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

부모들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잘못된 사랑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치중하는 사랑, 머리로 계산해서 하는 사랑, 지혜가 없이 맹목적으로 하는 사랑, 자신의 욕구만 중시하는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진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사랑이고, 엄격히 말하면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인가? 집착이라는 것은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소유나 존재냐’,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여, 자식을 사랑한다면 소유하려말고 있는 그대로 놓고 보라고 한다. 자식의 장래를 부모가 재단하지 말고 자식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도와주라는 말이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마음속에서 항상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갖는데서 사랑은 시작된다.

자식이 큰 사람 되게 하려면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부모들이 맹모삼천을 거울삼아 좋은 학교 보낸다며, 서울로 대도시로 강남으로 학교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성공률보다 성공하지 못하는 비율도 높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부모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하는가? 바로 사랑을 나누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 맺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사랑을 나눌 줄 아는 것이 인간관계를 성공으로 만들고, 좋은 인간관계는 가장 중요한 성공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나눌 줄 알기 위해서는 사랑을 알고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을 알고 사랑을 할 때와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할 때는 상대를 보는 시각, 상대를 수용하는 마음의 넓이가 확연히 달라진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하게 되면 큰 호수나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마음이 되어 모든 것,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수용하고 포용하지만, 모르고 할 때는 좁고 얕은 마음이 되어 눈앞의 단기적 이익에만 급급한 인간이 된다.

그러면 사랑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진정한 사랑이 나오지 않는다. 거짓 사랑이고 형식적 사랑인 집착이 나온다.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또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보지 않겠다거나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이 경우에도 진정한 사랑은 없다. 이기주의가 위장한 거짓 사랑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본다. 그리고 갖고 있는 마음보의 수준에서 판단을 한다.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다면 낮은 수준의 마음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업그레이드는 상대가 누구이든, 좋은 사람이든 미운 사람이든 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 즉 고운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일까? 자녀의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어떤 능력을 키워줘야 도움이 될까? 질문은 여러 개 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질문이다. 무엇이 성공자산이고 어떻게 만들도록 해 줄 것이냐는 것이다. 답은 사랑이다. 자식이 사람들과 사랑을 잘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을 사랑하며 몰입할 수 있도록, 자연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늘과도 교감을 할 수 있도록 자식의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 채워지고, 공감능력이 커지도록 심전心田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다.

사랑에도 재료가 있는가? 관심과 끈기 있는 정성이 사랑의 재료이다. 만나는 사람, 해야 할 일, 넘어야 하는 애로 마다 깊은 관심을 갖고 궁리해서 끈기 있게 정성을 다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일이 잘 추진되며, 애로도 극복된다. 공부도 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집착을 사랑이라고 보는 오해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자녀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존중할 때 자식도 부모를 존중하고, 부모가 사람들과 나누고 상생하면 자식도 사람들과 상생한다. 크게 자랄 나무를 작은 화분에 넣고 키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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