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 서정주의 작품 "무등을 보며" 첫구절이다.

실제로 가난한 시인이라면 이 얼마나 서글픈 자기 위안이며 구차한 합리화인가? 그런데 이미 부와 명예를 얻은 시인에게서라면 이는 엄청난 위선이고 거짖이며 말장난이다.

시인은 언제나 배가 고플 수 밖에 없고 배가 고파야만 한다. 힘이 없고, 돈이 없고 배경조차 없어서 소외 받고 무시 당하는 사람들, 열심히 살면 살수록 상처만 깊어지는 계층들...그런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웃어주고 같은 마음으로 울어야 하는 일이 시인으로서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학문이 아니다. 취미는 더욱 아니다.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을 추구하기위한 학문적 가치로서의 철학과 시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철학이 논리적이고 교훈적인 것이라면, 시는 실천적이고 사실적인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철학자는 연구실 책상에 앉아 집요한 정신 역량을 발휘해서 머리로 이론을 정립하지만, 시인은 삶의 현장에서 현실과

부딪히며 온 몸으로 창작을 해야 한다.

시인에게 그런 실천의 현장성이 없다는 것은 시 창작의 텃밭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이 직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인의 가슴엔 상대적 우월감이 깃들어도 안되며 명예가 주어져서도 안된다. 그런 것들이 시인에게 주어진다면 그는 이미 시인의 길을 걸을 수 없는 속물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더 이상의 시가 나올 수없으며 시를 써서도 안된다.

이 땅의 시인들이여! 명예를 추구하지 말자, 시를 통해 누구를 가르치려고도 하지 말자, 귄위도 내세우지 말자, 시작(詩作)을 호구

지책의 방편으로 삼지 말자, 잘났다고 우쭐대지도 말자, 그냥 시만 쓰자. 슬프면 슬픈대로, 아프면 이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고 마음이 머무는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뚫어지게 바라보자..그리고 외쳐보자.

백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아흔 아홉명이 한목소리로 외치더라도 그 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아무리 외롭고 고단해도 그 무리에 휩쓸리지 말고 그 것을 부정하며 반대의 목소리로 외치고 또 외쳐보자, 시를 쓴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시류에 휩쓸리는 것도 아니다. 시를 쓰는데는 명분이 필요없다. 숙명처럼 운명처럼, 안쓰고는 못베기니까 쓰는 거다.

부족하고 약하고 억압 당하고 소외 당하면서도 세상의 변방에서 웅크린 채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부대끼며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거다.

부귀를 탐하지 말자. 도모하기 쉬워지고 나를 잃게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인즉, 명성도 바라지 말자, 세상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테니 그저 아름다운 무명(無名)으로 살아가며 세상을 이겨내고 고통과 고독을 맨몸으로 견디어 내자.

집단 이기주의의 소속원이 되어 그릇된 힘을 만들어내는데 동조하지 말자. 겉으로 선이나 정의를 외치며 속으로 탐리를 추구 하지도

말자. 화려한 것보다는 미천한 것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주자. 세상이 나를 버린다 해도 버림받지 말자. 외롭거든 혼자 울면서도 쓰러지진 말자. 세상을, 사람을, 사랑을 포기하지 말자, 언제나 낮은 곳에 머물면서도 지고(至高)함과 지순(至純)함을 잃지 말고

삶이 다하는 날까지 이 세상 모든 아픔들을 사랑하자. 끝까지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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