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풍년/ 전라도닷컴 발행인․ 편집장

-풀뿌리 언론! 지역신문에서 희망찾기
온 나라가 들썩거릴 만큼 큰 뉴스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가까운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다. 우리들의 눈과 귀는 온통 지금 발 딛고 선 자리가 아닌 다른 세상, 곧 서울에 가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처럼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다. 아주 오래된 현상이다. 이른바 중앙 일간지들과 KBS, MBC, SBS 등 공중파 방송, 여기에 종합편성 채널 등 서울에서 생산되는 뉴스가 전국을 장악했다. 인터넷 매체까지 포함하면 다양한 장르의 매체들이 생산하는 오만가지 서울 뉴스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발행되는 각종 매체들의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미미해지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신장, 영상물 소비의 증가세는 독서인구의 급속한 감소로 이어졌고, 특히 지역의 각종 종이매체들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 신문과 잡지, 인터넷과 방송 등 모든 미디어의 서울 중심이 심화되면서 기타 지역의 뉴스와 정보, 문화의 부재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의 경우, 하루 수 십 쪽의 지면을 발행하는데 광주·전남 지역의 뉴스를 찾아보기 힘든 날도 허다하다. 도대체 수백 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소식이 실리지 않는 신문을 날마다 열심히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신문에 길들여져 있는 독자들은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지역을 일상적으로 돌아보지 않는 폐해를 간과하기 십상이다. 방송의 경우에도 서울의 뉴스를 중심에 두고 지역 뉴스를 덧붙이고 있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빈약하기 그지없다.
뉴스의 중심이 저마다의 삶터가 아닌 시대, 영광신문 20주년은 빛나는 역사다. 영광지역의 삶과 문화를 기록해온 세월에 경의를 보내며 신문의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편의상 서울지역 일간지를 ‘서울지’, 광주지역 일간지를 ‘광주지’, 기타 시군지역 주간지를 ‘시군지’로 구분한다.
‘큰 뉴스’와 서울 중심 뉴스의 심각한 폐해
‘서울지’는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을 자연스레 뉴스의 중심에서 비켜있는 변방으로 취급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서울발 뉴스로 빼곡한 ‘서울지’에 빠져 사는 지역의 독자들이 많다. 그들에게 지역의 뉴스는 점차 하찮고 소소한 것으로 치부된다. 청와대와 정부부처, 국회에서 일어나는 굵직굵직한 뉴스들에 비해 광주·전남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떨어지고, 기타 생활 주변의 이야기들은 아예 뉴스로서의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발 딛고 사는 곳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은 뉴스로 보이기보다는 이런저런 소문이나 한담거리에 불과하고, 모름지기 뉴스하면 서울에서 벌어지는 아주 크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들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뉴스라는 것이 손을 뻗으면 곧 잡히고 몇 걸음 떼면 발에 밟히는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저 멀리 바라다보는 대상이거나 호기심과 잡학다식의 갈증을 채워주는 것쯤으로 전락한다.
‘서울지’에 빠져 사는 독자에게 모든 뉴스의 중심, 세상을 바라보는 판단의 기준은 결국 서울이 된다. 지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국회의원들의 가십거리와 청와대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에 빠삭하고, 지역내 다양한 문화행사들은 전혀 모르지만 세계적인 오페라, 블록버스터, 베스트셀러, 뮤지컬, 전시회 등은 훤히 꿰고 있기도 한다. 연예인들이나 프로 골퍼 등 대중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잡으면서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대체로 모른다. 서울이 의식의 중심에 자리 잡고 지역은 바깥으로 밀려난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서울바라기가 되고 문화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구경꾼이 되고 만다.
‘서울지’의 최대 맹점은 풀뿌리 정치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다룰 수 없는데 있다. 의도적으로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도외시해서가 아니다. 지방자치, 곧 지방정치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할 여력이 없다. 지역에 주재하는 기자 한두 명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서울지’가 보여주는 풀뿌리 정치는 매우 도식적이고 의례적이다. 일회성 이벤트, 독직사건, 평가 보도, 이런저런 잡음, 미담사례 등이 간헐적으로 보도되는 수준이다.
