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
죄를 짓는다고 할 때 통상은 법을 위반해 죄 짓는 것을 말한다.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든지, 사기를 쳤다든지, 누구를 때렸다든지 등의 범죄가 법적인 측면에서의 죄이다. 그러나 죄는 법적인 죄만이 아니다. 도덕과 질서를 위반하면 양심상의 죄, 죄악을 짓게 되고, 종교인이 규율을 위반하면 종교에서의 죄인 죄업을 짓게 된다. 그러나 이것 외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는 또 다른 죄가 추가된다. 뭔가 기대를 갖고 만나러 왔는데, 말할 기회를 주지 안했거나 귀찮다는 듯이 대했을 경우는 ‘기대를 저버린 죄’를 짓게 된다.
사전을 보면 죄罪는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 또는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반면에 도덕道德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바람직한 행동기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최소한의 도덕은 꼭 필요한 것이기에 국가가 법률로 지키기를 강제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에는 필연적으로 도덕이 발생하는데, 도덕 불감증이 요즘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도덕 불감증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비도덕적인 것을 모르는 것을 지칭한다. 소위 제대로 볼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정관正觀도 못하고 정견正見도 못한다. 학벌이 좋고 높은 직책에 있는 분들이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고 있다. 도덕에 어긋나는 나쁜 일을 하도 많이 해서 양심이 균형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불감증의 해결방안은 양심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왜 죄를 짓게 되는가? 여기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기준과 질서를 위배하는 도덕적인 죄, 즉 양심상의 죄를 중심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죄를 짓는 마음의 원인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원인은 시기와 질투심이다.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발동되면 상대방을 음해 모략하고 비방하기 때문에 바로 죄를 짓게 된다.
죄를 짓는 두 번째 원인은 자기가 잘 났다고 과시하는 마음이다. 소위 4만慢이라고 한다. 성과가 있으면서 잘 났다고 하는 것은 아만과 오만이고, 성과도 없으면서 잘났다고 하는 것은 자만과 교만이다. 이 4만 중 특히 주의할 것은 오만이다. 오만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기의 큰 성과를 주변 모두가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성과를 낸 사람, 우수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 오만이다. 낮아지지 못하고 자신을 과신할 때, 바로 본인의 판단이 최고라는 편견에 빠지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독단적인 판단과 결정에 너무 의존해 패가망신하는 항우형項羽型 지도자로 전락하게 된다.
세 번째는 자기 판단이 최고라는 마음, 바로 3집執이다. 고집은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 판단, 결정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며, 아집은 상대방에게도 자기의 생각, 판단, 결정을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것이고, 트집은 자기의 생각과 기준을 상대에게도 적용하려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고집과 신념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고집도 밀고 나가는 것이고, 신념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못하면 고집이고, 나름 타당하면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과도하게 소유하려는 마음인 2욕慾, 바로 과욕과 탐욕이다. 과욕은 노력한 것보다 더 가지려는 욕심이다. 1원어치 일하고 3원 달라고 하면 과욕이다. 탐욕은 일도 안하고 달라는 것이다. 소위 기준과 질서를 위배하는 욕심이다. 이 과욕과 탐욕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생긴다. 온갖 번뇌와 망상, 괴로움도 이 과욕과 탐욕 때문에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째는 사랑의 부족이다.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보니 상대방에게 사랑을 줄줄도 모르고, 상대방이 주는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른다. 상대방을 볼 때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보고, 상대방이 하는 말도 헤아리지 못하고 듣는다. 모두 마음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죄 등 많은 죄를 짓는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자갈밭처럼 황폐해진 마음의 밭에서 돌을 치워내 언제 어떤 씨앗이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고운 흙밭으로 만들어야 한다. 밭에서 돌을 치워내는 과정이 사랑의 실천이다. 관심과 정성을 끈기 있게 갖고, 자주 봉사활동과 공덕 쌓기에 나선다. 마음속에 사랑이 충만해지면 영성이 높아지고, 지혜가 솟아나며, 판단력과 분별력이 높아진다. 양심이 살아나며 죄를 짓지 않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