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전통마을 ‘창평슬로시티’를 방문하다

농어촌이 인간의 참다운 행복의 터전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저소득과 중노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바탕위에 마을공동체의 다양한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 마을공동체는 주민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며, 상호 대등한 관계속에서 마을에 관한 일을 주민이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민 자율공동체이다. 영광 묘량의 여민동락과 같이 전국적으로 대안적 삶을 꿈꾸는 다양한 형태의 마을공동체들이 운영되면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광에서도 또 다른 여민동락을 희망한다. <편집자주>

 

조화로운 삶의 리듬슬로시티란?

세계 30개국 208개 도시, 국내 담양 창평 등 11개 마을

슬로시티(Slow City)는 속도 지향 사회에 반대해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전통생활방식으로 느리게 사는 삶을 지향한다. 2002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의 파울로 사투르니니 시장이 패스트푸드 상징인 맥도날드 상륙에 반발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하면서 슬로시티가 유럽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현재 지구촌 슬로시티는 30개국 208개 마을.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로 2007년 지정된 전남 담양의 창평 삼지내마을을 비롯해 11곳이 슬로시티다.

회색 빌딩 숲속 바쁜 일상의 현대인에게 힐링의 공간으로 떠오른 슬로시티(Slow City). ‘느림의 정점으로 불려지고 있는 슬로시티의 기원과 철학을 살펴봤다.

한국슬로시티본부에 따르면 슬로시티는 199910월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 전 시장을 비롯한 몇몇 시장들의 구상에서 탄생됐다.

달콤한 미래를 염려하던 이들은 '치따슬로(cittaslow·슬로시티)' 즉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Slow movement)를 주 내용으로 하는 슬로시티 운동을 출범시켰다.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속도가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슬로시티 프로젝트는 서서히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시작했고 1999년 국제슬로시티운동이 출범된 이래 30개국 208개 도시(20156월 말 현재)로 확대됐다. 국내에서는 담양군 창평 삼지내마을 등 11개 시군이 가입돼 있다.

슬로시티가 지향하는 철학은 성장에서 성숙’ ‘삶의 양에서 삶의 질로’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느림의 기술(Slowware)은 느림(Slow)·작음(Small)·지속성(Sustainable)에 두고 있다.

슬로시티운동은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섬기는 속도 숭배느림 숭배로 대체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달콤한 인생과 정보화 시대의 역동성을 조화시키고 이 가운데 중도를 찾기 위한 처방이라는 게 한국슬로시티본부의 설명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아니라 빠름과 느림·농촌과 도시·로컬과 글로벌·아날로그와 디지털간의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자는 것.

슬로시티 선언문의 끝은 자리로운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 향토 음식의 맛과 영양, 의식의 자발성을 존경하고 여전히 느림을 알려 전통을 존경하는 고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007년 아시아 최초 삼지내마을지정

500년 역사 넘는 담양 창평 고씨 집성촌

담양군 창평면 삼지내마을은 역사가 500년이 넘는 창평 고씨의 집성촌이다. 돌담길을 따라 작은 개울이 흐르고 한옥 20여 채가 고즈넉한 풍경화를 그려내는 곳으로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삼지내마을을 제대로 보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 마을 입구부터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봐야 하는데 자동차로는 갈 수 없다. 차는 방문자 센터나 인근 도로변에 놓고 걸어야 한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조그만 개울이다. 논두렁 옆 개울에는 유리처럼 투명한 물이 ~~~’ 경쾌한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흐른다. 물길을 거슬러 가면 수로는 마을 안 돌담을 따라 유연하게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삼지내’(三支川)란 이름도 물길 세 개가 마을을 지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고즈넉한 고택과 아늑한 돌담이 있는 마을의 모습은 포근하다. 마을을 휘감은 담은 돌과 흙을 번갈아 쌓고 맨 위에 기와를 얹은 토석담이 대부분이다. 집과 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총길이가 3.6에 이르는 마을의 담은 등록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다.

삼지내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냈던 고경명 장군의 후손이 모여 살던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고정주·고재선·고재환·고재욱 가옥을 비롯해 1900년대 초 건축된 한옥 20여 채가 남아 있다. 특히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인 고정주 가옥은 실제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고택 중 하나다. 한국의 전통적인 양반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곡간, 사당, 문간채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솟을대문의 지붕은 깨져 나가고 벽도 허물어져 안타깝다. 다른 고택은 훼손을 막기 위해 빗장을 걸어둬 대문 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고택을 자세히 둘러볼 수는 없지만 삼지내마을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건네는 주민을 만날 수 있다.

돌탑을 사랑하는 집’, ‘부지런한 집’, ‘지혜가 담긴 집등 집마다 달린 유쾌한 문패가 눈길을 끈다. 돌탑을 사랑하는 집에 돌탑이 있는 걸 보면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주민이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또 수의 바느질, 야생화 효소, 산야초 효소, 종부의 다실, 약초밥상 등 형형색색의 문패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제 약초밥상은 자연에서 채취한 백야초, 곤드레, 산초, 쑥부쟁이, 민들레, 방풍 등을 효소와 간장을 이용해 만든 장아찌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약초밥상은 마을을 대표하는 슬로푸드다. 또 쌀엿을 만드는 곳도 지천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하룻밤을 묵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고즈넉한 정취의 한옥 민박집도 여럿 있다. 삼지내마을은 시골을 잃어버린 도시인에게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고 추억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슬로시티 가치, 세계가 인증

국제슬로시티연맹 재인증 통과

담양 창평슬로시티가 세계적으로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았다.