전국을 시장으로 삼아 불특정 다수가 소비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서울지’는 애당초 모든 지역을 정통할 수 없으며 지역 뉴스를 풍성하게 제공할 수가 없다. 독자의 거주지에 따른 맞춤형 뉴스는 없어도 독자들이 신문을 내던지지 않고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이란 오로지 ‘큰 뉴스’요 일시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선정적인 뉴스다.
예컨대 지방선거 보도를 보자. ‘서울지’는 선거보도를 정당대결의 게임으로 만든다. 여야 어느 정당이 이기느냐에 몰두하도록 선거보도를 한다.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낱낱이 해줄 재간이 없는 탓이다. 정당간의 다툼이나 지역대결 구도, 이색 후보들 이야기 등으로 뉴스를 채운다. 현란한 말싸움, 이런저런 추태, 선거이후 정국의 향배 등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렇듯 선거가 승패의 게임으로 흘러가면 개개 후보들의 검증은 무의미해진다.
풀뿌리 정치현장에 자질이 부족한 공직자들이 정당 공천으로 당선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도 지방자치를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언론의 부재에서 온다.
‘서울지’는 문화 다양성을 담보할 수도 없다. 풀뿌리 정치 보도처럼 모든 지역의 다양한 문화현상을 지면에 담아낼 수 없다. 문화의 핵심은 다양성이지만 그것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다. 천차만별 다양한 문화를 반영한다는 건 인력과 지면의 형편상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경제성이 없다. 눈 밝은 주재기자들의 노력으로 극히 일부분의 지역문화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 지역 독자들이 좋아하는 대중문화와 서울 중심 장르별 전문가 뉴스로 채운다.
서울의 문화가 자연스레 전국 모든 지역의 표준이 된다. 문화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임에도 다수의 독자를 가진 ‘서울지’가 문화의 서열을 매긴다. 특히 ‘서울지’는 문화를 자꾸만 구경하는 영역으로 만든다. 독자들로 하여금 무대의 중심에 뛰어들기보다는 한사코 객석의 구경꾼이 되기를 종용한다. 이른바 서울의 ‘수준 높은’ 문화, 성공한 문화를 동경하게 하고, 지역에 자생하는 문화들을 소외시키고 초라하게 함으로서 문화 다양성을 저해한다.
‘서울지’에 중독되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자연을 누리고, 넓은 공간에서 여유로움을 즐기는 삶이 열등하게 느껴질 정도다. 끊임없이 이주본능을 부추기고 현재의 구체적 삶의 조건들을 바꾸기 보다는, 뉴스의 중심인 서울로 가고 싶게 만든다.
‘시·군지’는 자치분권시대의 희망언론
광주·전남에는 신문이 너무 많다는 해묵은 비판이 있다. 그러나 개수는 많을지언정 콘텐츠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광주지’들은 관청과 대기업, 지방의회, 대학, 교육기관 등에서 출입기자들이 관급성 기사를 생산하고, 시·군 주재기자를 두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울 뉴스는 통신사 기사를 받고, 광주와 시·군 소식을 적절하게 섞어 발행하는데, 서울뉴스도 광주뉴스도 시·군 소식도 부족하다.
‘서울지’들처럼 ‘광주지’들도 시·군 독자들의 뉴스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없다. ‘서울지’와의 경쟁에서 밀려 독자시장을 내어준 뒤, 대체로 기관 단체의 스크랩용이 되었고 어느 매체도 자체적인 여론 형성이 어려워졌다.
‘광주지’의 몰락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서울지’와의 상품경쟁에서 실패한 탓이 크다. ‘큰 뉴스’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게 ‘광주지’만의 차별적인 가치를 인식시키지 못했다. ‘서울지’ 방식의 정치뉴스, 피상적인 지방자치 기사들, 대중문화 베끼기 등 흉내내기란 비판을 받는다.
