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기차도 전기도 없었다.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 그래도 소년은 마을 아이들과 함께 마냥 즐겁기만 했다....”
작가 오영수의 단편소설 <요람기>의 첫 대목이다.
정말 그랬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텔레비젼이나 일체의 가전제품은 상상조차도 못하는 시절이었지만, 봄이면 들불놀이, 여름이면 개울가나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고 멱을 감으며 갯벌에서 뒹굴고, 가을엔 콩서리, 겨울엔 썰매 타기나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의 여러가지 놀이를 하며 무한히 펼쳐진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어쩌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한 번쯤 그렇게 해보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련한 옛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런 자연환경이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게 무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여러가지 분야에서 많은 것을 섭렵하고 알게 되었다. 이는 필자 뿐만이 아니라 50이 넘게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문적인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일반적 분야에 대해서는, 학력의 높낮이나 지위의 고하(高下), 경제적 차별 등등 이런 모든 것들과 상관 없이 모든 면에서의 생활 패턴이나 삶의 방식, 대인관계 기타 등등의 사회적 위상이 거의 평준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생활이, 문명의 발달과 변화가 우리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이는 온갖 미디어의 발달과 획기적으로 첨단화 된 통신기술, 그리고 광속화(光速化)를 향해 가는 교통 수단의 눈부신 발전의 결과물이리라.
그런데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고, 그런 과정 속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깨달음을 알게되어 확고한 자기 철학을 정립해간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 자신을 더욱 깊숙한 나만의 감옥에 가두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그 알게 됨 만큼 많은 것을 잃게된다. 우리는 이미 어른이 되면서부터 수평선 저 너머에 대한 동경을 잃었고. 정월 보름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방패연을 띄워보내며 하늘끝 저 멀리로 사라져가는 한점 방패연에 실어보내던 꿈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보고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잃었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고 그 답이 오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기다림의 미학도 이미 내버린지 오래다.
파란 하늘 아득히 흰구름 흘러가는 산 너머에 누가 살고 있을지? 지구촌 저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무얼 먹고 사는지? 다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굳이 해외 여행을 가지 않아도 우리는 안방에서 이미 전 세계를 구석구석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과학은 우주까지 우리의 안방으로 끌어들일 정도로 확장되어가고 있는 실정이고 보니 우리의 상상력은 이제 내 무의식의 뒷골 가장 후미진 곳에서 영원히 잠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매개에 의한 이런 현상 정도야 그리 허무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섭렵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정립된 자의식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싶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거 다 그렇고 그렇지 별 차이 있겠는가?”
생각이 이쯤 되다보니 자연과 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어떤 대상물이나 현상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력을 상실했고,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타인에 대한 신비감, 기대감, 애정, 믿음...그 무었 하나 그리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묻는다.
“너는 누구냐?” 내가 내 자신을 향해 물어보지만 나는 나인데 어떤 나인지? 내가 누구인지? 나의 존재는 무었인지? 지금의 내가 진짜 나라면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지...? 도무지 명쾌하게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직까지 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는 아무래도 헛세상을 산 것 같다.
농부로 치자면 하농작초(下農作草)인 셈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농부에 대해서도 구분을 두었다.
농사를 짓긴 짓되 게을러서 애꿎은 땅에 잡초만 잔뜩 길러내는 농부를 일컬어 하농작초(下農作草)라 했고, 반면 소출을 많이 내려고 부지런히 곡식을 매만지는 농부를 지칭하여 중농작곡(中農作穀), 가장 좋은 농사꾼인 상농은 곡식이 아니라 흙을 보살피는 농사꾼이어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로 상농작토(上農作土)라 하였다. 그런데 농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하나 더 남아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상중하를 가르는 것을 넘어 성스러운 경지라 하여 '성농(聖農)'이라 불렀다. 이는 성농작인(聖農作人)으로, 잡초를 기르는 농부, 곡식을 기르는 농부, 땅을 돌보는 농부를 넘어 사람을 기르는 농부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농은 바른 먹거리로 인간을 구하는 농부에게 주는 명예로운 이름이었다.
농부로 치자면 중농 수준에도 못미치는 내 자신을 돌아보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래서 잠못드는 초겨울 저녁에 가당찮은 욕심을 부려본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나는 성농을 뛰어넘어 선농작심(仙農作心)으로 마음공부를 해야겠노라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내가 버렸던 나의 소중한 것들을, 그렇게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