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일단 상황에 순종하고 현실에 순응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직면한 상황이 좋은 상황이건 나쁜 상황이건 불문하고 일단 그 ‘상황을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직면한 상황이나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부정하면서 공격적 자세를 갖게 되면 그 상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누구와 만나든지,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지 일단 상황에 순종해 보자. 종교에서 말하는 믿고 따르라는 순종과는 의미가 다르다. 여기에서 말하는 순종이란 상대의 말이 옳기 때문에 복종한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서) 직면한 상황에 ‘거부를 하지 않고 순응한다’는 의미의 순종이다.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현실에 순응)한 후, 2차로 내 의견을 말하면서 해결방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만약 직면한 상황에 내 마음이 거부감을 갖고 있어서 순응이 쉽지 않다면, 말없이 조용히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 거부감이 없어지길 기다리는 것도 좋은 순종의 방법이다.
예컨대 상사가 화를 내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현실, 상사가 화를 내고 있다는 상황을 일단 인정하자는 것이다. 상사가 어떤 내용으로 나를 질책한다면 일단 “죄송합니다”하며 ‘상사의 화내는 이유를 인정’하고 들어준 다음, 2차로 내가 그 일을 한 사유를 설명한다. 먼저 인정해 주는 순종이 중요한 이유는,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거부하지 말고 순응해야 내 마음에서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당면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을 빨리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병에 걸린 환자들이 제일 먼저 빠지는 것이 ‘현실 부정’이다. 자기 앞에 닥친 일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면하고 부정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큰 병에 걸렸다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치료방법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우선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시간만 있으면 도와줄 텐데’, ‘저 사람이 조금만 적극적이면 좋겠는데’ 하며 조건을 달 때가 많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핑계나 변명을 대며 회피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내 마음에 들든 그렇지 못하든 일단 내 앞에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종’의 자세, 이것이 좋은 관계, 바로 사랑을 만드는 첫 단추다.
어떤 경우에 순종하지 못하는가?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부인하는 경우이다. 순종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을 거부하면 순종이 아니다. 나쁜 결과를 상대의 탓으로 원망하며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을 가져도 순종이 아니다.
예컨대, 누군가가 나를 염려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챙겨주는 것을 간섭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종을 못하게 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도 순종을 잘 못한다. 거만하거나 포용력이 부족한 사람도 순종을 잘 못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자만하기도 하는 존재이다. 깊은 좌절 속에 빠지는 수도 많다. 순종은 심신을 편안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다. 심신이 편안해지면 발전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는 잊고,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면서 마음을 키우는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순종을 습관화 하다보면 감사의 마음과 믿음을 갖게 되며 삶의 방식에 기적이 일어난다. 사람이 습관을 바꾸거나 변화를 도모하면 운명이 바뀐다. 상황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조용히 자신을 제3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제부터는 자기 입장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며 상대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이해가 됩니다’라고 해보자. 견해가 다르다고 대뜸 이견을 제시하기 전에, ‘이렇게 하신 근거를 한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해보자. 상대가 자극하는 말을 하더라도 마음이 중립적이 된다. 상대가 수준 낮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누구이더라도 ‘참 딱하다’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상대를 보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을 바른 방향으로 도와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생긴다. 현실상황에 순응하는 순종은 인생을 폭넓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