담양군은 2013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이 5년 마다 시행하는 슬로시티 재인증 평가에서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중 하나인 창평슬로시티가 최종적으로 재인증을 받았다.

2007121일 슬로시티에 가입한 이후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그대로 녹아있는 3600m에 달하는 옛 담장을 중심으로 전통 한옥과 슬로푸드 등 고유한 전통문화와 먹을거리를 토대로 지역의 관광자원을 집중 육성해 왔다.

창평슬로시티가 재인증을 받게 된 것은 '담양 창평다움'을 모토로 명품 슬로시티로 가꿔 나가기 위해 5년간 56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재정적 지원과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주민 스스로가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인 점이 호평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주민협의체를 바탕으로 자생력을 갖추고 '잘 살아 보겠다'는 역량강화 프로그램과 전통문화 발굴·보존, 슬로푸드 개발·보급을 통해 슬로시티 본연의 가치를 유지해 왔던 점을 가장 큰 이유로 주민과 행정기관은 꼽고 있다.

군에서는 슬로시티 지정 이후 주민들에게 슬로라이프를 뿌리내리기 위해 초등학교, 청소년,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동아리와 취미활동, 주민 아카데미 등에 주력해 왔다. 또 달팽이시장과 달팽이학당, 고택을 활용한 문화사랑방, 돌담 가꾸기와 환경 정비 등 주민협의체와 협력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노력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약초밥상, 새우밥상, 오방엿, 한과, 효소식품 등 다양한 전통 슬로푸드 개발 등으로 주민 소득 증대와 마을의 자생력을 키워온 점도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좀 더 느리게 살아가 보자'는 말처럼 돌담길과 연계된 포장도로를 옛 그대로의 흙길로 만드는데 주민들의 협조를 이끌어 낸 점도 슬로시티 가치와 이념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창평의 이색 슬로푸드 55오방엿

전통 쌀엿과 백년초·댓잎·단호박·초콜릿 등

느림의 미학슬로시티 담양군 창평면의 대표 슬로푸드이자 담양 10인 쌀엿.

친환경적으로 재배되는 겉보리와 쌀 등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해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담양 창평의 쌀엿은 고두밥 짓고, 엿기름과 식혜로 발효시키고, 갱엿을 당겨 늘이는 것까지 모든 것이 100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특히 화롯불 위에 젖은 수건을 올려놓고 밤새 방문을 여닫아 가며 찬바람을 쐬며 갱엿을 늘여 만들어야 바삭바삭하고 담백한 맛이 깊어지는 쌀엿의 특성상 겨울철에 먹어야 쌀엿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전통적인 흰 쌀엿에 백년초와 댓잎, 단호박, 초콜릿을 섞어 핑크색과 초록색, 노란색, 갈색 빛의 쌀엿을 만들었다. 먹는 재미에 보는 재미 까지 더해졌다.

오방엿을 선보인 강순임씨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쌀엿을 고민하다 다양한 맛이 나는 쌀엿을 만들다보니 색감까지 더해져 오방엿이 탄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담양 창평에서는 담양을 찾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슬로시티 방문자센터에서 전통 방식으로 쌀엿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만나보왔습니다.

이인한 사무장

작고 낮고 느린 사람 사는 오래된 마을

슬로시티는 한마디로 빠르게 사는 삶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평면, 특히 삼지내마을은 슬로시티로는 제격인 셈이다. 슬로푸드 전통 먹거리, 주말 달팽이 전통시장 등 슬로컬처 전통문화 체험의 장이 마련된 전형적인 근교형 슬로시티이다.

삼지내마을 돌담길에 접어들면 기대했던 대로 운치 있는 맵시를 뽐내는 고택과 한옥들이 즐비하다. 500년 전통의 창평고씨 집성촌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는 곳이다. 그 고건축물들은 다른 지역처럼 박제화되지 않았다. 마을 주민이 살고 있고, 그래서 집도 살아 있다. 오래된 집들은 저마다 생활공방, 효소체험장, 약초밥상식당 등을 운영한다. 삼지내마을 안에서 자생적이고 자립적인 마을 고유의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생생한 생활 현장을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삼지내마을 주민들은 마을학교도 꾸리고 있다. 각자 스스로 공부해서 체득한 슬로라이프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전수하는 달팽이학당이다. 마을 주민들이 교사가 되어 생활공방, 수의 바느질, 야생화효소 등의 지식과 정보를 방문객, 체험객들과 기꺼이 나눈다.

창평슬로시티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외정부, 지자체의 적지 않은 예산이 사업비로 투입됐다. 슬로시티라는 게 기존 농촌지역개발사업과 근본적으로 목적과 가치를 달리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관의 재정적 지원이 수반되다 보면 전적으로 주민 주도로 진행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런 안타까운 현실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슬로시티를 유치하려 애쓰는 지자체마다 이를 지역의 소득과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관광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느리게 살자가 아니라 슬로시티를 통해 더 빠르게 살아 보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삼지내마을은 느리게 가더라도 주민들이 모두 함께할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창평고씨 집성촌을 지키고, 약초밥상과 달팽이학당을 지키는 일이다. 그렇게 개발하는 듯 마는 듯 느리게 해야 작고 낮고 느린 사람 사는 오래된 미래 마을을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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