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교육부는 지난 연말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표기 기준을 발표했다. 2019년부터 초등 교과서에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한자 병행 표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용 가능한 한자는 주요학습 용어에 한하고 교과서 집필진과 심의회의 판단에 따라 미리 선정한 300자 내로 정했다. 하단이나 옆단에 음과 뜻을 모두 제시하지만 꼭 익혀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한자 사용 반대론자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독서 생활과 따로 생각하기 힘들었던 한자의 사용은 70년대 초중반 슬며시 사라진 중고교 한자 교과와 함께 우리 서적과 신문지상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결국 한자교육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애국심을 동원한 한글학자들의 한자 말살 주장은 힘을 얻어 중고교 교과서는 물론 신문 잡지 등에서도 한자는 사라졌다. 당시 중학교 900자 고교 900자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한자를 정규 교과로 설정해 배웠고 신문 정도를 읽기에는 충분했다. 결코 부담스러운 교과가 아니었음에도 한글사랑이라는 애국적 논리에 밀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반문맹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자 사용 반대자들은 한글만으로도 충분히 뜻을 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한자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잘 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70%는 한자어로 조성이 되어있다. 한자로 표기하지 않으면 음이 같아 뜻이 헛갈리고 내포한 참 뜻을 알기가 힘들다. 물론 생활에 불편을 느끼진 않겠지만 제대로 된 독해를 위해선 한자의 뜻은 필수적이다. 학문과 지식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독자는 자신이 아는 수준으로만 해석을 하고 넘어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반대다.

한자를 포기하면 우리말을 형식만 취하고 뜻은 버리는 행위이다. 분명 한문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자꾸 부정하면 선조들의 정신까지 부정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한자 사용을 철기시대로 보지만 어차피 고조선은 현 중국의 본토에 위치했었고 갑골문자와 전서시대를 공유했다고 봐야한다. 결국 남의 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종의 한글 발명은 분명 위대하지만 음을 한자에 기초를 두었고 한자를 읽기 위한 일종의 발음법이 바로 한글이고 이를 우리 방식으로 바꿔 적은 것이 한글이다.

\그리고 형은 고대의 가림토를 기초로 삼았다. 가림토는 일본에도 신대문자(神代文字)라는 이름으로 돌에 새겨져 남아 전한다. 그런데 민족의 모든 사상과 학문, 역사를 기록했던 한자를 이제 와서 버리자는 주장은 곱씹어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자의 형식을 아무리 버려도 뜻은 한자에서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글을 사랑한다면 국어 시간보다 더 많은 영어 시간의 모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한자의 배척은 결코 한글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순 우리말이라면서 뜻을 한문에서 빌려온 것들도 있다. 다시 말해 전혀 우리말의 형식이 아닌데도 순수한 우리말이라 주장하는 낱말들도 보이는데 상고대(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 ‘생각등이 그렇고 억지로 조성한 느낌이 드는 합성어 형식의 그린비’, ‘단미등도 있다. 한글사랑을 싫어할 국민은 없지만 일본에서도 한자 사용은 전혀 문제가 없으며 초등학교에서 이미 기초를 마친다.

요즘 서양에서 한자문화권의 고전을 배우기 위한 붐이 일고 있다. CEO 조건으로 노장 사상과 사기의 인간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상과 학문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고전 인문학을 정작 우리 자신은 경시하고 있다. 한글 번역본으로 독서가 가능하지만 단어를 조성하는 한자를 모르고 읽는 고전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교육자들은 중요성을 알기에 그동안 90% 이상의 초등학교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한자교육을 시행했으나 통합된 교육 방법의 부재로 곤란을 겪다가 교과서 한자 표기 원칙을 마련한 것이 이번 조치이다.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마련한 초등학교 한자 표기 기준을 이해하고 맹목적인 한글사랑은 재고해봐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단어의 70% 이상은 한문이다. 한자는 뜻이고 뜻을 모르는 단어의 짐작은 심각한 오독(誤讀)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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