 하는 병으로 치사율이 80%에 가까운 치명적인 전염병인데 다행히 1883년 로버트 코흐가 콜레라균을 발견함에 따라 상수원의 염소소독과 콜레라 예방접종 등이 개발되면서 수그러들긴 했지만 지금도 보건후진국에서는 여전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죽음의 바이러스 에볼라

죽음의 바이러스로 불리며 지난 해 2월부터 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번지기 시작한 에볼라는 서아프리카 4개국에서만 15,000여명의 감염자와 5,000여명의 사망자를 내며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왔다.

1967년 독일 미생물학자 마르부르크가 콩고 민주공화국의 에볼라 강에서 발견한 이 바이러스는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아직 없다.

최고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만큼 공포에 사로잡힌 서아프리카 주민들이 외부세계와 단절이 되는 등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질병이 중세기 유럽을 초토화 시켰던 흑사병의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메르스가 강타한 대한민국

중동 호흡기 증후군으로 알려진 '메르스'가 예상을 뛰어넘는 전파력을 보이면서 진원지로 알려진 병원들이 폐쇄되고 접촉자들의 격리와 함께 일부 학교가 휴교를 하는 등 많은 국민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메르스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명확한 감염원과 감염경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중동 지역에서 낙타와의 접촉을 통해 감염이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공기가 아닌 사람 간 밀접한 접촉에 의한 전파 가능성이 많다고 학계에 보고되었다.

의료 선진국으로 위생과 보건 환경에 자부를 하고 있는 의료선진국 한국의 국민들이 왜 이런 후진국형 전염병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지 세월호 침몰사건의 되풀이인양 메르스 앞에서도 우왕좌왕했던 정부의 안전 불감증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국민 힘내세요.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세상이 곧 망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사치와 향락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메르스 확산에 따른 작금의 우리나라도 사람간의 오인과 불신에 따른 갈등은 물론 경제적인 피해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2만명의 외국 관광객이 한국행을 취소하였는가 하면 음식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휴업을 하는 등 메르스 공포로 인한 파장이 도를 넘고 있다.

형이 아우를 내다 버리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흑사병의 경우까지는 아닐지라도 메르스가 완치되어 퇴원했던 사람들에게 평소 가까이 지냈던 이웃마저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천시에 사는 한 자매가 용돈을 모아 메르스로 격리된 체 환자들을 돌보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 병원 의료진들에게 선물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전달된 작은 상자 안에는 치약, 칫솔, 양말, 초코파이 등과 과자, 물티슈가 담겨 있었고, 물품 위엔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께. 더운 여름에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본다는 게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께 용돈을 모아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무서운 메르스와 싸워주셔서 감사해요."

우리가 메르스 공포로 서로를 탓하며 불신을 키워가는 동안 어린 동심들은 이 나라의 파이팅을 기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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