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형진/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사회성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과거 대가족 시대를 살던 우리 부모님들의 말씀중에 부부싸움을 할때도 시부모님 눈치 보느라 방안에서 조용히 싸우거나 집 밖에서 부부싸움을 했노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것.

가족 내에서도 권위와 존경의 대상이 있었기에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게 해드리면 않된다는 우리 민족의 자랑인 효 정신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지요.

부모님만 조부모님의 눈치만 보았을까요?

아닙니다. 형제 또한 많다보니 맏이와 둘째 셋째... 막내까지 가족 간에 자기 역할이 다양하고 분명했습니다.

맏이는 어려서부터 참아야 한다. 네가 잘 되야 한다.” 등의 말과 함께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존감이 높아지며 책임감 또한 강해지던게 사실입니다.

같은 잘못을 해도 동생들보다 더 많이 혼나고 집안의 걱정을 부모님과 함께 하다 보니 자식이라기보다 부모의 정신적 지원자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첫째는 잘 참고, 어른스러운 반면 죄책감이 많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다보니 반대로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바로 밑의 둘째의 경우에는 그런 첫째가 항상 못마땅하였지요.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 부모의 관심을 더 받는 것처럼 느끼고 자신은 첫째가 쓰다만 것을 물려받으면서 두 번째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열등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첫째를 이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열등감과 경쟁심이라는 둘째 특유의 심리적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첫째보다 둘째들이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첫째는 둘째의 경쟁을 보며 자란 셋째는 수용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리다보니 경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되고 첫째와 둘째 중 어느 편에도 서기 힘들기 때문에 첫째 편도 되었다가 둘째 편도 되었다 하면서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이게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면 다른 두 사람을 다 이해하는 연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요. 그래서 셋째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막내는 어떨까요?

위의 언니 오빠들이 치열하게 살다가 다 부질없구나.’ 라는 깨달음이 올 때쯤 집안의 막내가 태어나게 됩니다.

성장단계의 갈등에서 벗어나 부모의 사랑과 위 형제자매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하게 되면서 받는데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막내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지요. “충분히 받지 못했어요.”

얼마나 받아야 충분할까요? 받는 사람은 아무리 받아도 만족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막내인 사람들의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막내티가 난다는 말을 듣곤 하지요.

그렇습니다.

가족은 조부모, 부모, 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다양한 입장과 상황이 공존하면서 대안관계 즉 사회성을 연습하는 장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세계 최저수준의 출생율을 보이며 핵가족 시대를 넘어서 1인 가구 다수의 시대를 맞는 우리시대의 청소년들은 가족내에서 사회성을 훈련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독자이거나 한명의 형제를 둔 가족행태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할 겨를 없이 공부라는 대명제에 매달려 자라고 있습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그것은 청소년 긍정적인 또래집단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가족처럼 자신의 생각을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성장하며 형과 누나의 모습을 모델링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배우며, 후배들에게 보여줘야할 선배의 모습을 연습하는 또래문화...

청소년 비행이나 학교폭력등의 문제가 나올 때 마다 우리는 상담을 더 해야한다, 교육을 잘해야 한다,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청소년 문제의 근본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렸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도록 믿고 지켜봐주셨던 우리 부모님의 눈과 아이들이 사회성을 회복할만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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