또 언론사업의 본질보다는 모기업의 방패막이용 혹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자본들이 손쉽게 창간을 할 수 있을 만큼 시장의 진입장벽도 낮았다. 자사 신문의 가치를 높이는 투자를 기피하고 ‘서울지’ 지방인쇄 사업에 무리한 시설투자를 한 뒤 외환위기를 맞았고, 인원감축과 급여삭감을 하면서 최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무차별적인 수익사업에 나서면서 독자와 지역사회의 불신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다.
‘시·군지’의 약진은 지방자치 시대의 요구에 부합한다. 연대의식이 강한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뉴스들을 ‘서울지’나 ‘광주지’에 비해 충실히 담아낼 수 있고, 뉴스의 중심을 ‘발 딛고 사는 지금 여기’로 옮겨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나 ‘광주지’와는 달리 ‘시·군지’는 독자들에게 지역 뉴스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인식시킬 수 있다. 생활 주변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하나둘 고쳐나가고, 각종 지방선거 후보들에 대한 일상적 감시역할도 충실하게 해낼 수 있다. 게다가 향우 마케팅 등을 통해 신문발행에 드는 비용에서 구독료의 비중을 높여가는 등 건전한 경영의 틀을 만들 수 있다. 뉴스의 중심이 지역으로 자리매김 되고 뉴스의 주인공들이 지역사람인 ‘시·군지’의 가능성은 지방자치가 발전할수록 높아진다. 다만 ‘시·군지’가 지역에서 또 하나 기득권이 되어 토호세력이나 지방권력과 결탁하지 않도록 시민사회와 독자들의 감시역할이 요구된다.
모든 국민들이 저마다 발 딛고 사는 지역의 신문, 곧 ‘시·군지’를 가장 많이 구독하고 있는 북유럽 문화선진국들은 좋은 사례가 된다.
세상의 중심은 독자 자신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일수록 중요하고 먼 곳일수록 중요도가 낮아진다. 좋은 뉴스란 일상생활과 항상 부대끼며 우리네 삶의 조건들을 하나둘 고쳐주는 것이다.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기뻐하고 분노하고 흥분하는 뉴스몰이는 일상을 담아낼 수 없는 매체들의 시장전략에 불과하다.
온 나라를 뒤흔들던 사건사고가 광풍처럼 휩쓸고 간 뒤, 잊힐 만 하면 재발하는 이유도 매체가 일상적 감시를 하지 않는 풍토에서 비롯된다. 정치권의 비리와 부정, 공직자들의 잘못된 행태 등이 뭇매를 맞더라도 선거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도 뉴스로 뉴스를 덮는 매체에 길들여진 까닭이다. 뉴스가 다중이 일시적으로 소비하고 날아가는 휘발성이라면 뉴스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지 못한다.
우리네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공동체가 경쟁의 전쟁터가 아니라 상생의 장이 되려면 지역중심의 문화가 바로서야 한다. 지역에 자생하는 풀뿌리 문화들이 언론을 통해 조명되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풀뿌리 언론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시·군지’만이 자치분권의 시대, 다원화된 사회를 이끌어 갈 매체다. ‘시·군지’가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튼실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지역 언론인과 깨어있는 독자들의 몫이다. 왜곡된 뉴스 소비에서 벗어나 풀뿌리 언론, ‘시·군지’에서 희망을 일궈야 할 때다. ‘지금 여기 우리’의 기록이 가장 소중한 언론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이기 때문이다.
황풍년 전라도닷컴 발행인 겸 편집장은...,
1964년 순천 출생. 전남일보 기자, 광주드림 편집국장, 지역방송 MC 및 패널로 지역을 기록하고 지역문화를 알려왔다.
‘꾸꿈스런 전라도 여행’ ‘촌스럽네 사진전’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씻김굿 공연’ ‘전라도 그림전’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었고,《벼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풍년식탐》《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