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중요한 문제를 무심하게 간과하고 있다. 바로 분노의 문제이다.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신체와 마음과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은 마음을 잘 써야 격이 높아진다. 고운 마음을 갖고 항상 사람들을 위하려고 하면, 즉 마음을 잘 쓰면 정신역량이 높아지고, 정신역량이 높아지면 예감, 육감, 직감력 등 예지력도 커진다.
마음을 잘 쓰지 못하게 만드는 큰 요인은 무엇일까?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1996년 화병을 한국인의 독특한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정의했을 만큼 한국인은 화를 잘 낸다. 화병도 많이 갖고 산다.
화(火)란 무엇인가?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이다. 왜 화가 나고 분노가 생기는가? 몇 가지 요인이 있다.
(1)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시, 모욕,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생각되면 화가 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무시나 모욕당할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 화가 나는 빈도도 많아지고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더 빨리 직접적으로 발생한다. 사회적으로 존중과 인정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모욕과 좌절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기에 심각하다.
(2)마음속에 불필요한 나쁜 정보가 많이 들어있으면 조그마한 충격에도 못 참고 쉽게 폭발한다. (3)나만의 규칙인 선입견을 갖고 있으면 화를 많이 낸다. 선입견은 사안을 편파적으로 보게 만드는 요인이다.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내가 부정적으로 갖고 있는 선입견에 해당하면 바로 상대를 공격하는 요격장치가 발동되는데, 그것이 바로 화이다.
화가 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참으면서 화를 삭여야 한다. 거울을 보거나 명상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연민을 갖고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화를 내고 있는가? 내 안의 다른 누가 화를 내고 있는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상대가 나를 무시하거나 모욕할 때 상대를 미워하지 말고 시각을 바꿔 측은지심으로 상대를 본다. 무시당했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면 마음속에서 화가 나면서 나도 공격하려고 한다. 상대를 불쌍하고 측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측은한 사람이 욕한다고 해서 같이 화낼 수가 없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게 된다.
(3)마음속에 사랑을 많이 가져 정신적인 품격이 높아지면 화를 내지 않게 된다. 사랑을 많이 갖고 있으면 포용력이 커져 어떤 상대라도 쉽게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상대를 이해하여 상황에 순종하고 현실 순응하면 분노가 사라진다. 상대의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화가 올라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상대가 화를 내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분노한 사람을 맞상대하면 그 사람의 분노에너지가 나에게 전이된다. 분노에너지가 전이되면 나도 나빠진다.
(2)상대를 달래고 분노를 삭이도록 상대의 아픔을 받아준다. 분노한 원인과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해주면 분노가 사라진다. (3)화를 내는 사람에게 연민을 갖는다. 내가 연민을 갖고 있으면 상대를 달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사회적으로도 분노를 줄이려는 범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존중 받을 때 긍정적 자아가 형성되고, 무시나 모욕을 당하면 부정적 자아가 형성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라면 긍정심리를 가진 사람이 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란 사람은 부정적 심리의 사람이 되는 경향이 크다.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인정과 존중을 받는 긍정적 자아는 특히 중요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듯이, 유아기 때의 긍정적인 심리는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를 밝게 하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 된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줄줄도 안다. 경쟁이 강조되면 사람들 간에 존중이 부족해지고 좌절과 분노, 갈등이 악순환으로 반복되고 축적된다. 이를 긍정의 선순환으로 바꾸려면 사랑의 실천 밖에 없다. 대대적인 사랑실천운동, 인성진흥운동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