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귀거래사(歸去來辭)-도연명

“자 돌아가자. 고향 산천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으랴?...

진(晋)나라 말기 도연명이 평택 현령으로 있을 때, 군(郡)의 감찰관이 온다는 소식에 “내가 쥐꼬리만 한 봉록 때문에 그런 향리(鄕里)의 소아(小兒) 앞에서 허리를 굽혀야 한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며 「귀거래사」를 노래하고는 임명된 지 고작 80여 일 만에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난세에 태어나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정신을 지키려 했던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시에는 술을 노래한 내용이 많고 초월의 경지를 동경한 시도 많다. 그러나 그 사상의 밑바탕에는 농민에 대한 사랑과 노동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무렵의 어두운 세상을 한탄하는 시도 있다. 그저 자연을 노래하기만 한 시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어찌 쌀 다섯말(당시 도연명의 한 달 월급이 쌀 다섯말정도였음)에 허세만 부리는 미관말직 소인배들에게 허리를 굽힐소냐?”

지극히 순리적이고 자연주의적이며 인간 본성을 사랑했던 사람, 그는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나 현실 부정만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처럼 막연한 형이상학만을 추구하지 않았고, 현실을 등안시 하지 않았으며, 노동의 고단함을 중요시 하고 즐겼을 뿐 아니라, 항상 긍정적 사고로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자 한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그래서 그의 귀거래사는 결코 현실 도피이거나, 가진자의 여유로움을 토대로 한 안식의 추구가 아닌 것이다.


귀농(歸農)-K씨
K씨는 아직 40대 젊은 나이, 복잡한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낀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시에서의 삶이 버겁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기대할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고향인 영광으로 귀농을 결심하고 내려온 지 몇년이 되었다. 그는 귀농을 하자마자 얼마 안된 자본을 투자하여 조그마한 농장(표교버섯)을 차렸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서 노력한 결과 이제는 영광의 햇살과 칠산바다에서 불어오는 미네랄 풍부한 바람을 먹고 자란 질 좋고 영양가 높은 표교버섯 덕분에 제법 짭잘한 수입원이 되었고 경제적 기반도 안정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그동안 귀농생활을 하면서 얻은 또 하나 소중한 것은 이웃들과 서로 품앗이도 하고 새참도 나눠먹으며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개똥철학(진짜 철학)도 논할 뿐만 아니라, 하루분의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산 너머로 물드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내일 새벽의 여명을 그려보는 여유로움과 행복감에 젖을 수 있음이다.

귀촌(歸村)-J씨
J씨는 영광이 고향은 아니다. 어찌어찌 해서 영광을 알게 되었고, 그 연줄로 해서 염산면 어느 마을에 조그마한 집과 옆에 달린 약 200평 정도의 땅까지 매입을 했다. 그가 산 집은 마당 앞으로 농업용 저수지의 제법 큰 수로가 지나가는데 낚시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딱 좋은 집이 아닐 수 없다. 가족들과 경제적 소득원을 서울에 두고 있는 그는 혼자 내려와 있으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족을 만나러 서울에 다녀오기도 한다. 어떤 날은 그를 만나러 온 그의 지인들이 왁자지껄 술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런 날은 으례히 밤 늦도록 그 집에서 음악과 섹소폰 소리, 노래 반주기 소리와 함께 흥에 겨운 노래 소리가 흘러나기도 했다. 행정기관에서는 그의 집 앞으로 지나는 수로 정비 사업을 하면서 산으로부터 그 수로까지 흘러들어오는 도랑 까지도 U 자 관으로 깔끔하게 정비를 했다. 그러고 나자 J씨는 기관에 요청하여 그 수로관 위에 뚜껑을 씌워 달라고 요청했고. 주무 부서에서는 그 도랑이 원래부터 있기는 했지만 등기부등본 상 그의 소유로 되어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산을 더 투입해서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U자 관 위로 뚜껑까지 씌어서 마무리 된 그 위에 이번엔 그가 복토를 하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도랑로 무용지물이었던 땅이 자기 소유의 완벽한 땅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관 위에 복토를 만류를 했다.
장마철이 되면 토사가 쌓여서 도랑이 막히고 그럴 경우 물이 큰 수로까지 흘러들어가지 못한 채 주변이 침수가 되니 복토까지 해버리면 막혀버린 수로관을 다시 뚫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당신 땅부터 침수가 될텐데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그건 그때 가서 행정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난 상관할 바 아니오, 난 그저 내 땅이니 내 맘대로 하겠소, 문제가 된다면 법대로 처리하시오.” 빈집만 늘어나는 유령촌,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무아촌, 노인들만 모여사는 노인촌, 그런 농촌마을의 현실이고 보니 누구든 마을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면 반가웠고 주민 모두가 환영을 해주었는데.....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게 자연의 순리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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