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학/ 새암푸드먼트 본부장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 포위를 당하고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원병을 기대 할 수 없는 지경에 결국 항복을 하고 맙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게 조선의 인조가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에게 삼베구고두를 하듯 칼레를 살려 달라고 용서 아닌 용서를 구하는 사절단을 파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칼레의 누군가가 반항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점령자로서 폭압적인 행태를 보입니다.

결국 칼레시는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고 누가 칼레시를 위해 희생 할 것인가를 논의 하게 되는데, 모두가 꼬리를 내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의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생 피에르가 처형을 자청 합니다.

이에 그동안 꼬리를 내리고 있던 칼레시장, 상인, 법률가 등 그동안 권력과 자본의 정점에 있던 귀족들도 처형의 동참에 선언을 하고 교수대 앞에 모입니다.

이러한 광경에 영국왕 에드워드3세의 부인인 왕비가 감복을 하고 임신한 몸으로 왕에게 간청을 하여 이들을 살려주게 되며, 이 이야기는 역사에 기록이 되고 높은 신분의 권력자와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즈의 상징이 됩니다.

로마역시 전쟁이 터지거나 외국의 침략이 있을시 귀족과 원로원 의원은 솔선수범하여 자식을 비롯한 자신들이 로마를 지키려 전쟁에 참여하여 사회적, 국가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관례로서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을 한다라는 노브레스 오블리즈 실천에 대한 자부심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마오쩌뚱 또한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큰아들인 모안영을 참전시켜 전사하게 되는데 마오쩌뚱은 다른 인민의 자식들은 다 전장에 보내면서 자신의 아들만은 예외가 없다는 말을 하였고 아직도 북한묘역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도 예전에는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가 나라가 망하자 모든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망명을 하고 전재산을 독립군 양성과 국권회복을 위하여 아낌없이 바치는 노블레스 오블리즈의 대표적인 귀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외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스의 기록은 역사적으로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경주의 최부자댁은 사방백리에 굶어 죽는자가 없게 하라는 가문의 유지를 지키며, 고구려의 고국원왕도 백제의 평양성 침공 당시 장렬하게 전사하며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마다하지 않으며,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매천 황헌과 민영환 등 사회지도층은 순절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즈 의 DNA 가 과연 요즘의 한국의 사회 지도층이나 권력자에게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지요?

우리는 고위공직자의 위장전입, 땅투기, 군미필 등의 사유를 적잖이 볼 수 있으며 특히 군대를 가지 않는 비율은 일반국민보다 현저하게 높은 실정입니다.

그리고 고위층 자녀들의 특채와 대기업에서 직장 대물림 등, 이른바 물좋은곳에 집중 배치가 되어 빽없는 국민의 설움과 공분을 자아내게 하는 보도를 접하고 있으면 우리사회 고위층과 사회곳곳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즈는 먼나라 이야기이며 꼴리면 출세를 하라라고 비아냥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세청의 기획세무조사만 봐도 그렇습니다.

때마다 이름을 올리는 다양한 사회계층의 지도급 위치의 직종에 있는 사람들의 세금을 빼먹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정잡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약방의 감초격이 아니라 어느 땐 이러한 집단을 겨냥한 기획조사가 있을 정도로 사회지도층의 급들은 탈세를 밥 먹듯 하는 집단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마저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지도층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지도층을 포함하여 재산이 많은 사람들, 여러 특권을 누리는 계층에게 요구되는 솔선과 헌신, 나눔과 베풂 그리고 희생이라는 여러 덕목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즈의 정신이고 철학입니다.

어려운 세상, 이질적인 계층 사이에서 야기되는 대립과 갈등, 반복을 통합하고 함께 소통하며 살아간다는 참다운 사회의 실천은 좀 더 사회적으로 그 이름값을 하고, 그 위치에 있고 많은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주요도시의 골목상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전통의 재래시장을 배려할 수 있는 자본주의가 되어야 하고, 대기업형 한식프렌차이즈가 한정식을 석권하는 바람에 식당들이 우후죽순으로 문닫아야 하는 이런 싹쓸이 경제구조를 상생구조가 되어야 하며, 경제적 가치를 조금은 공유 할 수 있는 배려심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외면해도 너무 외면 하였고 사회적 강자의 책임은 한없이 추락된 사회에서 삐걱 거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나만 아니 우리가족만 잘살고 잘먹고 잘놀고 하는 사회가 얼마나 건강 하게 지탱 할 수 있을까요?

외국에서 노블레수 오블리즈를 몸소 실현 하는것은 이런 사회가 바로 건강하게 지탱이 되고 사회 지도층과 부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고 국가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으니 앞과 위만보고 달려온 지금까지의 패턴에서 조금더 유연하게 옆을 볼수 있고 아래를 볼 수 있는 DNA 로 개선이 되어 도덕적인 가치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새기고 따스한 사회, 책임을 지고 희생을 할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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