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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가지(多浪串)
김범진/ 향리학회 회원 (법성포 거주)
2017년 03월 27일 (월) 10:58:21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딴 세상같이 보였던 법성포

지금부터 120여 년 전, 영광 땅이었던 임자, 낙월, 송이, 안마 등을 포함하여 부안, 나주, 만경, 무안 관내 섬들을 한데 묶어 '지도군'이 탄생한다.

초대 군수로 임명된 오횡묵 군수가 강화에서 배를 타고 해로를 따라 임지인 '지도'로 가다가 '법성포'엘 들렸다.

"...사방으로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별세계가 열려있다. 천여호의 집들이 물고기 비늘같이 붙어있어, 흡사 제비집 같다. 포구 앞에 이르니 배들이 세워 놓은 노가 마치 화살촉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오 군수가 '돔배(道音所島)'를 지나 '조아머리(左右頭)'에 들어서 처음 보는 '다랑가지'일대를 보고 마치 딴 세상같이 보였던 '법성포구'의 모습을 1896513일자 일기(지도군총쇄록)에 이렇게 써 놓았다.

   

동짓재에서 바라 본 법성포구 재경 법성향우회 제8, 고 장백언 회장이 1950년대 사진을 모사한 유화다. 번 해안극장, 번 중앙극장 앞 정기여객선 선착장, '제월정', 이곳 아래 '문턱바우' 주변으로 많은 중선 배들이 정박하고 있다.

 

'다랑가지'는 조선시대 병선이 정박했던 '선소마당'에서 '월랑대' 아래를 일컫는 어시장이다. 조선시대 '법성포' 다섯 객주들의 활동무대였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512월에 옛 농협 서부 지소 앞에서 홍농 '계마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이곳을 경유하면서 부터 유동인구가 급증하였고, 뒤이어 19387월에 위도에 있던 '어업조합'(현 영광수협)'굼방모탱이(바위 모서리)' 일대로 이전하여 위판장이 들어서자, 칠산어장의 어선들이 이 일대로 몰려들었던 곳이다. 이에 따라 법성면에서는 19406월부터 이 일대 공유수면, 2만여 평을 택지로 조성하기 위해 공사판을 벌렸고, 이로 인해 '월랑대'를 중심으로 왼쪽의 어시장인 '다랑가지'지역과 오른쪽의 공사현장인 '굼방모탱이'지역이 아울러져 북새통을 이뤘고, 광복 직후에 공사가 완료되어 '현장마을'이라 불리며, '서진내리'지역에 편입되어 지금은 '진내2'로 구획되었다.

 

"알이 삐져나올 듯한 누런 오사리조기"

... 음력으로 여드레, 스무사흘 조금을 전후해서 조기를 가득 실은 수많은 어선들이 '다랑가지'를 중심으로 '선수마당'까지 옆구리를 맞대고 빽빽하게 늘어서 사람들이 마치 육지에서 걸어 다니듯 건너다녔다.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질령꾼, 실령꾼, 가대기꾼들의 바쁜 발걸음, 상인들의 외치는 소리, 조기 마릿수, 굴비 두름 수, 세는 소리, 엮걸이 꾼들의 재잘거림 등으로 이 일대는 번잡 거렸고, 떠들썩했다.

길거리는 흰옷 입은 사람 천지였다. 빠져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무리지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어물전 좌판 대에는 알이 삐져나올 듯한, 살이 통통하게 찐 팔뚝만한 누런 오사리 조기를 한 뭇씩 묶어서 줄줄이 차려 놓았고, 빨갛게 삶은 꽃게가 산더미처럼 쌓여 두 마리에 일전씩 받고 팔았다.

길 위쪽에는 주막집과 음식점이 즐비하였고, '선수마당'에서 '굼방모퉁이'사이에는 굴비 말리는 '걸대'가 드문드문 위용을 자랑하였다.

조기뿐이 아니었다. 길가에는 사람이 타고 앉을 만한 큰 상어, 방바닥만한 가오리 나부, 아귀 등등, 잡어도 수두룩하였다. 웬만한 아귀는 다 버렸다. 그리고 꽤 큰놈만 골라 입속에 막대기로 기둥을 세워 입을 크게 벌려 놓고 길바닥에 놓고 팔았다. 이렇게 아가리를 벌려 놓으면 고기를 사는 사람들이 아귀보다 그 뱃속에 든 내용물을 들여 다 보고 사갔다. 아귀 배속에는 싱싱한 조기와 잡어 등이 뭇으로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수바구'라 불리는 늙고 눈먼 거지가 줄을 끌고 다니는 아내를 배에 올려 보내고, 선창가에서 "둘이요 둘! "하고 배를 향해 큰소리로 외쳐댔다. '수바구' 본인하고 배에 올려 보낸 아내까지 합하여 두 사람이니 두 몫을 보내라는 외침이었다. 흔한 것이 조기라 구걸하는 '수바구'에게도 서너 몫을 아낌없이 던져 줄 정도로 뱃사람들의 인심도 후했다.

 

조선팔도 각설이군들도 다 몰려들었고, 거지 떼들도 들끓었다.

길 양편에는 어린아이들이나 일꾼들의 군것질감으로 떡과 고구마를 좌판대 위에 올려놓고 팔았고, 해안가 공터에서는 야바위꾼들과 깽깽이를 켜대고 나팔을 불어대며 손님을 유혹하는 약장수들이 낮에는 물론 밤에도 간대라에 불을 켜 놓고 예쁜 아가씨들을 데리고 다니며 '목포의 눈물' 등의 노래를 간드러지게 부르면서 두꺼비기름이나 만병통치약 등을 놓고 팔았다. ...

법성향지를 집필하시다가 1987년에 타계하신 고 길일록 선생이 남기신 19560년 대 '다랑가지'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일부를 옮긴 글이다.

힘없고, 빽없으면 배를 맬 수 없었던 '문턱바우 콧잔댕이'

1970년대에 이르러서도 이곳 '다랑가지' 선창가 '문턱바우 콧잔댕이'에는 힘없고, 빽 없으면 닻줄을 맬 수 없었을 정도로 어상 선들이 붐볐고, 텃세도 심했다. 그러나 칠산어장의 어획량이 줄어들자 그 이후부터는 이에 비례하여 이곳을 출입하는 배들의 빈도도 줄어들었고, 위세 부릴 일도 뜸해졌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이 일대 해안가가 확장되어 물량장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문턱바우''콧잔댕이'도 모두 매립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굼방모탱이' 앞 물량장 일대가 '밧다랑가지'를 꿈꾸며 꾸준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박래학 면장 재임기인 2005년도에 '해안통' 어물상 좌판대가 이곳으로 옮겨 어시장이 조성되었고, 2008, 조병남 조합장 재임 기에 수협 위판장이 확장되어 신축되었다. 풍어제와 수륙제, 그리고 작은 음악회도 이곳에서 열린다. 2010년에는 이곳에서 꽃게축제도 하였다. 옛날부터 이곳 '굼방모탱이'부터 '조아머리' 나루터까지를 '밧다랑가지'라 하였다. '다랑가지' ()이란 뜻이다. 구수산에 철쭉꽃이 지고, 법성포에 살구꽃이 활짝 필 때면 어김없이 누런 황금 알배기 조기, 다섯 마리를 한 두름으로 엮는 바로 그 유명한 '법성포곡우사리'가 어김없이 '칠뫼'를 찾아 명품굴비가 되었다.

'법성포 곡우사리 굴비축제'에 즈음하여 '다랑가지'에 영화롭고, 즐거움이 가득할 날이 어서 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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