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일제 황국사관의 중심에는 한국사의 태두로 자리매김한 이병도가 있다. 그의 업적은 광활했던 우리 고대사를 한반도 안으로 우겨 넣은 데에 있다. 그는 일본인 스승 요시다 도오고와 쓰다 소우기치의 영향을 받아 실증사학이라는 미명으로 많은 1차 사료를 무시하고 유물로 모든 고대사를 정리했다. 이렇게 우리 고대사는 철저하게 왜곡되고 축소되었다.
그런데 현대사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자료가 숫제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왕조시대의 임금도 결코 없애지 못했던 역사의 기록을 현대의 대통령들은 임기가 끝나면 거침없이 파기해버린다는 것이다. 뜬소문이면 좋겠지만 역사학자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을 보니 사실인 모양이다. 여기서 다시 현대사의 심각한 왜곡과 삭제가 자행되고, 엄청난 국정비리를 저지르고 농단했던 사람들은 그 뒤로 숨어버렸다. 조국의 해방과 함께 찾아든 대통령제라는 낯선 제도는 2000년 왕조 역사의 변화보다 더 빠르고 컸다. 혼돈 속에서 매국노와 애국자는 뒤섞였고 전 재산을 바치고 목숨까지 내 놓았던 애국자는 다시 일제 협력자 즉, 매국노들의 지배로 들어가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여기에 더해진 사상의 분열은 애국자와 매국노의 심각성보다 더욱 깊게 민족을 분열로 몰아갔다. 나라를 일제에 넘기고 협조했던 사람들보다 공산주의자는 더욱 나쁜 부류였으며 반공주의자들은 매국 행각을 했어도 보수라 자칭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수의 비극은 출발했다.
진정한 보수는 누구인가. 합리적인 수구를 지향하며 국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보수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을 이끌었던 김원봉, 김구를 위시한 바로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요 보수들이다. 그런데 친일 자손들이 보수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역사의 왜곡이다. 그들은 가짜 보수인 것이다. 김무성이 최근 가짜 보수를 언급했다.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말하는 모양새가 대통령을 닮았다. 보수는 삶의 지향점을 자신의 사익에 두지 않는다. 공공이 먼저고 나라가 우선이다.
MB 시절,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자 이명박은 청와대 벙커에서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었다.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열리는 것이 안보회의인데 현역 출신은 육사출신 국방장관 단 한사람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국방의 의무를 피했을까. 또 그들의 자식들은 국방의무를 성실히 실행했을까. 오직 자신의 영달과 안위만을 위하며 입으로만 애국을 외치고 행동은 서민들에게 떠넘기는 자들을 보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명박은 물론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정원장 모두가 군 미필이었다. 이들이 북의 군 도발사태인 연평도 사건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였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온 국민이 지켜봤던 장관급들 청문회에서 소위 보수를 자처한 사람들이 온통 군 미필자에 탈세에 위장전입으로 부동산 투기하고 방산비리에 휘말렸다. 삶 자체가 비리이고 사회적 약속위반과 반칙으로 점철된 사람들이 보수를 대표해 장관 인사청문회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가면 쓴 얼굴을 디밀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참다운 보수는 모두 죽었다. 사상이 맞지 않아서 죽었고 일제 장교와 공산주의를 추구했던 자의 독재를 막다가 죽었고 가면 쓴 보수들의 눈 밖에 나서 죽었다. 그런데 이제 가짜들이 서로 가짜라고 피가 튀게 싸우고 있다.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등 틀림없는 가짜 보수들이 친박과 차별화를 노리며 꼼수를 부리지만 사실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박근혜의 실체를 몰랐다면 누가 믿겠는가. 알면서 모르는 척 자기 특권만 누리면 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신분만 필요했던 무능력하고 판단력 부재의 공주병 환자를 쇼룸에 올려놓고 관객들을 상대로 최순실 일가가 그랬듯 자신들의 이권만 추구했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진짜 진보가 없듯이 보수도 없다. 보수를 제거한 가짜들이 보수의 가면을 쓰고 국가 권력을 사사롭게 이용하고 사익을 추구해 왔을 뿐이다. 가면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이들이 죽이고 가둔 인사들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무죄가 되면서 흘린 눈물의 아픔을 이들은 모른다. 박근혜의 피눈물과는 전혀 다른 눈물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