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케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가꿀 일 없으니 자연히 옷 띠도 헐렁해지고

이는 잘록한 허리 보이기 위함 더욱 아니네

 

중국 4대 미인중 한명인 한나라 때 대표적 미녀 왕소군이 흉노 땅에 팔려가서 쓴 시다.

왕소군은 원래 한 원()제 때의 궁녀였다. 원제는 흉노족과 화친을 위해 공주를 흉노 수장의 첩으로 보내기로 했는데, 궁녀 한 명을 공주라고 속여 대신 보내기로 작심했다. 그래서 궁녀들의 얼굴이 그려진 화첩을 가져오게 해 살펴본 뒤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선택했다.

당시 원제는 황실 화가에게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 화첩을 만들도록 지시하였었다. 그러자 모든 궁녀들은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화가에게 뒷돈을 써가며 자신의 얼굴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그려주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외모에 자신이 있었던 왕소군만은 그러지 않았다. 이에 심기가 뒤틀린 횡실 화가는 일부러 왕소군을 가장 못난 얼굴로 그려서 궁녀화첩을 만들었다. 때문에 왕소군은 흉노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늦게사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된 원제는 땅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흉노의 두목은 희색이 만면해 아주 흡족해 했다.

왕소군이 모래바람만 휘몰아치는 사막지대인 흉노땅에 가서 보니 봄이 되어도 풀 한포기 나지 않고 꽃 한 송이도 볼 수 없어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막지대라고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인데 어찌 풀 한포기 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볼모로 팔려온 그녀의 마음이 봄을 봄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박용수 특검팀이 수사를 종료하고 난 후, 특검에 참여했던 모 검사가 한 마디 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는데 봄같지가 않구나.)

청와대측의 비협조로 수사가 미진했던 아쉬움이 담긴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된지 90여일, 그동안 국민들은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되어 저마다의 외침으로 탄핵에 대한 찬 반의 목소리를 외쳐대며 대립했다. 그리고 헌재의 판결은 재판관 전원 만장일치로 우리나라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세월호 사고 때 드러난 사회적, 정치적 적폐를 청산하고 제왕적 권력을 심판해서 새로운 민주 복지 국가를 건설해 갈 수 있는 시민혁명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국민적 바람이 현실화 되기는 너무나 요원하다는 느낌이다. 벗꽃 대선을 앞두고 주자로 나선자들의 횡설수설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북핵과, 사드배치 문제를 놓고 확고한 신념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 말바꾸기를 하거나,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다거나,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데 앞장서거나...대권 장악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주자들만 난무할 뿐 확고한 정치철학으로 일관하는 주자가 보이질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실질적 대권을 장악하지 못했던 허정 내각이나, 장면 과도정권, 윤보선 대통령, 최규하 권한대행 등을 제외하면, 3.15 부정선거 파문에 의해 스스로 하야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서 심복이 쏜 총탄에 쓰러진 박정희, 퇴직 후 감옥행이 되었던 전두환 노태우, 아들들을 감옥에 보낸 김영삼 김대중, 아직도 Bbk 사건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4대강 사업 비리 의혹의 도폭선을 몸에 감고 있는 실정며, 형님을 감옥에 보냈던 이명박, 역시 형님 사건과 여러가지 의혹만 남긴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던 노무현, 그리고 임기중 파면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발생시킨 박근혜까지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이 온전히 밈기를 마친 대통령은 한명도 없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지금의 대권주자는 누구일까?

중국의 동북공정과 사드 보복 조치, 독도문제와 위안부 문제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일본, 영원한 우방을 자처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소불위의 칼날 정책을 펼치는 미국, 그리고 북한 등 이렇듯 구조적 민족 분단모순과 주변국들의 힘의 논리에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처방안으로 민족의 미래를 열어 갈 주자가 보이질 않으니, 지금이야말로 춘래불사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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